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어느날 갑자기 눈이 내렸습니다.영석이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권광식
지방 소도시에 있는 초등학교의 우리반 아침 풍경은 색다릅니다.
1교시 시작 전 아이들은 "영석이 아줌마! 연필 한 자루 빌려주세요." "지우개 좀 빌려주세요"라고 소리치면 영석이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지우개를 만날 빌리니? 엄마한테 사달라고 말씀 드려서 사가지고 다녀라."
그러면 영석이가 엄마를 따라 다시 말합니다.
"집에서 엄마 보고 사달라고 해."
2학년 우리 반엔 13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남자 아이 10명, 여자 아이 3명 지독한 성비 불균형입니다. 남자 아이 중 하나인 영석이는 근이완증(유전염색체 결함으로 근육이 줄어들고 관절이 굳어가는 병)이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작년 1학년 입학 때만 해도 어렵게나마 걷는 것을 본 것도 같은데 지금은 엉덩이 부분까지 근육마비가 와서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하루 종일 옆에 같이 계십니다.
영석이네는 다문화가정입니다. 엄마는 조선족입니다.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영석이 엄마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을 쳐다보란 말이야."
그러면 아직 철이 덜든 영석이란 놈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왜, 때리느냔 말이야."
참 답답한 경우죠. 엄마는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우리 영석이는 그것이 많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손가락이 아파 글씨를 쓰지 못하겠다고 투정입니다. 엄마는 왜 안 쓰느냐고 야단이십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갑니다.
그러나 같이 생활하는 12명의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매일 천사들을 보는 행운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옆 1학년에 통닭 간식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착한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반 친구들 몫을 따로 챙겨오셨습니다.
닭다리가 부족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당연히 영석이는 닭다리를 먹습니다.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코흘리개 개구쟁이인 2학년들이지만 불평이 전혀 없습니다. 매일 등하교 시간에 엄마가 영석이를 업고 출입문을 나섭니다.
문을 열어주는 신호, 책가방을 들어주는 옆집 사는 재영이, 휠체어를 같이 밀고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천사들을 봅니다. 많이 양보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영석이는 짜증을 잘 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무척 잘 웃는 아이입니다. 웃음소리가 참 맑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건강해지면 좋을 텐데….
장애아와 함께 수업을 진행하면서 통합학습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초록색의 신록이 함께 하는 교정에서 어린 천사들의 예찬가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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