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주기 추모미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조성만 열사의 어머니와 아버지.최종수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부모의 은혜와 같은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오늘, 또 다른 인생의 스승을 생각한다. 그는 내 동갑네기이다. 내가 일생동안 짊어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를 지워준 스승이다.
그를 생각하면 민족과 신앙이 일심동체였던 안중근 의사가 떠오른다. 안 의사는 신앙적으로 금지된 살인의 길이었지만 민족을 위해 죄인의 길을 갔다. 하지만 그를 아무도 죄인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조성만(요셉), 그는 내 영혼의 벗이자 사제직의 동반자인 통일열사다. 1988년 5월 15일 '양심수 전원 석방 및 수배자 해제 촉구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던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막아져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미국은 축출되어야 한다', '군사정부는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 '다가오는 올림픽은 공동개최되어야 한다', '광주학살 진상규명 노태우 처벌하자', '양심수 전원 석방하라', '진정한 언론 자유의 활성화', '노동 형제들의 민중생존권 싸움', '농민 형제들의 뿌리 뽑힌 삶의 회복', '민족 교육의 활성화' 등의 구호와 유서를 뿌리고 할복 투신하여 숨을 거두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광주신학교에 입학하기로 부모님께 승낙을 받아놓았었다. 하지만 그런 사제의 꿈도 민족의 십자가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 민족의 제단에 산 제물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신학교에 가기 위해 재수하던 시기였다. 학원 담임선생에게 승낙을 받고 전주 해성고에서 있었던 노재에 참여했었다. 어느새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동장이셨던 아버지는 농사꾼이 되었고, 신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나는 사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