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배분교의 작지만 특별한 어린이날 축제

나만의 텃밭 가꾸고, 종이눈싸움, 신발찾기, 물풍선 릴레이, 스티커 모으기까지

등록 2007.05.07 10:04수정 2007.05.0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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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눈길이, 관심이 아이 하나하나에 미치고, 운동장 음악회도 열며, 별 총총한 밤하늘을 보며 운동장 캠프파이어도 할 수 있는, 그리고 학교 주변을 돌며 식물도감도 만들고, 토요일에는 학교 옆 개울에 돌 쌓아 수영장을 만들어 노는 정배학교 아이들.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하길 고대합니다. ⓒ 공순덕

어린이날 전날인 5월 4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정배리, 전교생 45명의 작은 학교 정배분교에서 특별한 운동회가 열렸습니다.

작년까지처럼 본교인 서종초등학교에서 열리는 행사의 곁방살이 참가가 아니어서 좋았고, 선생님들의 정성이 담뿍 담긴 풍성한 프로그램이 가득해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행사는 모두 세 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첫째, 텃밭에 모종심기
둘째, 파랑조끼팀-빨강조끼팀의 단체경기
셋째, 선생님-학생의 게임을 통한 스티커 확보하는 개인경기

나만의 텃밭에 오이, 가지, 고추 모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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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유치원생 효준이부터 6학년 큰누나 연주까지 모두모두 자기 이름으로 된 텃밭의 자랑스러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물도 듬뿍 주고, 잘 자라라고 소곤소곤 이야기도 들려주며, 앞으로도 잘 돌보겠다는 약속을 마음속으로 꼭꼭 눌러두었습니다. ⓒ 공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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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심은 곡식들은 여름날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듬뿍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 정배 아이들에게 오이·고추·가지 따고, 고구마·감자 캐는 뿌듯한 보답으로 돌려줄 것입니다. ⓒ 공순덕

정배분교 운동장 끝 한켠에는 멋진 단풍나무가 자라고, 작은 텃밭을 구비한 체험학습장이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녀석들이 가끔씩은 몰래 들어가 나무에 거름도 주는 다목적(!) 학습장입니다.

이 작은 공간에 정배분교 전교생 45명, 그리고 유치원생 9명의 개인 텃밭을 만들고 오이, 가지, 고추, 토마토, 양배추, 고구마 등 여러가지 야채를 심었습니다.

작은 고사리 손으로 흙을 파고, 정성스레 모종을 옮겨다 토탁토닥 기름진 흙을 덮어주었습니다. 5, 6학년 형님들은 유치원생과 1, 2학년생을 도와주고, 3학년 규혁이와 찬영이는 두런두런 초보 농군의 진지함으로 어떻게 하면 고구마가 잘 자랄지 의논에 열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섯 살 유치원생 효준이부터 6학년 큰누나 연주까지 모두모두 자기 이름으로 된 텃밭의 자랑스러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물도 듬뿍 주고, 잘 자라라고 소곤소곤 이야기도 들려주며, 앞으로도 잘 돌보겠다는 약속을 마음 속으로 꼭꼭 눌러두었습니다.

이날 심은 곡식들은 여름날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듬뿍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 정배 아이들에게 오이·고추·가지 따고, 고구마·감자 캐는 뿌듯한 보답으로 돌려줄 것입니다.

땀 흘리며 곡식 가꾸기에 나섰던 오늘의 농사꾼 54명. 열심히 일을 했으니 새참이 빠지면 안 되겠지요. 엄마들이 준비한 간식, 떡과 음료수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왁자하니 조금 후 벌어질 파랑조끼팀-빨강조끼팀 대결에 누가 누가 어떤 편인지를 이야기하며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종이 눈싸움으로 시작된 단체 경기

파랑조끼팀과 빨강조끼팀으로 나뉜 54명의 전사들. 첫 번째 경기는 종이 눈싸움입니다. 배구경기장만큼 큼직한 네모 공간에 양편으로 갈라선 두 팀. 종이를 구겨 만든 인공눈을 상대편의 땅에 던져 넣습니다. 더 많이 던져 넣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유치원생 채운이, 해빈이, 진호부터 6학년 큰형님 채서, 민영, 재원이까지 자기 진영에 떨어진 눈을 집어 상대편 땅으로 던져 넣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종이눈은 진짜 눈송이처럼 하늘을 가득 채우며 하얗게 흩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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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조끼팀과 빨강조끼팀으로 나뉜 54명의 전사들. 첫 번째 경기는 종이 눈싸움입니다. 유치원생 채운이, 해빈이, 진호부터 6학년 큰형님 채서, 민영, 재원이까지 자기 진영에 떨어진 눈을 집어 상대편 땅으로 던져 넣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종이눈은 진짜 눈송이처럼 하늘을 가득 채우며 하얗게 흩어집니다. ⓒ 공순덕

신나는 종이눈 던지기가 끝나고, 드디어 누가 이겼는지를 판단하는 시간. 양팀 대표가 종이 눈을 세는 동안 심판인 선생님들도, 4학년 상희, 수연, 지현이도 마음을 졸이며 눈을 반짝이고 지켜봅니다. 숫자가 적은 팀이 이기는 것입니다. 결과는 파랑조끼팀의 승리. 파랑 조끼팀에서 환호성이 터집니다.

두 번째 게임은 초등학생의 신발찾기 릴레이입니다.

커다란 원 안에 부지런히 달려가 한쪽 신을 벗어놓고 달려옵니다. 상대 팀에 질새라 온힘을 다해 달려가서는 원 안에 모두모두 신발을 벗어놓습니다.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고, 그렇게 신발 벗기를 모두 마치고, 이번에는 벗어 놓은 신을 찾아 신고 달리기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벗어놓기와 달리, 신발 찾기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45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신이 뒤죽박죽된 신발 더미 속에서 내 것을 찾아 신고 달려야 합니다.

마음은 급하고, 신발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고, 용빈이는 자기 신을 찾아 재빨리 달려가는데, 겨우겨우 찾아 신으려는 동형이의 발에는 운동화가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신발찾기 릴레이가 끝났습니다. 두 번째 게임의 승리는 빨강조끼팀.

세 번째 게임은 물풍선 나르기. 물을 담은 풍선을 전달하는 게임입니다. 나르는 중간에 물풍선이 터져 옷을 적시고, 유치원생 어린이들의 느린 손길에 형님들의 응원소리가 커져갑니다. 힘과 생각을 모아 물풍선을 나르는 동안, 서로 돕고 함께하는 협동과 조화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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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급하고, 신발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고, 용빈이는 신을 찾아 재빨리 달려가는데, 겨우겨우 찾아 신으려는 동형이의 발에는 운동화가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 공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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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풍선 나르기. 물을 담은 풍선을 전달하는 게임입니다. 나르는 중간에 물풍선이 터져 옷을 적시고, 유치생 어린이들은 느린 손길에 형님들의 응원소리가 커져갑니다. 힘과 생각을 모아 물풍선을 나르는 동안, 서로 돕고 함께하는 협동과 조화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될 것 같습니다. ⓒ 공순덕

개인경기-스티커 모으기

빨강조끼팀-파랑조끼팀의 단체 경기가 끝나고 개인경기가 이어집니다. 다섯 선생님이 각각 맡아서 진행하는 종목을 통과하며 스티커를 모으는 게임입니다. 한 종목에 받을 수 있는 스티커는 최대 다섯 개.

최탁 선생님이 담당한 투호. 한 사람당 모두 10개의 화살을 던질 수 있습니다. 최대 5개까지 항아리에 넣으면 스티커 5개를 받을 수 있습니다. 6학년은 멀리서 던지고, 유치원생이나 1, 2학년은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던집니다. 10개를 모두 던지고도 스티커를 받지 못한 친구들은 줄의 맨 뒤로 가서 기다렸다가 다시 던질 수도 있습니다.

김용수 선생님이 담당한 탁구공 치기. 자기 학년 수만큼 떨어트리지 않고 공을 치면 스티커 1개를 받을 수 있습니다. 1학년은 1번, 6학년은 6번을 계속 쳐야 합니다. 한 번에 안 되면 여러 번 시도해서 스티커 다섯 개를 모두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줄은 아주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아직 해야 할 경기는 많이 있는데, 마음은 바쁘고, 탁구공은 자꾸 라켓을 미끄러져 도망갑니다.

김종언(분교장) 선생님이 담당한 신발 던져 넣기. 훌라후프 안에 신발을 넣으면 스티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두들 신발을 원 안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신발 던져 넣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삐뚤삐뚤 날아가는 운동화는 원 밖으로, 옆으로 삐져나가기 일쑤입니다. 아쉬운 탄성이 이어지고, 스티커를 받으려는 열망에 가득찬 아이들의 집중도는 점점 높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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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후프 안에 신발 넣기 게임. 모두들 신발을 원 안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삐뚤삐뚤 날아가는 운동화는 원 밖으로, 옆으로 삐져나가기 일쑤입니다. ⓒ 공순덕

김기봉 선생님이 담당한 새총 게임. 페트병으로 만든 과녁을 고무줄 총으로 맞히는 게임입니다. 쉬운 듯하면서 쉽지 않습니다. 5, 6학년 형님들은 성공률이 높은데, 1, 2학년 어린이 들은 실패율이 높습니다. 화살 3개를 주고 1개를 맞히면 스티커 2개, 2개는 스티커 4개, 화살 3개를 모두 명중시키면 스티커 5개를 받을 수 있습니다. 3학년 규혁이는 한 번에 3개를 모두 맞히고, 자신의 성공에 스스로도 놀라는 눈치입니다.

이승한 선생님은 가위바위보, 묵찌빠 게임을 담당하셨습니다. 가위 바위 보로 선생님을 이기면 스티커 1개, 묵찌빠에서 이기면 스티커 두 개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 순서가 오면 가위바위보와 묵찌빠를 1번씩 할 수 있습니다. 운이 따른다면 쉽게 스티커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은 가위바위보의 프로선수여서 그리 녹록치가 않습니다.

정배분교 작은 운동장이지만 여기 저기 흩어져서 게임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을 찾아 뛰어다니며 스티커 확보에 나선 54명 아이들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힙니다. 하지만 부지런만 하다면 기회는 여러 번 있습니다. 여기저기 눈치껏 줄이 짧을 곳을 찾아다니며 스티커를 받으려는 녀석들의 열기로 5월의 정배학교 운동장이 뜨끈뜨끈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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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경기가 끝나고 개인경기가 이어집니다. 다섯 선생님이 각각 맡아서 진행하는 종목을 통과하며 스티커를 모으는 게임입니다. 한 종목에 받을 수 있는 스티커는 최대 다섯 개. ⓒ 공순덕

쓰고 남은 페트병, 신고 있는 운동화, 못 쓰는 종이, 풍선과 같은 소품 몇 가지 만으로 준비한 어린이날 운동회. 대단한 승부욕, 함께 힘 합하는 협동심, 목표를 달성하려는 집중력과 열성이 가득한 진짜 신나는 운동회, 나만의 텃밭을 마련한 충만함도 함께 하는 진짜진짜 행복한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교실 한 칸을 나누어 2개 학급이 쓰고, 교무실도 없어

서종초등학교 정배분교는 전교생 45명, 유치원생 9명, 정연신 유치원 선생님까지 모두 6명의 선생님이 함께하는 작은 학교입니다.

2007년 신입생 13명이 입학하며 학생 숫자가 부쩍 늘었고, 4학급에서 5학급으로 늘면서 교실이 부족해 교실 하나를 나누어 2학급(학년)이 사용합니다. 도서실 한쪽에 책상을 놓아 1학년이 사용하고, 교무실 공간이 없어 과학실 한쪽에 나무책상과 재봉의자 같은 동그란 나무의자를 놓아 교무실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시골분교여서 출퇴근이 불편한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숙직(또는 사택) 공간은 찬바람이 술술 들어가는 낡은 건물이고, 급식실이며 강당으로도 사용되는 3-4평의 조립식 건물이 있는 낡고 작은 학교입니다.

한동안은 작은학교 통폐합 방침으로 학교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고, 실제로 그런 시도가 있어 동네사람과 학부모가 교육청, 양평군청을 쫓아다니며 폐교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은학교 정배학교는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는 선생님들, 은행축제로 작지만 기금을 만들고 운동장 캠프를 계획하는 열성적인 학부모,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한 54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뛰어놀며 초등학교 6년의 소중한 시간을 씩씩하게 꾸려나가는 공간입니다.

선생님의 눈길이, 그리고 관심이 아이 하나하나에 미치고, 운동장 음악회도 열며, 별 총총한 밤하늘을 보며 운동장 캠프파이어도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주변을 돌며 식물도감도 만들고, 토요일에는 학교 옆 개울에 돌 쌓아 수영장을 만들어 놀기도 합니다.

5월 4일 열린 '정배학교 어린이날 운동회'에서는 스티커를 열심히 모은 아이들에게 풍성함 상품도 주어졌습니다. 지우개, 칼, 연필과 풀이 들어 있는 문구세트, 종이접기 세트와 미니깔판, 학부모회에서 준비해준 양말세트까지. 선물을 한보따리 받아들고 얼굴 가득 입이 벌어진 정배학교 아이들.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하길 고대합니다.

<정배학교 아이들과 선생님>

1학년 : 박진우, 박태영, 신지원, 연겸서, 이강희, 이선민, 이준성, 이희원, 조혜령, 최미르, 최은애, 최정욱, 하민수
2학년 : 김명준, 김영우, 김원중, 박범수, 유정헌, 이동형
3학년 : 김수진, 김용빈, 김홍재, 박지수, 백규혁, 심규문, 유세영, 장소연, 정찬영
4학년 : 김성준, 김수연, 송상희, 신지현, 장연준, 최은아, 한승현
5학년 : 박태민, 최은지
6학년 : 권채서, 유민영, 유재헌, 장성준, 장재원, 장주경, 조연주, 한정민
유치원: 권채운, 김해빈, 박진호, 송현우, 이단우, 이창진, 이태유, 이현담, 장효준
선생님: 김용우, 김기봉, 김종언, 최탁, 이승한, 정영신, 박동배(기사님)
#정배학교 #작은학교 #분교 #운동회 #어린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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