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남성이 '금녀의 벽' 허문다

혁신적 리더십으로 여성인재 발탁 앞장

등록 2007.05.07 12:02수정 2007.05.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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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미가 여자냐? 기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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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난나

[권지희 기자] 성공한 여성들의 이면에는 ‘생각이 앞선’ 남성 직장상사들의 지원이 있었다. 이들의 첫번째 특징은 ‘일’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업무 중심적 판단력이 성별 고정관념을 넘어 능력 있는 후배 여성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원로 언론인인 윤호미(67·호미초이스 대표)씨가 한국 언론 최초의 여성 파리특파원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바로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보수적이고 ‘고루한’ 경상도 남자였지만, 일에서만큼은 ‘여자여서 봐주거나 여자여서 못하게 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

“1985년 당시 남성기자 중에서도 정치·경제부 기자만 보내던 해외특파원에 내내 문화부 기자만 했던, 그것도 여성인 저를 발탁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놀라운 거였죠. 사실 파리특파원을 지원한 남성기자도 여럿이어서 반발이 컸는데, 최 국장이 한마디로 정리하더라고요. ‘윤호미가 여자냐? 기자지.’”

최 전 대표는 이후 노동부 장관 시절 전재희(한나라당 의원)씨를 국장급으로 발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금녀의 영역’이었던 정치부의 벽이 깨질 수 있었던 것도 최고 인사결정권자인 편집국장의 ‘마인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 종합일간신문 가운데 여성 정치부 기자가 가장 많은 곳은 중앙일보. 10년차, 9년차, 5년차 이렇게 3명이다. 박보균 편집국장이 정치담당 부국장 재직 당시 능력 있는 여성을 과감히 정치부에 보낸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정치부 5년차(정기자 9년차)인 이가영 기자는 “선배 여기자들이 워낙 열심히 하는 데다 특종까지 터뜨리니까 여성을 정치부에 배치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적어졌다”고 전했다.

“여성 구청장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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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서울시 정무부시장 - 여성구청장 발굴 노력 ⓒ 여성신문

정치권도 여성에게 열악한 곳이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5·31 지방선거 당시 지방정치는 이른바 ‘생활정치’로 불리며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정작 공천권을 가진 남성 당협위원장들은 ‘준비된 여성후보’가 있어도 “본선 경쟁력이 낮다”는 이유로 공천을 꺼렸고,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하지만 권영진(서울시 정무부시장) 당시 한나라당 노원을 당협위원장은 달랐다. ‘강북지역에 여성 구청장을 만들자’는 전략을 세우고 여성후보 물색에 적극 나선 것이다.

하지만 출마 의지를 가진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 접촉한 여성이 자진 포기한 후 다른 사람 같았으면 여기서 그만뒀을 테지만 권 부시장은 다시 두명을 더 찾아 출마를 권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단 한명의 인재를 발굴해내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는 이후 당내에서 내내 회자됐다.

권 부시장은 “하겠다는 후보도 없는데 여성을 공천하겠다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면서 “나 혼자였다면 불가능했겠지만, 권영세·김택일 당시 공동위원장들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 추진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양희 한국여성개발원 양성평등정책연구실장은 이들을 ‘혁신리더’라고 지칭한다. 혁신리더의 가장 큰 자질이 바로 여성을 평가절하하는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능력을 볼 줄 알고 키워줄 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연구실장은 “성공한 여성들에게 ‘당신이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직장상사’라고 답한다”면서 “상사의 대다수가 남성임을 고려하면 이러한 남성 혁신리더가 늘수록 조직의 변화 속도도 한층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녀의 벽 #윤호미 #최병렬 #권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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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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