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꿈속에 나타난 저승 사자들

<엄마하고 나하고> 5회

등록 2007.05.20 13:16수정 2007.05.2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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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멀끄디를 잡고는 한 놈은 밀고 두 놈은 땡기고 캄서 하는 말이 응. '죽어야 할 사람이 여기서 머하냐'고 하는기라."


나는 무슨 얘긴가 하고 왈칵 가슴이 졸여왔다.

"자꾸 같이 가야한다고 이것들이 잡채는데 이길 수가 있어야지."
"아니. 저런 나쁜 놈들이! 그래서요?"
"아여~ 내가 그래서 말이다. '여기는 우리 작은아들 집이오'했더니 아여 그놈들이 그래도 가자고 잡아끄는데 안간닥꼬~ 안간닥꼬~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안 되고 옷이 다 벗겨지고 막 그랬다 아이가."

"아. 그래서 똥도 나오고 그랑기라요?"
"그랑께 똥이 나도 모르기 쑥 나와삐고 그랑기지 내가 무다이 싼기 아이라."
"이노무 영감태기들 다 어디로 갔어요. 네? 이 양반들이 여기가 어디락꼬 와서. 이 못된 놈들이. 이것들 내가 혼 꾸멍을 내야지!"

전희식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법석을 떨었다. 어머니는 내 기세에 좀 마음이 놓이는지 두세 번이나 그 영감태기들이 다시 안 올 건지를 되물었다.

나에 대해 먼저 긴장을 놓게 된 어머니는 저승사자 공포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나는 듯했다. 긴장이 다 풀어진 어머니는 저녁도 안 드신 채 모로 누워 잠이 드셨다. 뒤늦은 밥상을 차려놓고 몇 번 흔들어 봤더니 꼭 젖은 짚단 같았다. 눈도 뜨지 못하고 눈썹만 꿈틀거리다 말곤 했다.


다음날도 아침을 먹자마다 쓰러져 주무셨다. 잠시 일어나서도 춥다면서 겨울 털모자를 썼다. 방에 장작불을 더 넣었다.

크고 작은 고무함지박을 여러 개 늘어놓고 옷이랑 이불을 빨고 나자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불 두 채를 한꺼번에 치대고 헹구고 하느라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사 주겠다는 세탁기를 거절한다고 야단을 치던 누님 생각이 났다. 날이라도 궂으면 어머니 뭘 입힐 거냐는 형님의 닦달도 생각나는 하루였다.


이튿날도 어머니는 꼼짝도 않고 누워만 지냈다. 연이어 옷에 실수를 해서 빨래통과 마루에는 오줌에 절은 옷이 쌓여갔다.

어머니 오줌 누시는 시간마다 같이 일어나 돌봐 드리다 보니 밤에 두 시간 이상 이어 자지를 못한다. 항상 몸은 무겁고 눈은 충혈돼 있다. 어머니 오시고 나서부터는 새벽 수련과 풍욕을 하지 못했다. 누적된 피로가 이번 일로 극한점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물에 적셔진 이불을 들어올려 비틀어 짜느라 내 옷도 다 젖었다. 장작도 패야하고 산에 가서 불쏘시개도 해 와야 군불을 때는데 그냥 드러누워 한숨 자고만 싶었다. 이러다가 병이라도 날 것 같았다.

힘들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는데 "그러면 너랑 어머니랑 바꿔서 살아볼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옷에 똥을 누는 사람보다 그 똥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배는 행복한 줄 알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똥을 쌌는지 된장이 끓는지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직은 멀리서도 똥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잊지 말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옷에 똥 싸는 사람보다 똥 싼 옷 빨 수 있는 사람이 열 배는 낫다. 나도 모르게 픽 웃으며 속으로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이때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방 쪽을 힐끗 봤다. 어머니가 유리로 된 밀창 뒤쪽에서 빨래하는 나를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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