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결국 '연장전'으로 가나

[분석] 예고된 미국의 요구... 정부 "원칙적으론 재협상 없지만"

등록 2007.05.14 18:17수정 2007.05.1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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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직 뭐라 말하기 어렵다. 원칙적으론 재협상은 없지만, 저쪽(미국)에서 의회 비준을 걸고 들어오면…."

14일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더 이상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문서형태로 (재협상) 요구를 받았나'라고 물었다. 그는 "아직 없다"면서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있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둘러싼 재협상 때문이다. 빠르면 이번주 안으로 미국 행정부의 재협상 요구가 확실시된다. 미국의 일방적 협상 논란 속에 끝난 한미FTA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재협상은 없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은 여전하다. 하지만 결국 미국 요구에 끌려 한미FTA 연장전에 선수들을 내보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크게 얻을 것 없는 재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것도 부담이지만, 그렇다고 미국 요구를 무시할 수만도 없다. 게다가 미국 의회는 'FTA 수정'을 비준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상태다.

그동안 한미FTA를 반대해 온 쪽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재협상이 아니라 협상 자체를 전면 무효화하라는 것이다. 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예고된 미국의 재협상요구... 노동·환경·자동차·농업까지


예고된 수순이었다. 이미 지난달 협상 타결 이후 워싱턴 쪽에선 꾸준히 재협상 요구가 흘러나왔다. 상·하원 민주당 유력 의원들이 중심이었다.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협정문을 가장 먼저 심의하는 곳은 미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산하 무역소위원회다. 샌더래빈 위원장(민주당)은 한미FTA 타결후, "심의 과정에서 협상안이 바뀌지 않는다면 비준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역구는 자동차 3사의 본사가 모여 있는 디트로이트다. 그는 또 작년 9월 3차협상을 앞두고 "한국의 자동차관련 비관세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면서 "협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했었다.

세입세출위원장인 찰스랑겔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전통적인 민주당원으로 미국과 페루간 FTA의 노동조항 변경을 요구해, 재협상을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책 출간기념회 자리에서 "(한미)FTA 내용 가운데 자동차와 쇠고기 조항이 관건"이며 "미흡하다면 FTA안을 의회가 수정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흡'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협정문에 대한 수정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결국 이들은 지난 10일 수전 슈워브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서한을 보냈다. 한국과의 FTA에서 추가적인 주요 문제를 제기한다는 내용이다. 자동차·공산품·농업 및 서비스시장에서의 체계적인 장벽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명시했다.

a 지난 1월 서울 대학로에서 한미FTA 범국본 주최로 열린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미국산 수입쇠고기 상징물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대학로에서 한미FTA 범국본 주최로 열린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미국산 수입쇠고기 상징물을 불태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원에 이은 상원 압력도...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도 눈 앞

미 상원도 만만치 않다. 상원의 FTA담당 창구인 재무위원회다. 맥스 보커스 위원장은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한미FTA 결과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의 관심은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이다. 보커스 위원장의 지역구는 미국의 대표적인 쇠고기 수출지역인 몬타나주다. 한미FTA 5차 협상이 몬타나주에서 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재무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커스 위원장은 오는 2008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쇠고기 수입 재개를 어떤 식으로든 풀어야할 상황에 있는 셈이다.

미국산 쇠고기는 이번 달 들어 수입물량이 크게 늘고 있다. 현재까진 '뼈없는 쇠고기'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쪽은 갈비를 포함한 '뼈있는 쇠고기' 수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보커스 위원장은 한국·페루·콜롬비아·파나마 등과 체결한 FTA 협정에 새로운 노동과 환경 기준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은 '결사의 권리' '단체교섭에 관한 권리' '강제노동 금지' '어린이 노동 금지' '고용차별 철폐' 등 국제노동기구(ILO)의 5가지 핵심기준이 포함됐다.

우리나라는 결사의 권리와 단체교섭에 관한 권리 등 2가지에 대해 아직 비준을 하지 않은 상태다. 국내 노동계로선 환영할 만한 내용인 반면, 재계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송홍석 노동부 국제협상팀장은 "아직 미국 쪽으로부터 구체적인 요구를 받지 않은 상태"라며 "5가지 모두를 준수해야 한다는 쪽으로 온다면 (노동분야는) 재협상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인총연합회 관계자는 "만약 노동분야에서 재협상이 이뤄진다면, 미국쪽 요구대로만 가기 어렵지 않겠느냐"면서 "미국 사정도 있는 만큼 중간 수준에서 타협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차라리 전면적인 재협상으로"

정부는 한미FTA 재협상 논란이 자칫 현재 진행중인 협상 체결과 비준 등의 일정에 차질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우선 오는 20일로 예정된 한미FTA 협정문 공개도 관심거리다. 외교통상부쪽에선 협정문 공개 일정에는 아직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재협상 논란이 되는 노동과 환경 부분까지 공개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외교부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20일께 예정된 한미FTA 협정문 공개 일정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현재 논란이 되는 부분도 들어갈지 여부에 대해선 확인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a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벌인 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벌인 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FTA 반대진영도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쪽은 14일 성명을 통해 "노동·환경권은 한미FTA의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한미 양국이 즉각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라며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기만적"이라고 비판했다.

범국본쪽은 "이번 요구는 미 민주당이 자신의 지지기반인 자동차 노조나 환경 단체의 입장을 고려한 '면피용 카드'"라면서 "쇠고기나 자동차 등 아직 추가적 이권이 남아 있다고 보는 여러 분야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할 빌미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도 "미 공화당 행정부가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신통상정책에 합의해 주는 대신 무역촉진권한 연장을 얻어낸 것 같다"면서 "재협상 진행에 따라 6월말로 예정된 한미FTA 협정문 체결도 미뤄질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우리쪽에서도 투자자-국가소송제를 비롯해 의약품, 지적재산권 등 여러 독소조항을 포함한 전면적인 재협상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는 "전면적인 재협상을 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론 한미FTA 협정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미FTA #재협상 #노동-환경 #졸속협상 #샌더래빈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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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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