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사학, 학교 복귀 '길' 열리나?

[분석] 대법원, 상지대 정이사 승인 무효 판결의 의미

등록 2007.05.21 15:40수정 2007.05.2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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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을 개인의 소유로 보느냐, 공공성에 기반을 둔 시설로 보느냐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며 관심을 모았던 상지대 관련 정이사 무효소송이 마침내 지난 17일 대법원이 전 이사장 김문기씨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사학의 설립이념을 중요시한 판결로, 사학 운영자의 자유와 결정권을 인정했다는 데 주목받는다. 사실상 공공성보다는 사학 운영자의 재산권과 그에 따른 경영권이 우선이라는 결정이다.

대법원은 "교육부에서 파견한 임시이사들은 정식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없다"며 "상지대 임시이사들이 지난 2003년 정식이사들을 선임하는 내용의 이사회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현재 상지대 정식이사로 등록된 변형윤 전 서울대 명예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 등 정이사 9명은 이 날로 자격을 상실했고, 상지대는 다시 이사회가 없는 공백상태를 빚게 됐다.

그러나 상지대 문제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앞으로 학교 정상화와 관련된 정이사 선임문제를 놓고 또 한번 구 재단측과 상지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이번 판결로 상지대 학생과 교수들은 촛불집회를 여는 등 학교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반대로 김문기씨측은 이번 판결로 "구 재단측의 학교운영 권리를 열어둔 결정"이라며 앞으로 정이사 선임문제와 관련해 적극 개입할 뜻을 전했다.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는 소유권 문제를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지대측과 구 재단측 등 소송 당사자의 이해득실을 넘어, 사학법을 놓고 대립중인 보수진영과 개혁진영의 얽히고설킨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상당히 크다. 특히 헌법재판소에 상정된 개정사학법의 위법성 여부 판결을 앞둔 가운데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커진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헌재의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비록 대법원이 구 사학법에 한정된 판결을 내렸다고 하지만, 임시이사의 권한을 축소하고 이와 달리 재단측의 권한을 넓게 본 것은 개정사학법의 임시이사제도와 개방형이사제도의 후퇴로 이어질 공산도 크다.

개인과 공공의 싸움


상지대 문제는 지난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문기 전 이사장과 이사들은 학교 한약재료학과의 폐지 후 소속 재학생들의 처리문제와 전임강사의 임용탈락문제로 촉발된 학내 분규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하며, 새로운 신임 이사들을 선임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사선임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이유 및 극심한 학내 소요사태로 행정이 마비되고 재학생 전원이 유급될 위기에 처하는 등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전 이사들이 임명한 이사들을 취소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했다.

상지대는 10년 동안 임시이사체제를 지속하다 지난 2003년에야 비로소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며 정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낳았고, 교육부는 임시이사의 권한을 정이사와 동등하게 보고 정이사 취임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한편 김문기씨는 상지대에 임시이사가 파견된 직후, 오랫동안 학교 복귀를 위한 크고 작은 소송을 벌여나갔다. 김 전 이사장이 소를 제기한 재단 반환 소송은 지난 99년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으며, 교육부를 상대로 낸 정관변경 인가처분 취소소송 역시 2004년 대법원에서 기각된 바 있다. 특히 2004년 대법원 판결은 상지대학교의 설립자를 김문기씨가 아닌 고 원홍묵씨로 명시하며 김씨와 학교를 갈라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김 전 이사장은 이에 포기하지 않았고, 2003년 임시이사체제에서 정이사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임시이사의 권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문기씨가 제기한 1심 소송에서는 '원고들이 이미 사임 또는 임기가 만료된 이사들로 소를 제기할 위치에 없다'며 원고 패소 판정을 내린다. 반면 지난해 열린 2심에서는 1심과는 완전히 뒤집힌 판결이 나왔다. 2심 재판진들은 원고들의 소의 이익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임시이사는 독자적인 정식이사 선임권한이 없다며 원고 승소 판정을 내렸다.

임시이사 정이사 선임 권한 없어

이번 대법원의 판결도 대체로 2심 판결과 맥을 같이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합의 결과 8 : 5로 다수의견에 따라 원심을 확정지었다. 원고들이 정이사 승인을 내용으로 하는 이사회 결의의 무효 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이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다수의견은 "임시이사가 선임되기 전 적법하게 선임되었다가 퇴임한 최후의 정식이사들은 학교법인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대변할 지위에 기하여 임시이사 선임사유가 종료한 때에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을 구현함에 적절한 정식이사를 선임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법률상의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인정했다.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권한 문제는 "교육부장관이 선임한 임시이사는 이사의 결원으로 인하여 학교법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는 경우에 임시적으로 그 운영을 담당하는 위기관리자로서, 민법상의 임시이사와는 달리 일반적인 학교법인의 운영에 관한 행위에 한하여 정식이사와 동일한 권한을 가지는 것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할 권한은 없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학교가 정상적인 법인의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민법 제691조에 의거한 퇴임이사의 후임 정이사 선임권, 즉 '긴급처리권'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며 원심과는 조금 후퇴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소송을 제기한 김문기씨측이 후임 정이사를 모두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재판부는 "이 판결이 선고됨으로써 현재의 정이사들이 자격을 상실하여 임시이사 선임사유 해소 당시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면 다시 정상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하고, 그 방법은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 유효한 사립학교법, 민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일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했다. 즉 향후 상지대의 정상화 문제는 지난해 7월 1일 발효된 개정사학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 재단의 복귀는 가능한가?

구 사학법에는 임시이사체제에서 정이사체제로 전환하는 정상화 방법에 대한 법률규정이 없었다. 다만 민법해석상 교육부장관이 구 재단 측과의 협의를 거쳐 정이사를 비율적으로 구성해 왔던 게 관행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상지대의 경우 물러난 종전 이사들이 과연 정이사 선임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느냐가 논란거리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상지대 건의 경우 종전 관행과 달리 구 재단측의 의사를 완전히 배제한 채 정이사가 선임된 경우"라며 종전이사의 권리를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측은 김문기 전 이사장이 지난 1994년 3월 학교 공금횡령과 부정입학 등의 혐의로 1년6월형을 선고받은 것을 문제 삼으며 법인의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부적당하다고 봤다. (김 전 이사장 측은 위 혐의와 실형을 받았다는 주장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문제는 현 개정사학법 하에서 김문기씨를 비롯한 전 이사들의 권한의 범위다.

현 사학법에는 제25조3항에 학교법인의 정상화로 임시이사의 선임사유가 해소되었다고 인정한 때에는 지체 없이 임시이사를 해임하고 이사를 선임하도록 명시하고 이때 이사의 선임은 상당한 재산을 출연하거나 학교 발전에 기여한 자 및 학운위 또는 대학평의원회의 의견을 들어 관할청이 선임하도록 한다. 단, 이사의 3분의 1 이상은 초·중등학교는 학운위가, 대학은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하는 자로 선임해야 한다.

김문기씨측은 이번 판결이 자신들이 '상당한 재산을 출연하거나 학교 발전에 기여한 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정이사를 선임하는데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개진할 방침이라고 말한다. 김 전 이사장은 재판이 끝난 뒤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걸었던 학교를 되찾고 인재 양성을 위해 힘쓰겠다"며 "오늘부터 자신에 대한 모함과 중상을 계속하는 건 더 이상 용납 못한다"고 밝혔다.

김 전 이사장 측 전대열 공동대표는 최근 정상화에 들어선 경인여대의 예를 들면서 "교육부와 협의 하에 우리 뜻을 관철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경인여대 역시 전 설립자가 비리 의혹으로 물러났지만, 지난해 대법원이 설립자 측에 무혐의를 내려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최근 경인여대는 정이사를 선임하며 정상화 길을 걷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설립자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하는 3명의 이사를 제외한 정이사를 선임했다. 김 전 이사장 측도 이와 똑같은 전철을 밟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지대측 의견은 다르다. 박병섭 상지대 부총장은 "김문기씨는 이미 대법원에서 설립자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고, 상지학원 증빙서류에 보면 그가 출연한 재산은 고작 1억5천만원에 그친다"며 "정이사 선임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상지대는 앞으로 김 전 이사장의 복귀를 막기 위한 학생과 교수들의 소요가 상당할 것으로 보여 진통이 예상된다. 더불어 정이사 선임 권한 문제를 놓고 논란이 확대될 여지도 남아있다. 교육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사진 문제는 일단락되겠지만, 이번 판결을 놓고 사립학교의 운영주체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격이 거세질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앞으로 남은 사학법 재개정 문제와 헌재의 사학법 위법성 판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사학의 공공성 측면보다는 학교법인의 자주성과 정체성, 설립목적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임시이사가 파견된 여타 대학에서도 구 재단측의 학교복귀 시도가 진행될 요소도 있다.

비리사학 척결이 목적인 개정 사학법의 정신도 보수진영의 반발로 크게 후퇴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비록 이번 대법원 판결이 구 사학법에 머물고 있어 곧바로 영향력이 미치지 못할 거란 예상이지만, 사학법 재개정 문제와 더불어 헌재 판결에도 영향을 준다면 사학개혁의 명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른다.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소장은 "이번 판결이 15년 동안 쌓아온 사학민주화의 후퇴"라며 사학에 대한 사유재산 인정과 헌재 판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거라 진단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주간지 월요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주간지 월요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상지대 #김문기 #개정 사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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