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인 광대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살라

임영수 목사의 <영성과 삶>을 읽고

등록 2007.05.21 10:02수정 2007.05.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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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 리브로

자기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종교적인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 있다. 그저 교회에만 발걸음을 옮길 뿐 삶은 변화가 없는 사람이다. 그가 속한 일터에서도 신앙과 삶은 괴리감만 있을 뿐 좀체 일치하지 못한다.

흔히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크리스천을 두고서 영성이 깊다고 말한다. 영성이란 세상과 떨어져 사는 수도사의 금욕적 삶이 아니라 세상 한 가운데서 참되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다. 그야말로 일시적인 것에 일희일비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진리를 쫓는 삶이다.

개신교 영성 공동체인 '모새골'을 섬기고 있는 임영수 목사의 <영성과 삶>(홍성사)은 바로 그와 같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영성은 우리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영성은 우리에게 신앙을 선택하게 하고, 가치 있는 일에 전념하게 하며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12쪽)

크리스천의 영성과 삶, 신앙과 삶을 무엇에 빗댈 수 있을까? 은반 위에 연출되는 아이스 발레를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발레리나들은 빠르고 유연한 몸동작으로 모든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들은 은반 위에서 춤을 출 때 반드시 배경 음악과 한 몸이 된다. 때론 그것이 고전음악이 되기도 하고, 현대음악이 되기도 한다.

만약 그때 두 가지 선율이 나온다면 온전한 일체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춤을 춘다고 해도 동작의 분열이 생겨 조화롭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춤을 추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의 선율에 따라 춤을 춰야 한다. 오직 그 선율에 자신의 마음과 정신, 감정과 의지를 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임영수 목사는 그 은반 위의 발레리나처럼 크리스천들은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로부터 연주되는 선율에 맞춰 참되고 영원한 가치 있는 춤을 추며 살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것이 없이는 겉은 가면을 쓴 광대처럼 종교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까닭에서다.

오늘날 유럽의 교회들이 쇠퇴해가고 있다. 그들이 세운 성당이나 교회당의 건축디자인과 목공 기술은 뛰어나지만 그곳의 크리스천들은 텅텅 비어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도그마(Dogma)는 소개해 주지만, 그 도그마 뒤에 있는 살아 있는 궁극적인 실체를 만나게 하지는 못한 까닭이다. 그만큼 신앙과 삶이 일치되지 못한 채 무미건조한 교리로만 그치는 것이다.

이는 한국 교회에 불어 닥칠 수도 있는 현실이다. 작금에 들어 한국 크리스천의 숫자가 860만이라고는 하지만, 머잖아 유럽교회를 닮지 않으란 법도 없다. 중요한 것은 교회나 성당의 화려한 건축양식보다, 종교적인 테두리보다 진정으로 이 땅의 크리스천들이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크리스천으로 지녀야 할 영성과 삶이다. 궁극적인 실재를 좇아 바르고 참되게 살아가는 그 삶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교회당이나 성당의 화려한 건축 양식에 있지 않다. 더욱이 860만이라는 크리스천의 숫자에도 달려 있지 않다.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하게 동행하는 크리스천, 영성과 삶이 일치하는 크리스천을 통해 세상은 조금씩 변화되기 마련이다.

영성과 삶 - 모새골 임영수 목사가 전하는 참다운 영성의 길

임영수 지음,
홍성사, 2007


#임영수 #영성과삶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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