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여주다!

[서평] 송은일 장편소설 <반야>

등록 2007.05.19 11:34수정 2007.05.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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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1권 겉표지 ⓒ 문이당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송은일 장편소설의 무녀 반야. 그녀는 조선 시대의 무녀로 어려서부터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능력이 특출 났다. 그 능력 때문에 되레 화를 입을 뻔 했기에, 세상을 피해 도망쳐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진주는 모래알 사이에서도 반짝이는 법. 작은 고을에서 점을 치며 살건만 반야에 대한 소문은 사방팔방으로 퍼져간다. '용하다'는 수준을 넘어선, 마치 그 사람의 운명을 읽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신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 능력은 기묘하게도 명문가의 아녀자 실종사건을 해결하는데도 쓰인다. 명문가에서는 딸이 실종되자 반야에게 도움을 청했고 반야는 능력을 십분 발휘해 사라진 여자가 왜 사라졌고, 사라지는데 무슨 일을 당했는지 낱낱이 밝혀낸다. 처음에는 설마 하던 사람들도 반야가 증거를 제시하자 무릎을 치고 만다. 반야는 그 재주로 명문가의 신임을 얻기에 이른다.

반면에 그 능력은 그녀를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도 한다. 아무리 명문가의 신임을 받더라도 무녀라는 신분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 무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한 것이다. 너무 천한 나머지 관아에서 부르면 달려가야 하고, 노리개가 되라면 노리개가 돼야 한다. 반야 또한 예외는 아니다. 야심에 불타는 벼슬아치는 그녀의 재주를 탐내고 그것은 예상치 못한 비극을 빚어낸다. 반야의 능력이 오히려 화를 부른 셈이 되고 만다.

반야,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대신하다

그렇다면 반야가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묘한 능력 때문에? 아니다. 그런 능력을 지녔던 주인공들은 많았다. 여기서 반야가 특별한 것은 그녀의 인생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천한 것'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며 또한 여자가 된다.

반야에게 점을 치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여자다. 그녀들이 나누는 대화는 무엇인가? 첩과 사이가 좋지 못한 이야기, 아들을 낳지 못해서 당하는 억울함, 고된 시집살이 등에 관한 것이다. 점을 치는 것도 그 부분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인데, 작가는 반야와 여자들의 대화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과감하게 생략해도 될 부분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다루는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그 시대 여자들이 겪어야 했던 한을 그리기 위함이다.

실제로 <반야>의 그 대화들은 여자가 남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해도 무죄가 될 수 있는 세상, 남자 때문에 여자들끼리 싸워야 하는 세상, 남자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버림받는 것이 남자들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그것을 보여주는 반야 또한 그 같은 경험을 해야 하니 더 말해 무엇 할까. 반야를 따라 가다보면 그 시절에 여자들이 겪어야 했던, 또한 천한 신분으로 당해야 했던 온갖 고초들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야가 그것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반야>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축이자 반야의 삶을 바꾸는 '사신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밟혀도 포기하지 않고 꿈틀거리며 일어나고 또한 앞으로 가려고 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야는 그 시절, 한 맺힌 삶을 감수해야 했던 모든 이들을 의미한다. 반야가 웃는 것은 그들이 웃는 것이고, 반야가 우는 것은 그들이 우는 것이기도 하다. 실상 반야의 삶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삶이며 또한 그들의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물을 통해 이것을 보여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건만, 송은일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해냈다. 그런 까닭에 또 한 명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주인공의 호흡이 여성의 언어로 세세하게 묻어난 <반야>, 이야기 듣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준다.

반야 1 - 제1부 그 별들의 내력

송은일 지음,
문이당, 2017


#반야 #송은일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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