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넓은 캐나다 땅에는 호수도 많고 섬도 많다. 그 중 캐나다 동부 세인트 로렌스강(St.Lawrence) 위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는 일대를 일컬어 '천섬(Thousand Islands)'이라 한다. '천 개의 섬'이라는 의미의 '천섬'. 사실을 말하자면 1000개의 섬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많은 1865개의 섬이다.
지난해 여름이 다 끝나가던 무렵 우리 가족은 그 곳을 찾았다. 캐나다 인디언들은 고요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 곳을 '신의 정원(Garden of the Great Spirit)'이라 불렀다는데 지금은 관광지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강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사이사이를 지나며 그림 같은 별장들을 구경하는 크루즈를 비롯해 갖가지 레저 프로그램이 세인트 로렌스 강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크루즈만 해도 1시간, 3시간, 5시간 등의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우리는 1시간짜리를 이용한 후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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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람선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 김윤주
북아메리카 동북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지역에 위치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다섯 개의 호수, 슈피리어 호, 미시간 호, 휴런 호, 이리 호, 온타리오 호.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열심히 외워 써 내곤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땅 덩어리보다도 더 큰 호수들의 이름을 외며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를 머릿속으로 가늠해 보기도 했던….
그 다섯 개의 호수들 중 하나, 온타리오 호. 오대호 중 가장 작은 규모의 호수라지만 면적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그 온타리오 호의 동북쪽 한 접점 지역에 킹스턴(Kingston)이라는 도시가 있다.
킹스턴은 1840년부터 1844년까지 캐나다 연방의 수도이기도 했던 도시인데 이곳으로부터 시작해 퀘벡 주의 몬트리올과 퀘벡시를 거쳐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길고 긴 강이 세인트 로렌스 강이다. 그 중 킹스턴에서부터 동쪽의 브록빌(Brockville)이라는 도시까지 약 80km에 걸쳐 1865개의 섬이 분포해 있는 일대가 바로 '천섬'이다.
이 중 20여개만 캐나다 정부 소유이고 나머지는 모두 개인 소유이며 섬마다 별장들이 지어져 있는데, 하나당 백만불이 넘는다는 이 섬들의 소유주는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의 백만장자들이란다. 여름이면 자기만의 섬에 와서 낚시도 하고 요트도 타며 쉬다가들 간다는 것.
한국인 관광객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싶더니 배 위에선 영어, 불어, 일본어 등과 함께 한국어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네 살, 일곱 살 우리집 꼬마들은 미국 살이 2년여만에 처음 듣는 한국어 방송에 감동해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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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라도 오면 어쩔까 몹시 걱정되는 작은 섬.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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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도 많고 제법 큰 섬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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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하나, 집 하나, 등대 하나 ⓒ 김윤주
세찬 바람을 맞으며 배 위에 서서 동화 같은 작은 섬들을 구경하고 있자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 '괜찮을까? 물에 잠기기라도 하면 어쩌지?' 수면과의 거리가 5cm밖에 안 되는 섬도 있는데 정말 하룻밤 비만 내려도 잠겨버릴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세인트 로렌스강이 시작되는 온타리오호는 면적이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인 까닭에 비가 온다 해도 강의 수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하긴 걱정이 없으니 백만장자, 억만장자들이 몰려든 거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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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다리, 양끝의 미국과 캐나다 국기가 각각 어느 나라 섬인지를 알려준다. ⓒ 김윤주
크고 작은 다양한 섬들 사이에 특별히 재미난 풍경도 보인다. 미국령과 캐나다령인 두 개 섬을 잇고 있는 작은 다리,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다리란다.
한쪽 섬은 미국령, 다른 한 쪽 섬은 캐나다령인 까닭에 다리의 양쪽 끝에 두 개 국가의 국기가 걸려 있고, 가운데 자리한 터키 국기는 이 섬의 주인이 터키인임을 나타내고 있다. 터키의 부자 아저씨, 별장은 캐나다 땅에, 별장 앞마당은 미국 땅에 둔 셈이다. 매일 아침 국경을 넘나들며 산책도 즐기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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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지었다는, 독일 고성을 본 따 만든 볼트성 ⓒ 김윤주
천섬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다. 섬의 모양이 하트 모양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하트섬과 그 섬에 세워진 고풍스런 볼트성(Boldt Castle)의 이야기다.
뉴욕의 고급호텔 소유주였던 독일 출신 조지 볼트라는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독일의 고성을 본 따 짓기 시작했는데 완공되기 6개월 전에 안타깝게도 그만 아내가 세상을 뜨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아내 대신 장모에게 성을 헌정했는데 불행히도 장모는 워낙 물을 싫어하는 바람에 결국 성의 주인은 아무도 이곳에 와 보지 못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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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 로렌스 강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 ⓒ 김윤주
재미있는 이야기 몇 개 더 하자면, 장보기도 마땅치 않고 해서 섬의 주인들은 대부분 전담요리사를 두고 있는데, 한국인들 입맛에 잘 맞아 인기인 드레싱, '싸우전 아일랜드 드레싱(Thousand Island dressing)'도 바로 이 천섬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볼트성의 요리사가 만들어낸 것으로, 조지 볼트가 자신의 호텔 메뉴로 올린 후 널리 알려지게 된 드레싱이다.
천섬 일대에는 전기나 수도관이 강 밑바닥으로 지나가고 있고, 우편배달부도 있단다.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이들은 모터보트를 이용한다는데, 섬과 섬 사이를 모터보트를 타고 떠다니며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아저씨 모습, 상상만으로도 참 재미있는 그림이다.
또, 미국령인 섬에서 캐나다령인 섬으로 건너가려면 원칙적으로 여권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오늘 옆집에서 저녁초대 했으니 얼른 여권 챙기고 보트에 오르자꾸나!" 뭐 이런 식이라고나 할까. 하하.
인디언들이 '신의 정원', 혹은 '조용한 영혼들의 마당' 등으로 일컬었다는 천섬을 둘러보며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잠깐, 곧이어 세상은 넓고, 부자도 많고, 구석구석 참 재미난 일들이 많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늦여름, 나이아가라 폭포, 천섬, 토론토, 몬트리올, 오타와, 퀘벡시티 등을 둘러본 캐나다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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