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

걸어 갔다가 걸어 돌아오는 작은 여행에 대하여

등록 2007.05.10 08:48수정 2007.05.1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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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산길

산길 ⓒ 안준철


a 염주괴불주머니와 개별꽃

염주괴불주머니와 개별꽃 ⓒ 안준철

갑자기 삶이 단순명료해질 때가 있다. 지난 주말, 집에서 나와 가까운 산길로 막 접어들 무렵, 그런 느낌이 또 한 번 나를 찾아왔다. 집을 나와 걸어서 불과 십 분 거리에 산이 있고, 그 산길에서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들을 만날 수 있고, 땀 흘려 산을 오를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있는데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더욱이 내가 주말마다 찾는 산길은 흙의 감촉이 더 없이 좋은 비단길이다. 그런 산길을 지척에 두고 살고 있으니 무엇이 부러울 것인가.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오를 수가 없다. 동네 뒷산이라고 산을 허투루 생각했다가는 필경 일을 그르치고 만다. 하지만 그런 후회의 순간들조차도 나를 한 뼘 더 자라게 하는 좋은 보약이 되어준다.

a 산길

산길 ⓒ 안준철


a 괭이밥과 꽃마리

괭이밥과 꽃마리 ⓒ 안준철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이 이 세상에는 무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그것을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도 사실은 그것이 쉽지 않다.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시대에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돈을 지불하고 얻을 수 있는 행복만을 추구하는 버릇이 생긴 탓이다. 시원하고 향긋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데 창문을 닫고 대신 선풍기를 틀어놓은 격이니 그것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a 뱀딸기꽃과 열매

뱀딸기꽃과 열매 ⓒ 안준철


a 제비꽃(오른쪽, 왼쪽은?)

제비꽃(오른쪽, 왼쪽은?) ⓒ 안준철

형형색색의 고운 꽃들과 대화를 나누며 호젓한 산길을 걷다 보면 아파트 평수를 늘이다가 인생을 종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된다. 돈을 주고 산 거주의 공간만이 내 집은 아닌 것이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발길이 닿는 곳까지, 눈길이 닿는 곳까지 그곳이 바로 내 집이요, 내 정원이다. 그러면서 또한 남의 집도 될 수 있으니 그런 소중한 공동소유의 공간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될 일이다.

두세 시간을 산에서 보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내가 지불한 돈은 0원. 내가 유발한 공해물질은 0ppm. 그러니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작은 여행이라고나 할까? 요즘 나는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돌아오는 작은 여행을 즐긴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떠날 수 있고, 내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남의 희생이 뒤따르지 않으니 좋다.

a 길

ⓒ 안준철


a 길에서 만난 풍경

길에서 만난 풍경 ⓒ 안준철

작은 여행이 맛을 들이다 보니 그리되었을까? 요즘 들어 내가 좀 작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뼈가 삭아져 몸집이 작아지기도 한다는데 그래도 괜찮을 성싶다. 내가 작아지면 내 곁에 선 누군가가 좀 더 커 보이지 않겠는가. 나이 오십이 넘도록 철딱서니 없이 내 키만 키우느라 여념이 없었으니 이제라도 주변을 살피는 것이 덜 부끄럽지 않겠는가.

오늘은 입추
산길을 걸었네
말없이 피었다 가는 너를 보고
한없이 부끄러웠네.


(장일순의 시, '입추')


철마다 이름도 없이 산에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면 부끄러워진다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 그가 왜 작은 꽃 앞에서 부끄러워했는지 이제야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a 고들빼기

고들빼기 ⓒ 안준철


a 나비와 씀바귀

나비와 씀바귀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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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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