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마피아'를 향한 유쾌한 지적

에프라임 키숀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등록 2007.05.12 11:44수정 2007.05.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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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겉표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겉표지 ⓒ 마음산책

현대예술은 언제부터인가 애매모호하게 변해갔다. 그 옛날, 조각이나 그림을 보는 순간 "아름답다!"는 소리가 나오던 때가 있었지만 오늘날의 예술 작품을 보면서 그런 감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방 한가운데 있는 좌변기, 색이 바랜 수도꼭지, 어린아이의 소행으로 보이는 낙서 등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예술비평가로도 널리 알려진 에프라임 키숀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서 이것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아니, 비판이라는 단어보다는 '풍자'라는 단어가 맞을 게다. 저자는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현대예술을 비꼰다. 예술가가 들으면 당장에 책을 집어던질지도 모를 정도로 농도가 진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민망했던 감정들이 유쾌하게 변해간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저자가 대중들이 하고 싶었던 말들, 예컨대 "저게 아름다워?" 혹은 "저게 예술작품이야?"라는 물음을 대신해서 유머러스하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부풀어 오른 콘돔'이나 '두 개의 테두리 줄', '왼쪽 모서리에 있는 갈색의 얼룩'이 있다고 해보자. 이걸 보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대중은 정말 그렇게 여길 수 있을까?

대중은 의아할 것이다. 특히 그것을 설명하는 용어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가령 '부풀어 오른 콘돔'을 두고 "태아에 근접하는 파괴 계수의 폭발을 예고하는 기하학적이고 몽유병자적인 의식의 행태"라고 표현했다고 해보자. 이해 가능할까?

'두 개의 테두리 줄'을 "리듬을 넣은 선의 아폴론적 완성"이라고 했다면 어떨까? '왼쪽 모서리에 있는 갈색의 얼룩'을 두고 "자기도취적으로 끓어오르는 힘의 유희가 만들어 낸 팽창하는 부드러운 구조"라고 했다면?

저자는 그런 일이 대중을 현대예술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뿐 아니라, 대중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것, 저자는 그 말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해 불가능한 전문 용어에 침묵했던, 혹은 동조하는 척 했던 대중으로서는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가 유쾌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농담으로 범벅된, 거침없는 풍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날카로움도 보인다. 그 정체는 무엇일까? 저자가 근본적인 문제점을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예술이 이렇게 된 데는, 미술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상인, 화랑 경영자, 비평가 등의 집단이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예술 마피아'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진정한 예술은 관객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인데, 돈 혹은 인기, 그리고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이 그것을 지배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덧붙이고 있다. 생각할수록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이러한 목소리는 미술관과 화랑으로부터 아무 쓸모도 없는 엉터리 작품을 철거시키게 될 것이고 자신을 권위자라고 칭하는 미술 전문가들을 저 높은 곳에서 끌어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변질된 '예술판'을 유쾌하게 비판하고 있어 속 시원하다.

동시에 돈이나 권력 같은 것에 상관없이, 관객들을 위해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진짜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있으니 아름답기까지 하다. 예술비평 책치고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쓸 만한 예술비평책인 셈이다.

그런데 제목에 '피카소'는 왜 등장할까? 혹시 피카소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는 뜻일까? 이탈리아 예술비평가 조반니 파피니의 책에서 알려진 피카소의 예술적 유언에는 "나는 내게 떠오른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그들이 나의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라는 말이 있다. 제목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마음산책, 2007


#에프라임 키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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