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의 오월도 새 생명을 노래한다

홀로 무등산 서석대에서 안양산까지 오르며

등록 2007.05.16 08:28수정 2007.05.1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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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무등의 오월도 새 생명을 노래한다.

무등의 오월도 새 생명을 노래한다. ⓒ 서종규

5월이면 가끔 그 무엇에 이끌리듯 내 몸은 무등산 서석대 근처를 방황하고 있다. 피어오르는 철쭉의 붉음이 내 혼을 부르는 무등의 함성으로 들려오고, 그 붉은 꽃 진자리에 무수히 돋아난 그리움을 주워 파란 하늘에 하나하나 수를 놓아야 한다. 무등의 오월에 내 몸을 맡기지 않는다면 한 해 동안 허전함이 가슴 쓰리게 할 것 같다.

무등산의 철쭉은 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많은 사진가들은 붉은 철쭉과 서석대의 어울림, 그리고 파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까지 무등산을 한 폭의 사진에 담는다. 그 무등의 철쭉을 찍은 사진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 차오르게 한다. 무등의 오월이 간직한 매력이다.


사실 무등의 철쭉은 흐드러지게 피어나지 않는다. 일림산이나 지리산 바래봉처럼 군락을 지어 무더기로 피어있지는 않다. 서석대나 입석대 밑 너덜겅 사이사이에 자라난 철쭉나무에서 내미는 붉은 점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등산 철쭉의 매력이다. 오월에 피어나는 그 붉은 철쭉은 더 많은 느낌을 갖게 해 준다.

a 피어오르는 철쭉의 붉음이 내 혼을 부르는 무등의 함성으로 들려온다.

피어오르는 철쭉의 붉음이 내 혼을 부르는 무등의 함성으로 들려온다. ⓒ 서종규

14일(월) 오후 1시, 혼자 원효사계곡 무등산장에서 출발하여 무등산 서석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혼자 산에 오를 때에는 산과 대화하기에 너무 좋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부터 말을 걸어온다. 요즈음 산의 계곡에 흐르는 물은 깨끗하다. 가만히 다가가 손이라도 한 번 담근다. 바위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버들치 한 마리가 내 손가락으로 다가올 것 같다.

오월이면 더욱 간절해진 휘파람새의 울음이 온 산에 퍼진다. 산새의 울음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 그 울음은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생각들을 한꺼번에 꺼내놓는다. 그 생각들을 하나하나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환장하게 그리워지는 얼굴들이 나뭇가지 끝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a 산 전체가 속삭이는 생명의 탄성이 푸른 구름이 되어 내 마음을 둥 뜨게 만든다.

산 전체가 속삭이는 생명의 탄성이 푸른 구름이 되어 내 마음을 둥 뜨게 만든다. ⓒ 서종규

5월의 모든 산이 그렇겠지만 무등에 오르면서 나직한 속삭임으로 다가오는 것은 연록의 새잎이다. 새 생명의 탄생이 속삭이는 말은 가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연하디 연한 잎들이 손을 뻗어 다가와 생명이란 늘 감동임을 말한다. 산 전체가 속삭이는 생명의 탄성이 푸른 구름이 되어 내 마음을 둥 뜨게 만든다.

무등의 오월도 새 생명을 노래한다. 자유, 민주, 인권, 평화를 노래한 광주의 오월도 이제 저 푸른 새잎들이 속삭이는 생명까지 노래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재앙의 위기에 처한 모든 생명들과 그 생명을 응원하고 있는 돌 하나까지 생명처럼 대해야 한다. 그것이 그렇게 싸우다 그 붉은 무등의 꽃 속에서 쉼을 얻고 있는 오월의 넋일 것이다.


a 무너질 듯 아찔하게 솟아있는 서석대 바위기둥 틈에 핀 철쭉 한그루가 붉게 빛난다.

무너질 듯 아찔하게 솟아있는 서석대 바위기둥 틈에 핀 철쭉 한그루가 붉게 빛난다. ⓒ 서종규

무너질 듯 아찔하게 솟아있는 서석대 바위기둥 틈에 핀 철쭉 한 그루가 붉게 빛난다. 아무것도 없는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해마다 그 붉은 꽃을 피워내는 생명의 경이를 보라. 그 한 그루의 철쭉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앉아 그들의 속삭임을 듣고 있다. 무등산의 상징 서석대가 전하는 생명의 울림이다.

a 광주의 오월도 이제 저 푸른 새잎들이 속삭이는 생명까지 노래해야 한다.(무등산 입석대)

광주의 오월도 이제 저 푸른 새잎들이 속삭이는 생명까지 노래해야 한다.(무등산 입석대) ⓒ 서종규

서석대(1105m)에서 입석대를 지나 오후 4시 장불재(903m)에 도착했다. 무등산에 가장 많은 철쭉들은 이 장불재에서 화순 안양산으로 넘어가는 백마능선에 분포되어 있다. 무등의 천황봉이 내려다보는 백마능선은 말의 잔등처럼 평온하게 다가온다. 그 능선에 이빨처럼 꽂아져 있는 바위 틈틈이 철쭉들의 붉은 꽃이 피어 바람을 맞고 있다.


하지만 무등의 철쭉은 이미 꽃잎이 지고 있었다. 붙어 있는 꽃잎보다 진 꽃잎이 훨씬 많다. 지난주에 남도 보성의 일림산에서 보았던 온산이 불붙는 듯 황홀한 모습이 아니다. 집단 군락지를 형성한 것도 아니지만 바위틈에서 핀 꽃잎들이 진 철쭉의 모습은 너무 아쉬웠다.

a 등산객들이 지나가면서 지는 철쭉꽃을 소중하게 바라바고 있다.

등산객들이 지나가면서 지는 철쭉꽃을 소중하게 바라바고 있다. ⓒ 서종규

아직도 붙어 있는 붉은 철쭉꽃도 반갑다. 늦게까지 기다려 준 그 철쭉꽃들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하늘은 맑지만 능선을 타고 넘는 바람이 세다. 그 센 바람에 몸을 맡긴 붉은 꽃들이 흔들거리고 있다. 그 흔들거림에 내 마음은 홀려버렸다. 꽃이라는 것, 자연이라는 것은 어떻게 다가가든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다. 내 마음은 이미 흔들리는 꽃이 되어 있다.

장불재에서 대체로 평온한 백마능선을 따라 안양산까지는 약 3.6km이다. 평온한 능선이어서 발걸음을 빨리 할 수 있다. 하늘은 구름이 거의 없이 파랗다. 월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떨어져가는 철쭉의 마중이 적적한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a 무등산에 가장 많은 철쭉들은 이 장불재에서 화순 안양산으로 넘어가는 백마능선에 분포되어 있다.

무등산에 가장 많은 철쭉들은 이 장불재에서 화순 안양산으로 넘어가는 백마능선에 분포되어 있다. ⓒ 서종규

백마능선의 끝에 자리한 안양산은 화순군에 속한다. 안양산 정상(853m) 부근엔 커다란 철쭉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흐드러지게 피었을 철쭉꽃은 대부분 지고, 그 자리에 돋아난 새 순이 온 산을 연한 녹색으로 칠하고 있다.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 해를 기다렸다가 찾은 철쭉산행은 또 그리움 속에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아직도 지지 않고 붙어 있는 철쭉들의 항변이 있겠지만 온 산을 붉게 물들였을 대부분의 철쭉꽃은 이미 자취를 감추어버린 상태가 아닌가.

오후 5시, 안양산에서 다시 장불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장불재를 거쳐 무등산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오늘의 등산 코스는 무등산장에서 서석대를 거쳐 백마능선을 타고 안양산에 갔다가 다시 무등산장으로 돌아가는 왕복코스를 잡은 것이다.

오후 6시, 장불재에 도착했다. 서쪽으로 많이 기울고 있는 해는 아직도 쨍쨍한데 무등산 정상 청황봉 부근에 구름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구름으로 가려지고 있다. 산행 내내 눈앞에 있는 것 같이 가까이 다가오던 무등이 밤을 준비하고 있는가 보다. 밤엔 싱그럽게 솟아오르는 푸른 잎새들을 포근히 감싸 줄 구름이 필요하나 보다.

a 꽃이라는 것, 자연이라는 것은 어떻게 다가가든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다.

꽃이라는 것, 자연이라는 것은 어떻게 다가가든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다. ⓒ 서종규

장불재에서 쉬고 있던 최창운 청년은 혼자 등산하면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혼자 장불재까지 올라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도 하고, 오월의 푸름을 몸에 칠하며 주위의 나무나 꽃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어서 등산하는 것을 좋아한단다.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등산을 할 때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거든요. 오로지 목표와 오르는 시간을 정해 놓고 열심히 오르기만 하지요. 올랐으면 또 부지런히 내려가구요. 운동이니까요. 하지만 사색을 하면서 산에 오르면 오르는 시간은 훨씬 길어지지만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있어서 좋아요.

오늘도 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했거든요. 이것저것 정리해야 할 것들, 그 생각들이 끝나면 솟아나는 새잎이 속삭이는 소리나 바닥에 붙어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풀꽃들과의 대화요. 오월의 푸름을 내 몸에 칠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세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풀잎 하나에서 돌멩이 하나까지요."

a 무등의 철쭉은 이미 꽃잎이 지고 있었다.

무등의 철쭉은 이미 꽃잎이 지고 있었다. ⓒ 서종규

우리들은 해가 질 때까지 장불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푸른 무등의 오월을 온 몸에 가득 칠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이나 모래 그 어느 날, 또 사무치는 그리움이 밀려와 무등을 찾겠지만 오늘 산행하면서 나누었던 속삭임으로 내 마음엔 푸름이 가득 차 있다.

a 한 해를 기다렸다가 찾은 철쭉산행은 또 그리움 속에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한 해를 기다렸다가 찾은 철쭉산행은 또 그리움 속에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 서종규

#무등산 #서석대 #안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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