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에 세워진 '목포의 눈물' 노래비와 이난영.최성환
"살아있는 보석은 눈물입니다."
목포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삼학도와 유달산을 생각할 것이다. 목포 앞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유달산 중턱에 오르면 검은색 대리석에 선명하게 새겨진 이난영 시비와 만날 수 있다. "목포의 눈물=살아있는 보석"의 등식은 그것과 처음 만났을 때 내게 강렬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춘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미성숙한 내 영혼이 무엇인가에 쫓기다시피 방랑자 생활을 할 때 처음으로 목포를 찾았고, 말로만 듣던 유달산에 올라 이난영의 시비를 발견하면서 유달산과 목포에 대한 내 기억이 시작되었다.
유달산, 청춘의 기억
서울에서 간단하게 전국순례단 발대식을 마친 후 버스를 몰아 목포로 향했다. 빗속을 뚫고 달린 버스가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한 곳은 국립해양박물관 회의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역언론인 <향도신문>과 간단한 인터뷰를 한 후 토론회를 시작했다.
'2007년 대선과 미래구상의 과제'를 주제로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는 무엇인가, 2007년 대선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현 정치상황에서 미래구상의 전략과 과제는 무엇이며, 핵심과제로 제기하고 있는 진보개혁진영의 단일국민후보론과 그 방법론인 선거연합과 연립정부론은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설명해 나갔다. 결론적으로 정치권 바깥의 시민사회가 새로운 정치적 중심을 형성하는 것이 올해 대선의 핵심전략이라고 주장하면서, 미래구상이 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을 강조했다.
토론회의 딱딱한 분위기를 감안해서 마무리 삼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말,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를 인용했다. "만약 호남이 없었더라면 어찌 국가, 즉 조선이 있었겠는가"라는 이 말은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이에 대응한 이순신의 전략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의 모함을 받아 한양으로 소환된 사이에 이순신의 자리를 대신한 원균은 조정의 요구에 따라 왜군이 결집해 있는 칠천량 해전을 감행했지만 무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백의종군한 이순신은 남아있는 12척의 함대로 전열을 정비하려고 하였다. 이순신은 선조의 수군폐지 칙어에 맞서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는 유명한 상소문으로 수군을 유지했고, 그 보잘것없는 전력을 모태로 수십 배에 달하는 일본 수군을 울돌목에서 대파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첫 귀착지인 목포에서 열린 행사는 전남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가 주최하는 '2007년 대선 방향과 지역사회 역할'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였다. 목포포럼이라는 시민단체와 민주당 목포지역위원회가 공동주관하고 목포 시의회가 후원하는 행사방식도 특이했다. 시민단체, 정당, 지방의회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상당히 폭넓은 토론마당인 셈이다.
토론자로는 민주노동당, 민주당, 민생포럼 등 정치권 관계자와 시민단체, 작가, 학자 등이 고르게 참여하여 매우 폭넓은 토론이 되었다. 토론 방향을 정리해 보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각 정당의 대선전략을 홍보하는 태도인 반면, 민생포럼과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체로 미래구상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민주당 '중도개혁'의 실체는 뭔가
아주 특이한 광경은 민족문학작가회의 목포지부장을 맡고 있는 박관서 대표의 토론 방식이었다. 박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정리한 한 편의 글을 작성하여 현장에서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일반적인 토론회에서 보기 어려운 인문적 토론 방식이었다. 방식도 특이했지만 발표문 내용 역시 40대 가장이자 불안정한 직장인으로서, 또한 사회적 존재로서 문화예술인의 처지에서 대선에 대한 요구를 구체적으로 전개하여 참가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목포 시의원인 민주당 소속 토론자는 모든 중도개혁세력의 통합을 바탕으로 대선에서 승리하자고 하면서 민주당 중심의 통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장하는 '중도개혁'이라는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민주당이 그 역할의 중심에 설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토론과정에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민주당에게 대선전략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혹 대선을 빙자한 총선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었다.
토론 후의 토론내용이지만, 이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의 전략을 '대선포기 총선집중'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 총선전략이라는 것이 다분히 지역주의 전략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민주당의 대선전략이란 실상 총선전략의 수단이거나 대선을 포기하고 총선전략에 몰입한다는 비판을 은폐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생포럼 소속 관계자는 구여권의 비관적인 대선 상황으로 목포시민들이 이명박을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현상을 우려하면서 올해 대선이 진보, 개혁, 미래를 선택하는 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역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모임을 구성하자는 구체적인 제안을 하였다.
과거 목포는 호남의 풍부한 물산과 일본의 식민지 수탈정책이 결합하여 일찍이 주요 도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박정희의 '영남 중시 호남 소외'의 불균등 발전정책으로 지금은 과거의 영화를 비극적으로 간직한 쇠락한 도시로 전락하였다. 지금도 구시가지에서 어렵지 않게 식민지 당시의 건물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개발조차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일반에 공개되어 있는 동양척식회사 건물은 일제의 수탈정책을 이해할 수 있는 산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개나리꽃이 활짝 핀 유달산과 노적봉 일대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다.전남도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의 흔적
일제의 수탈정책으로 항만이 발달하면서 항만 중심의 노동운동이 발전했던 목포. 이 과정에서 일본 출신 조직폭력과 대결하는 토종 조직폭력의 번성, 그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폭력적인 언어의 등장 등 목포의 과거를 상징하는 역사적 산물이 있다. 일제시대 민족의 아리랑으로 애창되었던 '목포의 눈물' 역시 그러한 상황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 '눈물'은 일제시대의 눈물이었지만 해방 후에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1960년대 후반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지도자가 박정희의 경쟁자로 부각되자, 총선에서 김대중을 낙선시키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목포에서 개최할 정도였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역시 목포를 비켜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목포 출신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였다.
김대중 집권이 목포에 가져다준 효과에 대한 판단은 목포사람들에게 맡겨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집권 말기에 변질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나, 호남의 지지를 받는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의 비판에 직면했다는 사실, 더구나 올해 대선에서는 아직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여전히 마르지 않는 눈물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눈물'의 개념으로 목포를 해석하는 것은 목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실례일 수도 있다. 오히려 짧은 만남이었지만 순례단의 첫 행사인 토론의 장에서 나는 희망의 일정한 근거를 발견하였다. 우리가 '미래한국 희망 만들기 전국순례'를 하는 것이니 희망의 근거가 우리 순례단의 방문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것이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생각했다.
목포에서 발견한 희망의 근거가 관념적인 것으로 끝날지 구체적인 희망으로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우리 순례단 일행은 유달산을 바라보면서 하나의 희망은 또 다른 희망에 의해 보완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다른 희망을 찾는 마음으로 목포를 떠났다.
| | 눈물에 대하여 | | | 노잣돈 봉투에 담긴 시 | | | | 전국 순례 첫 방문지인 목포에서 만난 사람들이 순례단에게 노잣돈을 마련해줬다. 노잣돈 봉투에는 YWCA 간사가 밤새워 쓴 다음과 같은 시가 담겨있었다.
눈물에 대하여
사람 사는 일 아름다울 때 나 눈물난다 슬프고 원통하고 때론 기뻐서 미처 몸둘 바 없을 때 나 눈물 보았지만 그보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아름다울 때 가끔씩 사람 사는 일 기막히게 아름다울 때 나 그냥 눈물 난다
진정한 눈물의 의미를 알려준 미래구상 식구들에게 마음 모아 박수를 드리며 순례 기간 동안 식구들 모두 건강하기를 늘 기도하겠습니다.
엄복례, 이혜경, 윤명렬, 박찬웅, 정현정, 곽수현 드림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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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눈물'은 '목포의 희망'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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