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패션거리의 '재봉틀 아저씨'.하승창
뉴욕 시내를 걷다 보면 서울보다도 오래 된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더 오래된 듯 한 느낌을 갖게 된다. 서울이 늦게 재개발된 탓도 있지만 도시가 지녀 온 역사를 그대로 살리고 상징화해 놓은 탓이다.
미국의 역사는 200년 갓 넘었다. 뉴욕 시내에서 아무리 오래 되었다고 해도 서울의 고궁들이 지닌 역사의 나이테를 감당할 수 있으랴 싶다. 하지만 묘하게도 오히려 뉴욕의 오래 된 공간에서 켜켜이 쌓인 듯한 냄새를 맡곤 한다. 아마도 우리네 역사적 공간은 자국만 남은 채 개발 광풍에 없어져 버렸거나, 박제화된 채 보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지 모른다.
역사를 자기 주변에 두려는 사람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역사적 공간은 현재와 공존한다. 오래 된 성당 안에는 여전히 예배를 보는 사람들이 있고, 오래 된 극장안에서도 여전히 극이 올라가고 있다. 박제화된 보존 공간 속에서 역사의 냄새를 맡기란 어렵지만, 지금도 살아서 움직이는 공간에 들어가면 과거의 향기가 그대로 녹아 있다.
여하간 이들은 거리 이름 하나에도 자신의 역사를 현재에 살리고 싶어한다. 할렘가로 들어서는 센트럴파크 북쪽 끝거리는 마틴루터킹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공항이름 하나에도 자신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짓지 않는가? 케네디공항, 레이건공항…. 삶의 공간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것에 상징을 부여함으로써 역사를 자기 주변에 두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역사에만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삶의 모습도 상징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스트랜드 서점이 들어섰던 거리 이름이 북로우(book row)였던 것처럼 뉴욕의 거리엔 자신들의 삶의 모습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지금은 현재는 삶이지만 지나면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뉴욕 시내 7번가를 따라 걷다보면 40번가에서 재밌는 상징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재봉틀 아저씨다. 얼마 전 뉴욕한인회 부회장을 지낸 박종진씨와의 점심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 박 부회장이 '재봉틀 아저씨' 앞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장소에서 난 그런 아저씨를 찾지 못해 헤맨적이 있다.
박 부회장을 만나고서야 재봉틀 아저씨가 거리의 상인이 아니라 동상이었음을 알았다. 몇 번 지나다니면서도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옆에는 단추 구멍에 끼워져 있는 바늘도 함께 볼 수 있다. 35번가부터 41번가에 이르는 이 거리가 패션가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고개를 길 아래로 향하면 각종 의류브랜드가 새겨있는 거리를 만날 수 있다. 할리우드 거리에 영화인 이름이 각인된 것처럼.
재봉틀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