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

천사 같은 장애자 아들과 며느리를 둔 치매 노인의 애환

등록 2007.05.07 09:04수정 2007.05.0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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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고개를 향해 가는 김씨 할머니, 지팡이처럼 굽은 허리 때문에 잘 걷지도 못한다. 한 동네 사는 박씨 할머니가 김씨 할머니와 점심을 먹자며 초대했다.


골목길을 걸어가는 블록담장 너머로 뼈만 남은 생선 같은 나무 문짝이 흉흉하다. 텃밭을 지키고 있는 마늘과 상추들이 폐가의 적막함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대도시에 폐가가 있다는 것이 화창한 봄날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우리 동네의 풍경이자, 호남 소외와 역차별의 현주소였다. 전주공단 지역의 빈 집은 그곳만이 아니었다. 다세대 주택도 유리창이 깨져 있고 '방 있음'이라는 종이광고가 붙어 있다.

LPG주유소를 지나 두 개의 택시사가 있는 텃밭 끝에서 세살배기 아이가 손을 흔든다. 다가가자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배꼽인사를 한다. 두 볼에 뽀뽀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흔이 가까운 할머니가 미색 고운 한복을 입고 있었다. 손을 잡아드리자 길에서 넘어져 딱지가 붙은 이마를 들고 환하게 웃는다.

순대가 삼겹살과 만난 찌개를 보자 대문 앞 한 평 남짓 텃밭의 상추가 떠올랐다. 들었던 수저를 놓고 상추를 뜯었다. 상추에 밥 한 술과 삼겹살과 순대를 올리고 먹는 쌈밥이 일품이었다. 도라지 엑기스 차를 마시고 김씨 할머니와 마주앉았다. 작년에 세례를 받은 할머니가 두 번째로 보는 고백성사였다.

두 할머니와 참외를 놓은 상에 둘러앉았다. 치매와 가는귀가 먹기 시작한 김씨 할머니에게 박씨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을 건넨다.


"할머니! 아침에 아들에게 전화가 왔는데 왜 그러셨어요. 고백성사 보라고 했는데 산에 소풍간다고 한밤중에 목욕을 하고 밤새도록 옷장의 한복을 죄다 꺼내 입고 그래요. 옆방에서 밤새도록 딸그락거리는데 잠을 잘 수가 있겠어요. 다리 한 쪽으로 아내와 생선을 팔고 밤새 편히 쉬어도 힘들텐데, 왜 그렇게 아들을 힘들게 하세요. 얼마나 폭폭하면 전화를 해서 아들이 울먹이겠어요."

대도시의 폐가가 빈익빈부익부의 우리 사회를 고발하고 있는 것만 같다.
대도시의 폐가가 빈익빈부익부의 우리 사회를 고발하고 있는 것만 같다.최종수
"나도 왜 그런지 몰라. 허벅지까지 절단한 왼쪽 다리에서 조금씩 뼈가 자라서 아픈가봐, 그래서 약을 먹고 있는데 내가 못된 년이지. 사고 당하고 낳은 아들이 군대를 갔다 왔어.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의족 한 번도 못했어. 절단한 다리가 너무 짧아서 의족을 낄 수가 없대. 억지로 끼고 하루만 다니면 의족을 고정하는 쇠가 사타구니를 벌겋게 만들어 놓으니까 그냥 한 쪽 다리로 다녀. 그런 아들인데 내가 짐만 되는 거야."(눈물을 글썽인다)


"큰 아들은 일찍 죽고 둘째 아들은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고 딸 셋은 시집가고 없잖아요. 할머니 갈 데도 없는데 왜 그러세요. 막내아들 사고 났을 때 할머니가 보상비도 받지 말라고 했다면서 왜 그렇게 힘들게 하세요."

"사고 나던 날, 친구들이 자꾸 불러대서 나갔지.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공동작업 중이었는데 경운기가 전복이 되었어. 운전한 친구가 잘못 했지. 그 친구에게 보상금을 받아야 하는데 이미 다리를 절단한 상태인데 보상금 조금 받는다고 다리가 다시 정상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내가 그만두자고 했지. 그런 아들인데 내가 왜 그렇게 아들을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연신 눈물을 훔친다. 내 눈가에도 전염되고 만다.)

"아침마다 비 들고 와서 방청소 하고, 가끔 똥 싸면 그 옷을 빨아야 하는데, 그런 아들이 어디 있어요. 또 세상에 둘도 없는 며느리잖아요. 멀쩡한 남편도 버리고 도망가는 세상인데 다리 하나 없는 남편과 함께 살아보겠다고 트럭에 생선 싣고 동네방네 돌아다니잖아요. 지금 입고 있는 한복도 며느리가 아침에 손으로 빨아서 다리미로 말려서 입혀준 옷 아니에요. 그런 아들이 어디 있고, 그런 천사 같은 며느리가 지금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골목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희망의 길이다.
골목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희망의 길이다.최종수
"불쌍하고 안쓰러운 아들이고 고마운 며느리인데 내가 왜 그런지 몰라. 하루 빨리 하늘로 불러달라고 기도하는데 그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거야."

아들 이야기에 자꾸 눈물을 훔치는 김씨 할머니와 그 말을 듣는 박씨 할머니 두 눈에도 눈물이 가득하다. 눈물을 감추려고 천장을 보지만 이내 들키고 만다. 연민의 마음은 이렇듯 이심전심인가 보다.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발걸음마다 할머니의 천사 같은 아들이 떠올랐다. 자라나는 뼈의 고통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한다는데, 최첨단 의학이라면 자라는 뼈의 고통은 물론, 뼈에 보조기구를 박아서 의족을 할 수 있을 텐데. 트럭으로 생선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것도 대형마트에 밀려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이라 의족은 꿈도 꾸지 못할 텐데. 어떻게 도울 수 없을까.

20억~30억 아파트 운운하는데, 단 몇 백 만원이 없어서 의족도 할 수 없는 사회, 가난하지만 천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유럽처럼 세금을 거둬서 해 주는 사회는 정말 꿈일까….

화창한 봄날에 고개가 자꾸 땅으로만 떨어졌다. 그 길가에서 장애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손수레에 무언가 잔뜩 실려 있었다.

"할머니 무엇을 그리 무겁게 실고 가세요?"
"아, 식품 도매상에 가서 가끔 허드렛일을 하는데, 유통기한 며칠 남지 않았거나 며칠 지난 오뎅이나 맛살 같은 것이에요. 끓여서 먹으면 아무 탈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려고요."

횡단보도를 건너 손수레가 할머니와 함께 덜거덕 덜거덕 걸어간다. 할머니를 뒤따르는 손수레가 점점 작아지더니 휘어진 골목길로 사라진다. 아파트 한 평만 국민 복지를 위해 세금으로 낸다면 손수레는 사라지고, 한쪽 다리가 없어 안타까운 우리의 시선도 사라질 것이다. 50평에서 한 평이 작은 49평, 70평에서 한 평이 작은 69평. 그 한 평이 얼마나 행복한 사회를 만들까?

폐가의 텃밭에서 자라는 마늘처럼 서민들의 희망도 함께 자랐으면….
폐가의 텃밭에서 자라는 마늘처럼 서민들의 희망도 함께 자랐으면….최종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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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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