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물 없어도 편지는 기쁘게 받아주세요

등록 2007.05.14 14:25수정 2007.05.22 13:2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게 다야?"

가정의 달 5월. 어린 시절 난 이것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물의 달 5월.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연달아 있었기에 끊임없이 선물을 받거나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날은 스승의 날이었다.

내가 선물을 받은 것도,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꽂아 드린 날도 아닌 스승의 날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교탁 위에 늘 수북이 쌓이던 엄청난 양의 선물들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어린 마음에 일기장에 '선물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까지 썼을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담임선생님이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 기색이 역력한 빨간 색 글씨로 이렇게 답을 써놓았던 것이 기억난다.

'선생님은 직업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선물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있는 법이다. 가정의 달 5월이라는 말답게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5월은 꽤 아름답게 추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워야 할 5월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얼룩져 추한 5월로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 추한 5월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난 담임선생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담임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밀어준 덕분에 반장도 할 수 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고 따랐다. 비록 남자 선생님이라 조금 무섭긴 했지만 속으로는 우리를 무척 아껴준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4학년에 올라가고 나서도 스승의 날이 되자 그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스승의 날쯤 해서 전에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고, 난 당연히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아마 당시 엄마께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내가 4학년으로 올라간 후 몇 학년 몇 반 담임을 맡았는지까지 물어본 듯했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어머니한테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그거 왜? 그 선생님한테 편지 갖다 줄라고?"
"응."
"갖다 주지 마. 편지만 갖다줘봤자 안 좋아 할 거야."

그때는 왜 어머니께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어머니께서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너무 미워하신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그랬기에 편지를 다 쓰고 나서 원래 계획대로 그 선생님께 편지를 갖다 주러 갔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랜 기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2개월만에 보는 그 선생님 얼굴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선생님께 편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 표정은 기쁘다기보다 뚱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내게 했던 말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편지뿐이야? 다른 애들은 다 저렇게 선물 갖고 왔는데."

편지만 가져온 내가 못 할 일을 한 듯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이 가리킨 사물함 위에 수북이 쌓인 선물 위에 보탤 하나를 가져오지 못한 내가 죄를 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조용히 그 교실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풀이 팍 죽어버렸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었다.

그 얘기를 듣고 어머니께서는 그 선생님께 좋지 않은 말씀을 혼잣말로 하셨다. 비록 그런 일을 겪었지만 대학생이 될 때까지도 난 그 선생님에 대해 나를 예뻐해 준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했다. 어머니 일기장에 써져 있던 그 충격적인 말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또 사과 상자를 들고 오란다. 아 힘들다. 가져가지 않으면 자식을 미워 할 테니 가져가야겠지.'

너무나 충격적이었기에 어머니께 사실이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셨다. 그제야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가져갔던 내 순수한 마음에 대해 '선물은?'이라고 물어본 그 선생님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선생님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고 적은 월급을 받는 만큼 돈에 대한 욕심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아이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만약 당시 그 기억이 아니라면 어린이날 받은 굉장한 선물, 특별한 선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던 기억으로 보다 특별한 5월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좋아하던 선생님께 정성을 가득 담아 쓴 편지를 가져가서 '선물을 안 가져왔다'고 핀잔을 들었던 그 아픈 기억이 남들과는 좀 다른 정말 '특별한' 5월의 기억을 만들어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남들과는 정말 다른 '특별한' 5월을 기억해 아픈 어린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한 영화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형님도 깡패 이전에 사람 아니었습니까?"

난 이 대사를 이렇게 바꾸어 혹시라도 아직까지 있을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선생님들께 말해주고 싶다.

"선생님도 물질의 노예이기 전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 아닙니까!"

특별한 5월, 이 땅에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사랑으로 가득 찬 특별한 5월로 만들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적은 월급에도 아이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선생님이 더 많다는 거 잘 압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선생님이 한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 선생님들을 못 믿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거 잊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특별한 5월> 응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적은 월급에도 아이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선생님이 더 많다는 거 잘 압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선생님이 한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 선생님들을 못 믿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거 잊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특별한 5월> 응모합니다.
#스승의 날 #선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김건희·윤석열 스트레스로 죽을 지경' 스님들의 경고
  3. 3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된 한국... 성명서가 부끄럽다
  4. 4 미국 보고서에 담긴 한국... 이 중요한 내용 왜 외면했나
  5. 5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