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운동회...의순이 꺽쇠 향숙이가 그립다

여전히 만국기가 펄럭이던 딸아이의 운동회에 다녀와서

등록 2007.05.06 16:38수정 2007.05.06 16:4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부터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함성소리와 박수, 달리기하는 소리가 교향악의 웅장한 리듬처럼 아파트 밀집지역을 휘감는다. 높고 커다란 아파트 사이에 가여운 몸짓으로 웅크리고 있는 작은 초등학교.


a 2학년 생의 흥겨운 게임

2학년 생의 흥겨운 게임 ⓒ 김대갑

아파트 단지에서 유일하게 흙을 밟으면서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이다. 그나마 초등학교라도 가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평소 아이들이 회색 시멘트만 보아 와서 이러다가 흙 색깔을 모를까봐 무척 염려스러웠다. 비록 마사토(돌과 흙의 중간 단계의 흙)이긴 하나 학교 운동장의 흙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이자 놀이감일 것이다.

a 줄지어서 기다리자

줄지어서 기다리자 ⓒ 김대갑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5월 4일, 예전의 우리들처럼 아이들은 운동회를 하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은 예전에 운동회는 대운동회라고 해서 통상 10월경에 하는 것을 뜻했지만, 오늘날의 운동회 5월 4일 운동회를 뜻한다. 우리 어릴 때 어린이날 운동회는 작은 운동회였고, 진짜 운동회는 오곡백과가 풍성한 가을에 열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a 달리기 준비

달리기 준비 ⓒ 김대갑

운동회는 시골에선 최고의 축제였다. 그리고 도시라 하더라도 온 가족이 먹을 것을 싸들고 운동회에 갈 정도로 집안 전체의 흥겨운 놀이이자 정겨운 놀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 같아 조금은 씁쓸했다.

a 죽어라 뛰어라!

죽어라 뛰어라! ⓒ 김대갑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줄다리기와 릴레이, 박 터트리기, 반별 달리기 대회 등 운동회 종목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운동회가 시작되는 모습도 어찌 그리 진화가 안 되었는지. 연지와 곤지를 바른 1학년생들이 색동저고리를 입고 앙증맞게 춤을 추는 모습이나 2학년생들이 4인 1조로 편을 나누어 장애물 넘기를 하는 것도 참 비슷했다.

a 스탠드에 늘어선 아이들

스탠드에 늘어선 아이들 ⓒ 김대갑

반 별 달리기 대회는 조금 달랐는데, 우리 때는 그냥 죽어라고 달리기만 했는데, 지금은 중간에 훌라후프를 한 번 넘어야 하는 장애물 달리기로 바뀐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모습은 온 가족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먹는 풍경이 완전 사라진 점이다.


a 훌라후프 장애물 넘기

훌라후프 장애물 넘기 ⓒ 김대갑

운동회 전날에 어머니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부산하셨다. 온 가족이 먹을 점심을 준비하고, 밤과 감자, 고구마를 삶으셨고 사이다와 과자를 가방에 차곡차곡 담으셨다. 그리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삶은 계란을 준비하셨다. 고단하고 어려운 살림살이였지만 운동회 날은 명절만큼 풍성한 날이었다. 그래서 운동회 날은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던 즐거운 날이었다.

a 재잘거리는 아이들

재잘거리는 아이들 ⓒ 김대갑

딸아이가 앉아 있는 스탠드로 가보니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똑같은 운동복을 입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그 풍경도 어찌 그리 똑같은지. 운동복과 운동화가 고급 소재로 바뀌었고,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을 뿐, 유년 시절의 풍경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온 느낌이었다.


a 펄럭이는 만국기 위의 푸른 하늘

펄럭이는 만국기 위의 푸른 하늘 ⓒ 김대갑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만국기가 오색 창연하게 휘날리고 있다. 축제와 흥겨움의 상징인 만국기. 온 나라가 다 모여 축제를 즐긴다는 의미에서 반드시 걸리는 만국기를 보며 다시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병철이, 의순이, 자물통, 꺽쇠, 춘식이, 향숙이는 다 어디로 갔는지. 어쩌면 지금 이 운동장에서 그들도 아이들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흡족하게 대견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겠지.

오늘의 경기 결과는 청군 승. 딸아이는 다행스럽게도 청군이었다. 흡족한 딸아이의 얼굴 위로 봄의 햇살은 융단처럼 부드럽게 내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운동회 #축제 #만국기 #청군 백군 #삶은 계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AD

AD

AD

인기기사

  1. 1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최근 알게 된 '평생직장', 정년도 은퇴도 없답니다
  2. 2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3. 3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은퇴 하면 뭐 하고 살거냐?" 그만 좀 물어봐요
  4. 4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임종 앞둔 아버지, '앙금'만 쌓인 세 딸들의 속내
  5. 5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