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 타고 '임실 치즈마을'에 가다

치즈 만들고, 풀 썰매 타고 돌아와 떠오른 우리 엄마

등록 2007.05.08 14:37수정 2007.05.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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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치즈 마을 ⓒ 배지영

치즈마을에 가기로 한 달 전에 예약을 했다. 그곳에서는 제 시간에 오라는 당부를 했다. 군산에서 남원 가는 길에 임실 치즈마을이 있다. 익숙한 길이어서 걱정 없이 갔다. 그런데 인터넷에 나와 있는 대로 '임실역 신호등구간 남원방향 3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 방향'은 헛갈렸다. 임실역을 찾았을 때에야 비로소 길이 보였다. 역에서 3분 거리였다.

치즈마을의 원래 이름은 느티마을이다. 이름에 맞게 동네 어귀부터 느티나무가 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치즈를 만들었다. 벨기에 사람이었던 한 신부가 임실성당에 부임해 와서 이름도 지정환으로 바꾸고 농민들과 산양을 길렀다. 우유로 만든 두부인 치즈를 만들어서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게 개발했다.

마을에서 치즈를 만드는 곳까지는 대략 1km쯤 되는데 경운기를 타고 간다. 경운기들은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처럼 느티나무 그늘 아래 쭉 서 있었다. 아이들은 경운기 시동이 걸리기 전부터 들떠 있었는데 친구 길림의 작은 아들 준섭이는 의젓했다. 올해 유치원에 들어간 그 애는 작년까지 김제 외가에서 컸다. 오토바이와 경운기 타기는 일상이었다.

경운기를 타고 치즈 만드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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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기다리는 택시처럼 경운기가 서 있다. 운전은 마을 어르신들이 하신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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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타고서 치즈 만드는 곳까지 간다. ⓒ 배지영

우리는 경운기에서 내려 모짜렐라 치즈를 만들었다. 우유에 유산균을 넣고, 소의 네 번째 위장에서만 나온다는 레넷(우리나라에서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모두 수입함)을 넣고 저은 다음 10분쯤 기다렸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자의 '방침'을 따랐다.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빌던 것처럼, 치즈에 대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퀴즈를 풀었다.

"유산균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우리 음식은 무엇일까요?"
"김치, 청국장, 된장."

문제는 심사숙고해서 풀 만큼 어렵지 않아서 아이들이 손부터 들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었다. 답을 말할 수 있는 기회는 골고루 돌아가서 선물도 공평하게 받았다. 치즈마을에서 만든 요구르트였다. 우리가 문제를 푸는 사이에 우유는 순두부처럼 훌렁훌렁 거렸다. 다시 덩어리가 되려면 7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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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는 쭉쭉 늘리는 스트레칭이 잘 되어야 쫄깃하고 맛있다. ⓒ 배지영

그래서 미리 덩어리가 된 커드(굳어진 상태) 치즈를 받았다. 치즈를 주무르다가 수제비처럼 뚝뚝, 깍두기 크기로 떼어냈다. 5분 정도 기다렸다가 뜨거운 물에 담가서 치즈를 치댔다. 아이들은 다시 밀가루 반죽처럼 된 치즈를 모서리마다 잡고서 뒷걸음질 쳤다. 치즈가 한정 없이 늘어날수록 아이들 웃음소리는 커졌다.

모짜렐라 치즈는 잡고 늘려줄수록 쫄깃해진다고 한다. 레넷을 넣을 때부터 우리들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치즈는 한껏 늘어나서 아이들한테 재미와 감격을 주었다. 다 만든 치즈는 두부처럼 틀에 넣어 진공 포장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식빵에 모짜렐라 치즈와 문제를 맞혀서 선물로 탄 요구르트에 과일을 섞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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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에게 젖병을 물릴 수도 있다. ⓒ 배지영

밖으로 나오니까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송아지들이 우유 냄새를 맡고 버둥거렸다. 송아지는 태어나서 며칠 동안만 어미의 초유를 먹고, 그 뒤로는 젖병에 든 우유를 먹는다. 젖병 꼭지를 물었을 때 제대로 안 나오면 성질을 부렸다. 우리 아이는 아기였을 적에 1년 동안 젖병을 물지 않고, 일터에서 내가 오기만 기다렸다. 젖 냄새 때문에 나한테 '달겨들었다'.

송아지 주위에서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던 아이들은 젖떼기 하듯 송아지와 멀어졌다. 풀 썰매를 타러 언덕으로 올랐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탔지만 갈수록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만나면 좋다가도 저희들끼리 싸우고, 생떼를 써서 우리 눈앞을 캄캄하게 만든다. 그런데 풀 썰매 타는 아이들 웃음소리는 우리의 근심을 날려버렸다.

집에 돌아와 떠오른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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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썰매 타기,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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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좋았다가도 서로 싸우지만... 아이들이 주는 웃음은 힘이 세다. ⓒ 배지영

타고 놀던 썰매를 제자리에 두고, 경운기 타고 왔던 길을 걸어서 되돌아갔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들 얼굴에는 때꼬장물이 흐르고, 목에는 때 목걸이가 걸렸다. 집에서라면 먼저 씻겼을 테지만 그 상태로 치즈마을에서 주는 치즈 돈까스를 먹었다.

군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주 한옥마을에 들렀다. 한지 축제와 어린이날이 겹쳐서 사람들이 많았다. 치즈 마을에서 한가하고 평온했던 마음은 곤두섰다. 어른 셋이서 아이 다섯 명을 감당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리저리 날뛰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는 게 버거웠다. 여러 가지 체험과 볼거리가 많았지만 돌아섰다.

집에 돌아와 아이와 둘이 샤워하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는 초등 1학년, 3학년, 5학년, 중학교 1학년인 우리 4남매를 데리고 어린이날에 광주 사직동물원에 갔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택시를 타고 갔다. 해찰 하다가는 동물원 우리 속으로 떠밀릴 만큼 사람이 많았다. 엄마는 동생 둘과 앞서 가면서 열 걸음에 한 번씩 언니와 내 이름을 부르셨다.

엄마는 여름이면 우리들을 해수욕장에 데려가셨다. 물놀이 가는 거라 새끼들 짐도 많은데 닭백숙에 참외, 무거운 수박까지 다 챙겨가지고, 옆집 아이까지 데리고 길을 나섰다. 우리들은 수영복을 가지고, 튜브를 가지고, 먹을 것을 가지고, 아무 일도 아닌 일로, 밖에 나와서도 티격태격 싸웠다.

엄마는 동물원과 해수욕장에서 무사히 돌아오던 길에는 길에서 파는 '잔 소주'에 해삼을 드셨다. 저 만큼 떨어진 우리 귀에도 들릴 만큼 엄마가 "캬!" 하면서 마시는 소리는 맛있었다.

커서 가장 먼저 마시고 싶은 술이 소주였다. 그때 30대 중반의 시골 아줌마였던 우리 엄마. 아이 넷에, 먹을 것을 싸들고, 버스를 갈아타던, 장정 같은 활력으로 사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임실 치즈마을은 미리 예약해야 갈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임실 치즈마을은 미리 예약해야 갈 수 있습니다.
#임실 치즈 마을 #모짜렐라 치즈 #풀 썰매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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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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