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단체의 TV광고, 비결은 7만불 모금

[하승창의 뉴욕리포트] 미국 사회단체 방송광고에서 배울 점

등록 2007.05.09 15:47수정 2007.05.10 16:29
0
원고료로 응원
'stop the cuts!' 광고 장면 캡쳐
'stop the cuts!' 광고 장면 캡쳐
처음에는 공익광고인 줄 알았다.

왜 우리가 흔히 보지 않는가? 에너지절약 문제라든가, 원자력이 안전하다든가, 국민연금이 참 좋은 제도라고 홍보하는 광고 말이다. 아니, 한미FTA에 대한 정부의 선전도 광고로 방영되고 있는 것을 보면 '공익광고'라는 표현보다는 '정부 홍보 광고'라는 게 적절할 것같다.

어찌 됐든 그런 광고의 일종인 줄 알았다. 의료보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연대의 정신을 강조하는 광고영상. 이를 미국 사회 내 마이너리티들이 등장해서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홍보 광고로 생각해서 처음에는 자세히 듣지는 않았는데, 반복해서 듣다보니 복지혜택을 삭감하고 있는 뉴욕주지사에게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스톱 더 컷(stop the cuts)!" 그들의 요구는 복지예산 삭감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공익광고? 아니, 사회운동진영의 광고잖아?

90년대 뉴트 깅그리치 미국 전 하원의장은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적이 있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그는 방만한 복지예산의 삭감을 주장했고, 이를 관철시키면서 이민자들의 복지혜택도 축소되기 시작했다. 특히 의료보험제도는 그 비효율성 때문에 항상 논란거리였다. 그런데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주지사도 최근 이 문제를 제기한 모양이다.

여하간 이 광고에는 복지혜택이 삭감되었을 때 갈 곳 없는 노인들과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씁쓸한 표정이 노출돼 있다. 복지 혜택이 축소될 경우 이들을 어찌하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사회복지는 사회적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고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가 이 광고에 담겨있는 것이다.


누가 이런 광고를 하는 것일까? 정치적 반대자가 하는 것일까? 광고 내용보다도 광고주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또 저런 광고를 받아주는 방송국에 대해서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우리도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정부 광고에 대항해서 저런 광고를 방영해보면 어떨까? 가령 '한미FTA의 진실'…. 뭐, 이런 광고 말이다.


스피처 뉴욕주지사에게 직접적으로 요구사항을 말하는 광고도 있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난 당신을 뽑았는데, 의료관련 예산을 줄이는 일을 하다니…"라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광고는 한가지 종류가 아니라 다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TV에 광고를 내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처음 이 광고를 접했을 때 사회운동 진영의 광고라는 것은 상상치 못했던 것이다.

한국에선 광고 못해... 돈이 없으니까

뉴욕 메릴랜드 등 동부지역의 의료분야 노조 등이 주도하는Helthcare Education Project 설명 화면.
뉴욕 메릴랜드 등 동부지역의 의료분야 노조 등이 주도하는Helthcare Education Project 설명 화면.
이 광고를 위한 프로그램은 '건강관리 교육 프로젝트(Helthcare Education Project)'.

의료예산의 삭감으로 직접 영향을 받게 되는 뉴욕 메릴랜드 등 동부지역의 의료분야 노조(1199SEIU United Healthcare Workers East)와 뉴욕 병원연합(The Great New York Hospital Association) 주도로 이뤄지고 있고, 관련단체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노조와 병원협회가 주도하니까 광고자금은 있었던 것 같다.

스피처 주지사가 1억2000만달러의 의료예산을 삭감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당장 3만6000명 정도의 의료영역에서의 실업자가 생길 것이라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가령 가정간호·노인이나 움직이기 힘든 환자들을 집에서 돌봐주는 것(Home Nursing) 활동에 문제가 생겨서 환자들이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

이런 서비스를 주로 제공하는 기관은 비영리·자선병원이다. 저소득층에게 지원되는 의료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 이들 저소득층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병원과 관련 인력, 환자들이 당장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 단체들이 광고를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개 돈이 없기 때문이다.

주요일간지에 등장하는 광고는 주로 재정이 넉넉한 보수적 단체들이 대부분이다. 일부 사회단체들도 모금을 통해 광고를 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돈이 적다 보니 광고단가가 싼 한 두 신문에 몰리기 마련이다. 참여연대나 녹색연합 등이 라디오 광고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회원모집을 위한 광고였다.

정책광고도 내고 시민도 조직하고

'stop the cuts!' 광고 장면 캡쳐
'stop the cuts!' 광고 장면 캡쳐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에도 간혹 미국 사회단체들의 광고가 실리는데, 마찬가지로 광고 단가가 비싸니까 모금을 통해 해결한다. 지난해 뉴욕 청년학교가 주축이 되어 이민법 문제로 <뉴욕타임즈>에 전면광고를 실은 것도 모금에 의한 것이었다.

이 모금에는 261개의 단체와 1만4000명의 개인이 참여했다. 모금 총액은 7만불 정도. 이 돈으로 <뉴욕타임즈> 뿐 아니라 <워싱턴포스트> 및 다른 신문에도 광고를 할 수 있었다. 7만불 중 거의 절반은 거리모금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거리에서의 모금 자체가 운동과정이기도 한 셈이다.

이 광고를 보면서 든 생각은 모금을 운동방식의 하나로 삼을 수 있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단체들도 모금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시민들의 참여 등 주변 사정이 여의치 않고, 단체들 역시 적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를 현실화시켜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내가 본 TV 광고야 돈이 있는 노조가 중심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사회단체들이 광고를 만들고 실리게 만드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운동으로 만들어 가면 어떨까. 한 번의 광고를 내는 것 자체가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주장을 제대로 전달하는 수단도 갖게 되는 일거양득의 운동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운동 #광고 #뉴욕 #하승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3. 3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4. 4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5. 5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