농심(農心)과 도심(都心)

야박한 도시 인심의 이식을 우려함

등록 2007.05.06 16:16수정 2007.05.0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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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와 먼 위치에 있는 곳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농민은 생활이 편리한 도회지를 동경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을 벗하며 사는 농촌을 동경한다. 또 우리 나라에 살면서 외국을 동경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이다. 서울에 살 땐 물 좋고 공기 맑은 농촌이 그립더니 어느덧 두메산골 소서리에 온 지 8년이 되어가니 가끔 서울 생활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소서리는 옥천군에서도 오지 마을에 속한다. 들어왔던 길로 나가야 되고, 버스도 하루에 4번밖에 들어오지 않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 버스나마 탄 사람이 없으면 건너 뛰기 일쑤이다. 그런 두메산골이어서 아직도 농촌의 순박한 마음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좋다.

이런 우리 마을 주위에 작년 어느 때부터 도회지 사람들이 슬슬 몰려와서 땅들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사는 도회지 사람들이야 왔다갔다 농사도 지으며 주말 농장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짐작컨대 이른바 투기임이 분명해 보인다.

마을 입구 전망 좋은 곳의 조그마한 밭을 사서 넓지막한 터로 만든 사람은 대전에 사는 공무원이라고 했다. 그도 땅에 나무와 잔디를 심고 도랑을 내고 작은 조립식 집을 짓더니 부부가 주말이면 뻔질나게 왔다 갔다. 그들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인지 처음 한두달은 매주 거의 빠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그들의 얼굴을 보는 주말이 점점 줄어 들더니 지금은 얼굴조차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그들이 오지않아 보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은 아니지만 주말농장으로 사용하겠다던 그 터에 해 놓고 간 흉물스런 한 모습이 오갈 때마다 마음에 거슬린다. 마을 주민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고 도회지 문화를 그대로 이식시켜 놓은 듯해 볼썽사납다.

삽, 곡괭이 등의 농기구를 전시하듯 바깥에 걸어놓았는데 쇠사슬로 칭칭 감아 놓아 다른 사람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해 놓은 것이 그것이다.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게 집안에나 넣어둘 일이지 밖에 걸어놓고 쇠사슬로 감아놓은 소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직도 우리 마을엔 농기구를 집안 마당에 두고, 쓰지 않을 때는 누구나 빌려 쓸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농촌의 마음이다. 한편으로는 농기구를 놀리는 것을 일종의 낭비라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상부상조의 마음을 이런 데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도회지 사람은 외진 곳도 아닌 마을 입구,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십 번 오가는 길목의 터에 누가 가져갈까봐 농기구를 저렇게 놓아두었다. 이것은 그의 야박한 마음을 전시해 놓은 것이자 도회지 이기문화의 이식이나 다름없다. 그것 뿐만 아니라 아직 농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마을 주민들에 대한 심리적 횡포나 마찬가지다.

세상 문명이 발전해서 우리나라가 일일 생활권으로 진입했고 외국과도 전화로 실시간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마치 지구가 이웃이 된 세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편리하고 발전된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사는 마음이다. 내 것을 내 놓으며 약자를 돌보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은 21세기인 지금도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도회지 사람들이 농심을 망각하고 각박하고 경쟁적인 도회지 삶을 우리 마을 주위에 이식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순진한 농심(農心)을 침범하는 야박한 도심(都心)이라고 표현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농심 #도심 #주말농장 #농기구 #쇠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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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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