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율법주의 거부했을 뿐"

조직신학회 토론회서 구약폐기론 논란 해명

등록 2007.05.14 17:59수정 2007.05.1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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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교수가 신학자들을 만나 구약폐기론 등 자신을 둘러싼 신학 논쟁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도올은 율법이 아니라 율법주의를 반대했다는 말로, 구약폐기론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었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신학자들을 만나 구약폐기론 등 자신을 둘러싼 신학 논쟁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도올은 율법이 아니라 율법주의를 반대했다는 말로, 구약폐기론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었다.뉴스앤조이 신철민

"나는 율법을 거부하지 않았다. 율법주의를 거부했을 뿐이다. 구약의 가치를 거부하지 않는다. 구약 없는 신약은 성립 불가능하다. 신약에는 구약의 소중한 가치들이 들어 있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도올 김용옥 교수(세명대 석좌)가 자신이 주장했다고 알려져 교계 안팎에서 격론이 벌어진 '구약폐기론'에 대해 입을 열었다. 도올은 조직신학회가 5월 11일 감신대에서 한국조직신학회(회장 이정배)가 개최한 신학 토론회 '한국교회와 성서'에 참여해 <기독교성서의 이해>와 <요한복음 강해>을 저술한 의도와 두 권의 책에 대한 한국교회 안팎의 반응에 화답했다.

신약적 성찰 없는 구약 직접 인용에 반대

구약폐기론에 관해 도올은 "나는 단지 신약과 동 떨어진 구약을 기독교인들에게 직접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 하나다"고 해명했다. 구약에 나오는 안식일 준수나 십일조 헌금 등을 신약적인 재해석 없이 율법적으로 지키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도올은, 구약의 십일조는 레위 족속에게 바치는 것이고 신약성서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예수도 십일조를 내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지녔는데, 목사들이 설교할 때 성경의 권위를 빌어 십일조를 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사기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도올은 "교회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말하면 되는데, 왜 거짓말을 하느냐. 설교의 권위를 위해 성서를 활용하는 건 좋은데, 이게 바로 네가 믿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도올은 이러한 자신의 소신을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구약과 신학, 조직신학 등 분야에서 활동하는 신학자들이 나와 김용옥 교수와 토론을 벌였다. 다수 학자들은 도올의 주장에 대한 품은 의문을 해소했다고 말했고, 일부 학자는 도올이 자기 입맛에 맞는 성서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렸다고 비판했다.
구약과 신학, 조직신학 등 분야에서 활동하는 신학자들이 나와 김용옥 교수와 토론을 벌였다. 다수 학자들은 도올의 주장에 대한 품은 의문을 해소했다고 말했고, 일부 학자는 도올이 자기 입맛에 맞는 성서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렸다고 비판했다.뉴스앤조이 신철민

신학자들, "의문이 해소되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신학자들도 도올의 설명을 들으며 그동안 품은 의문이 해소되었다고 답했다.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는 "도올이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고 알려졌지만, 두 책을 정독해보니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율법주의, 권위주의의 해독을 강력하게 경고한 것이지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도올을 거들었다.

김준우 교수(감신대)는 "도올이 구약폐기론자로 오해받는 이유는 그의 책 제목 때문이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도올이 <기독교성서의 이해>라는 책을 냈는데 이 책의 내용에서 구약이 빠져 사람들이 '도올이 의도적으로 기독교 성서에서 구약을 뺀 것 아니냐'고 의혹을 보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책 제목을 '신약성서의 이해'로 수정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또 김 교수는 도올이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해 율법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음에도 구약폐기론자로 알려진 것은 도올이 그의 책에서 "예수 메시지 핵심은 율법의 부정이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라며, 이 주장을 "예수 메시지의 핵심은 율법주의 부정이다"고 수정하는 건 어떠냐고 말했다.

나아가 김은규 교수(성공회대 구약학)는 "도올의 책과 강의에서 구약폐기론은 그렇게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며 "도올이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기독교가 팍스 로마나와 팍스 아메리카나 등 지배 권력의 이념에 동조하고 배타적인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경고하고 폐쇄적인 신학계를 향해 혁명적인 변화를 촉구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김광식 교수(전 연세대, 전 협성대 총장)는 세 학자와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김 교수는 "도올이 '환원'이라는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했다"며 "구약이든 조직신학적 논의든 그가 동의하지 않는 분야는 모두 싹둑 잘라버렸다. 도올의 복음은 '싹둑복음'이다. 그런 식으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구약 비판은 방편적인 설명일 뿐"

도올 김용옥 교수.
도올 김용옥 교수.뉴스앤조이 신철민
토론자로 나선 신학자들의 지적에 대해 도올은 우선 자신이 구약의 이해가 모자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도올은 "헬라어 원전을 보면서 요한복음을 강의했지만 히브리어를 모르기에 구약을 깊게 논의할 수 없었다. 원전에 접근하지 못하면서 구약을 논의하는 것은 학자적인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히브리어를 가르쳐주시면 공부할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도올은 "교리의 세계에 깊이를 갖추지 못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도 말해, 학자로서 겸양을 잃지 않았다.

또 구약의 하나님이나 율법의 의미를 평가 절하했다는 비판에 대해, 도올은 요한복음이 말하는 바를 강조하기 위해서 대비되는 구약을 인용했던 것이며, 이것은 자신의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단어나 문장에 얽매여 저자의 의도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말이다.

"내 논리가 유치하다고? 기독교에 애정 갖고 치밀하게 분석했다"

그러나 김광식 교수의 '싹둑복음' 발언에 대해서는 "어머니에게 신앙을 물려받았고 한국 기독교가 잘되기를 바라는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유치하게 비판하지 말고 원로답게 말하라"고 맞섰다. 해체의 방법을 썼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학문 방법론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대꾸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아마추어라는 비난에 대해서도, 도올은 "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전학자"라며 "남이 따라올 수 없는 학문적 엄밀성을 지녔다"고 반박했다. 다만 그는 "고전학적 분석만으로 책을 쓸 수는 없기에 드라마적 요소를 삽입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취화선>의 대본을 쓴 바 있는 도올은 드라마를 엮어가는 자신의 은사를 성서 풀이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기독교 내부에서 도올의 주장을 영지주의, 마르시온주의, 아리우스의 입장에 경도되었다고 비판한 데 대해서는 신약성서가 기록되던 시대를 논하면서 안 다룰 수 없어서 언급했을 뿐, 오늘날에는 그러한 논쟁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도올은 "권력을 잡은 이들에 의해 아리우스나 마르시온 등에 대한 자료가 왜곡되었기에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해방적인 기독교가 윽박지르는 기독교 변질"

패권적인 기독교에 억눌린 또 다른 기독교를 복원하려는 도올의 노력은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는 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도올은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선교사에 의해 수동적으로 유입된 게 아니라 시대적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이들이 주체적으로 수용했다"고 말했다. 조선 시대 율법과도 같았던 유교가 지배하던 신분제 세상에서 기독교는 평등한 세상을 맞보게 해주었다. 그러나 사람을 율법에서 해방시킨 기독교 정신이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되었다고 도올은 한탄했다. 급기야는 이해를 추구하지 않고 믿으라고 윽박지르는 식의 기독교가 20세기 대한민국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도올은 이러한 기독교는 21세기에 더 유지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억압적인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방식으로는 목회가 안 된다는 것이다. 도올은 자신이 두 권의 책을 쓴 이유도 한국교회가 20세기적 기독교를 뛰어넘어 21세기에 걸맞게 이해를 겸비한 종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교회사에서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했던 이들이 가장 좋아한 성서가 바로 요한복음이다. 도올은 요한복음에는 해석과 추상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신학자들에게도 도전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하나님은 진리다. 인격체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거다. 또한 인간이 진리를 깨달을 가능성을 100% 긍정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예수와 다른 인간은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이런 래디칼한 측면까지 들어가서 요한복음을 해석하지 않으면 진정한 신학자가 아니다. 이러한 이론을 수용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겸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도올은 이렇게 주장하면 이단으로 몰리는 한국교회의 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침묵하고 자신과 같은 이들이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도올은 자신이 개인 자격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상대편에서도 개인으로 나서서 치밀한 논리로 대응해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교회나 단체의 권위를 빌려 윽박지른다고 주장했다. 도올은 신학자들이 교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로운 신학을 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도올 김용옥 교수가 발표한 '<기독교성서의 이해>, <요한복음 강해> 이서와 관련된 신학토론회의 발제' 전문이다.

김용옥 교수가 참여한 토론회에는 700여 명의 청중이 몰렸다. 이들은 세 시간에 이르는 발표와 토론을 경청하면서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 청중들의 질문에 모두 답을 하지는 못했다.
김용옥 교수가 참여한 토론회에는 700여 명의 청중이 몰렸다. 이들은 세 시간에 이르는 발표와 토론을 경청하면서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 청중들의 질문에 모두 답을 하지는 못했다.뉴스앤조이 신철민

1.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공화국이며 민주시민사회의 모든 원칙을 준수한다. 나는 민주사회의 한 시민이며 개인이다. 내가 말하는 기독교는 매우 단순한 이런 전제들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독교의 이해방식에 관한 것이다.

2. 그렇다고 나의 기독교에 관한 논의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나 어떤 국적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종교와 국가의 어떠한 유기적 관계도 거부한다. 종교는 오히려 그러한 국가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개체의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것이며, 제도적이라기보다는 내면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가 사회적 가치, 즉 보편적 가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3. 나의 기독교에 관한 논의는 매우 단순한 나의 실존적 사실, 즉 내가 민주시민사회의 한 시민이라는 원자적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즉 기독교는 어떤 종족이나 국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구속적인 제도가 될 수가 없으며 나 개인의 실존의 선택이나 결단의 대상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한 종교의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있을 수 없으며 오로지 대한민국사람이 구원을 얻을 뿐이다. 그 사람은 개인이며 시민이다. 시민사회는 인간 개인의 존엄을 지상의 가치로 삼는다. 개인이 신이라는 존재자에게 복속되는 제도적·법적 권위는 전무하다.

4. 종교의 초기 제식행위는 대부분이 집단적인 것이었다. 부족집단의 춤 같은 것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였다. 아프리카의 민속춤이나 우리나라의 영고·무천이 모두 그런 류의 것이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의 핵심적 신앙행위는 기도이다. 기도는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며 그것은 나의 내면 속에서 나의 실존과 하나님이 만나는 것이다. 예수도 기도를 가르쳤다. 기독교는 이미 출발부터 개인적인 것이었다.

5. 기독교는 민족종교가 아니다. 유대민족의 모든 제식(할례, 절기 준수 등)이나 혈통주의적 관습의 강요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이방선교를 통해 초대교회를 구축했다. 그것은 '예수'라는 신념을 선택한 개인들의 공동체운동이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출발부터 유대민족의 율법주의를 거부했다. 어떠한 종교도 율법주의를 거부하지 않고서는 위대한 종교가 될 수 없다. 공자도 기존의 의례의 권위를 거부한 사람이었고, 불타도 베다의 권위를 거부했다. 기독교가 이제 와서 구약적 율법주의를 직접적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유대교의 아류일 뿐, 기독교가 아니다.

6. 나는 교회를 공동체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동체운동의 기본이념은 교리가 아니요, 사랑, 믿음, 소망, 생존과 아주 보편적 정서다. 교회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배타성이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교리 이외의 어떠한 종교적 신념도 다 배제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교리라는 것은 대부분 후대의 역사적 정황 속에서 형성된 것이며 성서적 근거가 박약하다. 이것이 조직신학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독교의 배타성도 유대인의 다이에스포라와 유사한 피박해집단의 역사적 특수상황에서 비롯된 아폴로제틱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곧 기독교의 본질은 아니다.

7.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오늘 여기에서의 나의 실존을 생각할 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공동체는 기독교라는 교리집단에서만 국한될 수는 없다. 유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토속 서낭당 무교, 이슬람, 여타 다양한 종교신념체계와의 공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들 모두가 인간 내면의 고독을 해결해가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기독교가 이러한 공존을 배제하는 독존만을 고집한다면 나는 그러한 기독교에는 일순간도 나의 에너지를 할애할 수 없다.

8. 종교는 반드시 좋은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발상이나 강박관념을 우리는 버려야 한다. 종교는 나쁜 것이며 악한 것일 수 있다. 종교는 인간의 모든 야만성의 마지막 보루일 수도 있다. 종교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사회일 수가 있다. 단지 우리가 이러한 사회를 꿈꿀 수 없는 이유는 종교를 통하여 형성되어온 인류문명사의 기나긴 관성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종교는 인간세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러한 거대한 추세 속에서 인간세는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고려 사회를 장악하고 유교가 조선왕조를 장악하고 기독교가 20세기 우리 민족의 식민지 역사를 장악한 그러한 강력한 장악성을 21세기부터는 기대할 길이 없다.

9.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서서히 형성되어온 것이다. 이 말은 곧 어떤 한 시점으로서의 기독교의 모습이 기독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형성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1세기의 기독교, 4세기의 기독교, 16세기의 기독교, 21세기의 기독교가 모두 동등한 자격을 지니는 기독교일 뿐이다.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시점에서의 기독교가 모두 동등한 자격을 지니는 기독교일 뿐이다.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시점에서의 성서의 정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4세기말에나 모습을 드러낸 27서체제의 성서나 20세기 한글개역성경은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신약성서의 다른 판본일 뿐이다. 신학도들이 기준으로 삼는 희랍어성서도 19세기말에나 그 모습이 갖추어진 것이다. 희랍어성서 자체가 2000년 동안 진화해온 것이다. 현재의 27서체제의 성경이 기독교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생각도 매우 유치한 발상이다. 가톨릭은 아직도 성서에 근거가 없는 많은 후대의 추가 전승을 교리로 신봉하고 있다.

10. 나는 기독교 '이해'를 위하여 상기의 책 2권을 썼다.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믿음'은 간편하고 또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위태롭다. 그러한 믿음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믿음을 가능케 하는 역사적 환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더 이상 핍박받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기독교를 발생시킨 그러한 절박한 상황의 강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제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반복적 제식은 특별한 감정을 수반하며, 그 감정은 신앙을 유발한다. 그리고 제식은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신화는 합리화된다. 이 합리화단계에서 우리가 말하는 조직적 종교가 발생한다. 그런데 모든 종교적 합리화는 인간의 체험에 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그 정보에 대해서 독특한 권위를 부여한다. 나는 이러한 합리화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의 자유로운 지식의 장 속에서 무전제적으로 다시 소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거부하면 그것은 천박한 독단일 뿐이다. 현대시민사회에서 독단을 중세세기 방식의 도그마틱스로서 유지하려는 것은 사기꾼들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11. 나의 '이해'의 노력은 한국의 기독교를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촉발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21세기의 종교가 '이해 없는 신앙'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양아치적 권위의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시민사회의 논리에 의하여 무기력하게 될 뿐이다. 나의 '이해'가 많이 대중에게 읽히면 읽힐수록 21세기의 한국기독교는 희망이 있다. 성서는 이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이해 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만이 21세기를 버텨낼 수 있다.

12. 나는 기독교에 기웃거리는 이방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기독교의 핵심 인사이더로 살아왔으며 기독교의 가치를 체화한 패밀리 전통 속에서 성장해왔다. 나는 나의 진리탐구가 이 사회의 많은 건강한 기독교운동을 촉발시킬 수 있기를 염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신학계가 자유로운 담론의 장을 확보해야 한다. 교회는 신학자들의 신념이나 언어체계를 컨트롤하면 안 된다. 교회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관심이 신학의 자유로운 개화를 질식시켜서는 아니 된다. 모든 교회는 훌륭한 신학자를 양성하는 데 교육장학금으로서 최소한 십일조를 내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 존립의 이유며 양식이며 의무다. 그리고 교육헌금에 대하여 일체 이념적 클레임을 해서는 아니 된다. 한국교계의 생명력은 오직 자격 있는 신학자의 수준 높은 목회자의 양성에 있다고 나 도올은 굳게 믿는다.


참석자들은 자리가 부족해 계단 등에 앉아서 강연과 토론을 경청했다.
참석자들은 자리가 부족해 계단 등에 앉아서 강연과 토론을 경청했다.뉴스앤조이 신철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용옥 #도올 #조직신학회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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