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 맞으면 50억 줘도 안 한다"

[인터뷰] 박신양에게 연기 코치 해주는 남자, 전훈

등록 2007.05.21 16:03수정 2007.05.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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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티스틱 프로듀서, 전훈

아티스틱 프로듀서, 전훈 ⓒ 오마이뉴스 조은미


연기 잘 하기로 소문난 배우 박신양이 폭탄 같은 말을 했다.

"액팅 디렉터가 있다. 5년 전부터 함께 했다."

지난 10일 열린 SBS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극본 이향희, 연출 장태유) 제작발표회에서였다. 한 마디로 박신양에게 '연기 코치'가 있단 소리였다. <파리의 연인> 때부터였다.

정작 코치가 필요한 배우들도 판판이 노는 마당에,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박신양에게 코치라? 박신양에게 연기 코치해주는 '액팅 디렉터' 전훈씨를 지난 15일 만났다. <쩐의 전쟁>촬영장에서였다.

이번에 그는 박신양만 쳐다보는 게 아니었다. <쩐의 전쟁> 주연배우들 전체를 아울렀다. 아예 '아티스틱 프로듀서'로 자리를 틀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도였다. 금나라(박신양)와 서주희(박진희)가 미묘하게 대사를 치고 받는 현장에서, 그는 바쁜 듯 한가했다.

한 신이 끝나면 그는 배우들과 토론하고 조율했다. "이건 어때? 형?" 박신양이 물었고, 그가 대답했다. 그는 껄렁껄렁한 척 날카롭게 연기 톤을 조절했고, 날카로운 현장에 농담을 던져 웃음바다도 만들었다. 그는 매끄러운 기름을 쳐 배우들을 감쌌다.

그런 그를 박신양은 친근하게 "형!"이라고 불렀다. 알고 보니 그럴 만 했다. 그는 박신양과 대학 때부터 같이 연극에 미친 사이였다. 그가 대학 2년 선배였고, '스타니슬라프스키' 연기 이론 종주국인 러시아에 가기 위해 같이 유학용 출입국 도장을 찍은 사이였다. 다만 그가 '연출'을 할 때, 박신양이 '연기'를 한 것이 달랐다. 그리고 지금껏 서로 출연하는 영화나 연출하는 연극 이야기를 틈틈이 나눠온 터였다. <파리의 연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박신양 액팅 디렉터로 뛰었지만.


샛노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폼이 힙합 가수인지, 사우나에서 방금 나온 분이신지…. 아리송한 스타일의 그에게 '연기 코치'에 대해 눈치코치 없이 물었다.

축구 선수도 코치 있는데, 배우는 왜 코치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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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 박신양씨가 제작발표회 때 액팅 디렉터가 있단 이야길 했다. 그런데 액팅 디렉터가 뭔가?
"(배우가) 하루 18시간씩 찍는데 작품 분석이 되겠냐?"

그래서 작품 분석도 안 되고 발음도 안 되는 배우가 수두룩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그가 말했다.

"아니,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이거다. 아니 축구선수도 코치가 있고, 배구 선수도 코치가 있는데, 왜 연기자는 코치 없이 홀로 뛰어야 하냐 이거다. 그리고 욕먹으면 자기 욕먹고. 정말 배우는 사막에 혼자 떨어진 기분일 거다. 연기 쪽도 어시스트 해주면 얼마나 좋겠냐?

이게 필요하던 차에, 이거 한 번 해보자, 해서 시작한 거다. 말로는 액팅 디렉터라지만, 정확한 명칭은 '아티스틱 프로듀서'다. 대본 작업부터 현장 작업까지 전체적인 아웃라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배우한테, 작가한테 '이런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프로듀서로서 부탁한다고 할까."

- 그런데 좀 신기하다. 박신양씨는 워낙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지 않나?
"그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고, 박신양 본인은 늘 자기가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계속 노력하고, 노력을 하니까, 오히려 더 인정을 받는 게 아닐까? 보통 보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자기가 인기가 있고 이제 연기에 물이 오르면 남의 말 잘 안 듣게 되고, 건방져진다. 연기에 있어서. 그렇게 자기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 연기는 퇴보한다."

- 대부분 그렇지 않나?
"연기는 죽을 때까지 남에게 지적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남에게 지적받기 싫어하고 '내 것이 최고야', 그건 아니라고 본다. 신양이는 이미 러시아에서 그것이 훈련이 됐다. 신양이 뿐만 아니라 이미 그런 배우들이 많다. 안 보여서 그렇지. 예를 들면 지금 유명한 S씨도 그렇고 C씨도 그렇고. 연기에 대해선 굉장히 겸손한 배우들이다."

- 아니, 이렇게 좋은 이야길 하는데 왜 이니셜을 쓰나?
"몰라. 지레 겁먹어서…. 하하하하."

- 그런데 시대 따라 연기도 스타일이 바뀌지 않나?
"스타일은 바뀌어도 본질은 같다. 탈춤에 진실이 없겠나? 가부키에 진실이 없겠나? 단지 스타일이 다르고 형식이 다를 뿐이지."

- 최근 나이 든 배우들 몇을 보면, 다른 배우들과 연기가 다르다. 옛날 연기 같단 생각이 드는 건 뭔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볼 땐 앙상블의 문제다. 예를 들면 남들은 다 락을 부르고 있는데 이쪽에선 랩을 부르면 튀잖나?"

연기 잘 하려면? 부족하다 생각하고 늘 연구해라

a <쩐의전쟁> 한 장면

<쩐의전쟁> 한 장면 ⓒ SBS

- 그럼 연기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마디로 어떻게 얘기하나? 얘길 하자면 3박4일 하려고 해도 모자라다. 단도직입으로 말을 하면, 연기를 잘 하려면 일단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늘 연구를 해야 한다. 그게 연기를 잘 하는 방법이 아닐까. 박신양이 연기 잘 한다, 연기 잘 한다 그러는데, 신양이가 노력하고 부족하다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 알면서도 열심히 연기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건?
"여러 경우다. 선천적으로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재주가 좋아서 바로 바로 그때 캐치는 하지만 지나고 나면 까먹을 수도 있고, 그건 사람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 사람이 어떤 연기를 배워왔냐에 따라 다르고, 그가 가진 마인드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규정할 순 없다.

그때 액팅 디렉터가 할 일이 뭐야? 그때그때 이 사람의 특성과 저 사람의 특성을 다 모아서 앙상블을 맞춰주고, 이 사람 특성에 맞추어서 진실을 뽑아주는 게 액팅 디렉터가 해야 할 일이다. 심지어 난 그렇게 생각한다. 연기가 부족하면 액팅 코치가 잘려야 된다."

- 학생이 못한다고 선생이 잘리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한다. 스타니슬라프스키 이론은 이런 거다. '내 이론은 천재들한텐 필요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 이론을 습득해서 완성된 결과다' 이렇게 얘기 한다. 사실 천재들한텐 이게 필요 없단다. 연기 천재들, 본능적으로 되는 배우들, 타고난 배우들도 있다."

- 그게 누구인가? 사람들이 말하는 송강호?
"아휴. 송강호씨가 얼마나 노력파인데. 물론 타고난 것도 있지만."

- 그럼 최민식인가?
"아휴. 민식이 형이 얼마나 노력파인데. 민식이 형은 내 대학 선배다. 얼마나 그 형이 노력했는지 내가 다 안다. 내 말은 어떻게 노력하냐 따라서 대배우가 될 수도 있고 후진 배우가 될 수도 있다. 노력을 했다고 해서 또 대배우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다."

"<쩐의 전쟁>, 리얼리티 있으면서 만화적인 느낌도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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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조은미

- 그럼 <쩐의 전쟁> 금나라란 인물은 지금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신양이하고 나하고 사적으로 친하지, 작품적으로도 친하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뭔 이야기냐면, 그와 내가 겪는 갈등은 이런 거다. 나는, 원작을 읽어라. 그리고 원작에서 나오는 그 인물로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 만화를 읽은 사람들도 재밌을 것이고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 박신양씨 원작 안 읽었다던데?
"그러니까. 자긴 죽어도 안 읽겠단다."

- 의도적으로 안 읽은 거네?
"의도적으로 안 읽는다. '난 내 자신으로 만들겠다.' 이거다. 하지만 난 '읽어야 한다'다. 그런데 결국은 절대 안 읽고 시작을 했단 말야. 그런데 그 만화 속 인물로 맞춰나갈 순 없다. 그럼 나는 교묘해지는 수밖에 없다. 박신양의 특성을 살려주면서, 신양이가 만화는 읽지 않았지만 내가 유도를 시켜서, 만화에 있는 인물을 살짝 덧입혀버려야 되는 거지. 그게 내 주안점이다.

그러면서 이게 만화 콘셉트기 때문에, 연기 자체가 굉장히 리얼리티가 있으면서 만화적인 느낌도 살아야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너 왜 장가 안 가?' '아우. 말 시키지 마세요.' 이런 게 아니라 '너 왜 장가 안 가?' '(껄렁껄렁하게)어이구? 왜 참견이야?' 이런 식으로 나가서 조금 감정의 기복이 있다. 요즘 젊은 애들 그런 식 말장난도 좀 하잖나. 그런 식으로."

- 아. 그래서 아까 금나라가 대사를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이걸로 바꾸고 그런 건가?
"그거다. 그런데 18시간 촬영하다 보면 감독도 힘들고, 힘드니까 툭툭 놓치니까, 나는 늘 이렇게(팔짱 끼고 방관하듯이 쳐다보는 자세로) 서 있다가, 따로 이렇게(저벅저벅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시늉을 하며) 나간다. 나가서 이렇게 한 번 리프레시 한 다음에, 다시 한 번 봐야한다. 그래야 허점도 보인다."

예술가의 적은 '매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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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조은미

- 거기에 빠져있으니까?
"그럼. 예술가의 적이 뭐냐? 매너리즘 아니냐? 연기자는 연기자대로 빠져버리고, 감독은 감독대로 빠져버리니까, 내가 리프레시 시켜줘야 한다. 어떤 땐 분위기 메이커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촬영도 재밌게 가고, 감독도 허리 펼 시간을 가져야지. 아주 불쌍해 죽겠다. 저 사람.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이, 이번에 <쩐의 전쟁>에 연극배우들이 가세를 많이 했다. 간간이 보이는 배우들이 다 연극배우다."

- 연극배우? 드라마 연기하고 연극 연기하고 다르지 않나?
"그럼 뭐 박신양씨는 연극배우 출신 아닌가? 신구 선생님은 연극배우 출신 아닌가?"

- 연극 하다 TV로 오면, 연극이랑 달라서 '너무 연극적으로 연기한다' 소리 듣지 않나? 연기 오버한다고.
"몇몇이다. 바로 적응하는 사람도 있다. 몇몇이 그런 게 다 그런 것처럼 돼버린 거지. 거꾸로 얘기하자면 대학로 쪽에선, '아, TV 연기자들 무대에서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뭐 답답하다.' 이렇게 얘기하잖아? 그것도 일부다. 조민기씨, 나랑 그때 <안톤 체홉 4부작> 했는데 잘했는데 뭐. 조민기씨 뿐인가? 김정란, 잘했는데 뭐? 박신양은 유도 아니다. 잘 하더라. 그러니까 한두 명이 물 흐리는 거지. 다 그런 게 아니다."

- (본업인) 연출은 안 하나?
"해야지. 여건 되면 TV도 하고, 영화도 하고 싶다. 그런데 액팅 디렉터도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지. 마음이 맞으면 내가 조명이라도 든다니까, 박카스라도 돌린다니까. 그런데 전혀 마음도 안 맞는데, 내가 거기 감독이라고 앉아있는 건 말도 안 된다. 그건 1억을 줘도 2억을 줘도 50억을 줘도 안 한다."
#쩐의 전쟁 #박신양 #전훈 #액팅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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