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죄인인 세상, 난 아직 '반쪽 선생'

[주장] '스승의 날' 학기말 이전하고 기념행사도 없애자

등록 2007.05.15 09:28수정 2007.05.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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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참교육학부모회는 지난 2005년부터 '스승의 날'을 5월 15일이 아닌 2월말로 옮기자는 운동을 벌였다.

참교육학부모회는 지난 2005년부터 '스승의 날'을 5월 15일이 아닌 2월말로 옮기자는 운동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옛날에는 서당에서 '책거리' '책씻이'라 하여 일정 과정이 끝난 후 국수·송편·경단·곡물 등으로 기념식을 하여 훈장의 노고에 답례했다고 합니다.

그 따뜻했던 온정이 어느 순간 자식 이기주의로 변질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스승의 날만 되면 '촌지·선물·향응' 어쩌구 하는 단어들이 따라다니면서 선량한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이면 교묘하게 따라다니는 부정어들을 없애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차원에서도 스승의 날 학기말 이전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옮긴다 해도 지금보다 나아질 게 없을 것이라는 반박이 있다면, 그건 예상이지 실제가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교단이 마음 안에서 차오르는 존경심과 감동으로 강과 산을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5월 스승의 날은 학생과 교사가 교감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 '스승'의 의미를 부여하기가 좀 곤란하다는 것 아닐까요? 교사와 학생이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좀 길게 상호작용한 후에 '스승의 날'이 있어야 '스승'의 의미가 산다는 것이지요.

현재 초중고 교육과정을 놓고 교사와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스승의 날을 이전하는 것이 지금보다 낫다는 판단이 듭니다. 학생들이 한 학년씩 진급할 때마다 대략 1년 정도 상호 작용한 교사와 정담을 나누고 학급별 소박한 의식을 갖게 한다면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사제간 정이 듬뿍 담기는 날이 될 것입니다.

졸업한 제자들과 술 한 잔, 그 기쁨

'스승의 날' 이전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게 '스승의 날' 휴무 부분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게 좋은데, 스승의 날에 논다니까 왠지 허전해요."

아이들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아는 한 중학교 여교사의 말입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스승의 날은 교사 자신의 교육 활동을 되돌아보고 졸업한 제자들과 소통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에 휴교하여 졸업생과 소통하는 시간을 원합니다.

내 경우 스승의 날을 맞아 군대에서 휴가를 내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학창시절을 이야기했지요. 스승의 날 행사를 치르고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게 한 계기는 되겠지만, 현재 교육 구조 속에서는 은근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학생들에게 기억에 남는 교사였다면 졸업하고 나서도 학생들은 잊지 않겠지요. 그래서 스승의 날은 졸업생들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교육철학이 얼마나 빛을 발하는지 살펴보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어떤 교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저 또한 이 시대 스승상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냥 시쳇말로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없다고 하는데 나 또한 스승이기보다는 선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대학서열화와 입시경쟁 구조 속에서 우리 교사들이 과연 존경받는 스승으로서 사도를 걷고 있는지도 반성해봐야 합니다.

'교사', 직업 선호도 1위이면서도 비난받는 모순

a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시작을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시작을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 학생들이 하루 열대여섯 시간 동안 사각의 교실에서 신음하는 상황 속에서 과연 누가 스승일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수십 년 간 이어오는 입시 경쟁 교육이 존재하는 한 이 땅 교사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선생을 스승답게 하려면 우선 무한 입시경쟁 시스템을 고치는 일이 병행돼야 합니다. 통제와 억압 속에 아이들을 가둬놓고 그나마 여백을 틈 타 아이들과 인간적 교류를 해야 하는 인문계 고교의 현실 속에서 저는 반쪽짜리 선생밖에 안 됩니다.

교사직이 여전히 직업 선호도 1위를 고수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비극적인 모순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도 그 비난의 도마 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당장 몸이 아파도 조퇴하기를 두려워하고, 남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고통을 교사에게 털어놓지 않고, 교과교육보다 소중한 예술적 향기는 뒷전인 채 소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학생의 최고선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이 시대 교사는 늘 반쪽일 뿐입니다. 그러니 존경심은 늘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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