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대표, 아직은 긴장하셔야 합니다

[주장] 억지 주장 후일담... 한미FTA, 제대로 협상하긴 했을까

등록 2007.05.10 19:42수정 2007.05.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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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자료사진).

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내 마음 속에는 아래 이야기가 내내 떠올랐습니다. 널리 알려진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다시 인용해봅니다.

옛날에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를 하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늘 수심에 잠겨 있었다. 하루는 이웃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내게는 우산 장수인 큰아들과 짚신 장수인 작은아들이 있다오. 그런데 햇볕이 나는 날에는 큰아들이 장사가 안 되고, 비가 오는 날에는 작은아들이 장사를 망치니, 내가 하루라도 마음 편할 날이 있겠소? 그저 해가 떠도 걱정, 비가 와도 걱정뿐인 게 내 신세라오."

그러나 이웃집 사람이 말했다. "그런 걸 가지고 무얼 그리 걱정하십니까? 이제부터는 햇볕이 나면 짚신 파는 둘째 아드님 장사가 잘될 것을 기뻐하고, 비가 오면 우산 파는 큰아드님 장사가 잘될 것을 기뻐하십시오."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그 뒤부터 어머니는 해가 떠서 즐겁고, 비가 와도 그저 신이 날 뿐이었다.


정말 사물엔 언제나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케 하는 이야기입니다. 헌데 한미FTA 협상과정을 내내 지켜보면서, 좀 다른 측면의 관찰이지만 FTA의 본질은 '그 두 아들 중 한 사람의 일을 빼앗아 다른 아들에게 몰아주는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한의계 데모 탓에 실익 못 얻었나요?

물론 '기회를 늘어난 아들이, 기회를 뺏긴 아들이 벌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사실 이것도 오랜 시간을 두고 봐야 그 진실을 알 수 있겠지만)'는 것이 FTA에 임하는 노 정권의 논리이지만, 과연 이러한 단순무식한 유물론적 산술 계산이, 그 우산·짚신장수 두 아들의 어머니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더 많은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FTA 협상이 종결된 상황에서, 더 이상 그 협상철학에 대해 시시비비하는 것은 자제하려 합니다.


헌데, 10일 <오마이뉴스>에서 '한미FTA 협정문, 드디어 인터넷에 뜬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글에는 협상 과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우리 측 김종훈 수석대표와의 협상과정 후일담도 곁들여져 있었는데, 그 내용에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떤 일에서든 올바른 개념정의는 협상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합니다. 특별히, 그것이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 간 외교조약이라면 더 이상의 언급은 사족이 될 겁니다.


헌데, 본문 중에 언급된 한의사에 대한 김종훈 대표의 개념은 대단한 무지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만일 <오마이뉴스> 기사에 인용된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면, 김종훈 대표는 간호사 자격 상호인정문제에서 실익을 얻어내지 못한 것이, 마치 한의계 데모의 영향으로 미국 측에 한의사 자격 상호인정 문제를 양보하지 못한 탓인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미국 한의사'는 없습니다

a 지난 4월 2일 오후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종훈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나란히 앉아 밝게 웃고 있다.

지난 4월 2일 오후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종훈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나란히 앉아 밝게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쯤에서 김종훈 대표에게 한 가지만 여쭈어봅시다.

미국 내 동양의학임상에서 대체 의사로 인정받는 집단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계셨는지요?

결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미국 한의사'라는 있지도 않은 존재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것부터가 외교관으로서 무지와 자질 부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요?

아마도 기사에서 언급된 '미국 한의사'란 미국의 NCCAOM 침구사 면허자(독립진단권이나 투약권이 배제된 집단)를 두고 김종훈 대표가 혼동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자연의학임상에서 '의사(Doctor)'로 지위를 인정받는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지금쯤은 김종훈 대표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한방의학이 수천 년 전부터 제도권 의학으로 인정받아온 동양과는 달리, 서구는 근래 들어서야 비로소 서양의학을 보완하는 보조수단으로 한방의학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같이 의사 직업군의 배타성이 강한 국가에서는, 침구사나 한약사가 하는 역할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서양의학체계로 비유하자면, 미국 내 침구사의 역할은 기껏해야 '양방 물리치료사' 역할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와 닿는 비유를 말씀드리자면,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시의원과 국회의원의 차이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침구사 직업군을 한국에서는 한의사로 인정해 달라'는 미국 측 주장은, 미국의 일개 주지사가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역할을, 시 하원의원이 우리나라서는 국회의원 역할을 하겠다는 격인데, 이것이 과연 국가간 외교거래에서 합리적인 주장입니까?

유능한 외교관이었다면 설득시켰을텐데

이러한 명백하고도 설득력 있는 논리가 분명 존재하건대, 인터뷰에서 밝힌 김종훈 대표의 '한의대학생들의 집단적 데모로 간호사를 잃었다'는 논지의 억지주장을 접하고 보니, 김 대표가 자신의 외교적 자질부족으로 인한 협상실패의 책임을, 오히려 엉뚱한 집단의 이기주의 탓으로 몰아가는 대표적인 부적격자로 보입니다.

김 대표가 참으로 격에 어울리는 유능한 외교관이었다면, 당당하고 정확한 논리를 내세워 미국의 웬디 커틀러 대표를 머쓱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며, 더불어 한미 양국에서 공히 그 교육내용이나 격에서 커다란 차이가 없는 간호사의 상호자격인정 문제를 관철시킬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말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요? 더불어 염려되는 점은, 이러한 무지와 무논리가 FTA협상 전체에 퍼져있지 않았는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지를 돌아보며 반성하지 않고 엉뚱한 곳을 탓하는 이런 파렴치한 분들이 우리나라 외교의 최전선에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현 정부가 FTA협상에 임했던 현주소가 아니었는지 반문해봅니다.

일단, 협상 전문을 공개한다고 하니 두고 볼 일입니다. 김종훈 대표님, 아직 긴장을 늦추실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준회 기자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의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이 글은 <한겨레 블로그>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김준회 기자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의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이 글은 <한겨레 블로그>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한미FTA #김종훈 #한의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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