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은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성욱아, 목조주택 짓는 거 배울래? ⑤]

등록 2007.05.24 14:24수정 2007.05.2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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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목수가 껄그러운 천정 단열재를 넣고 있다

김목수가 껄그러운 천정 단열재를 넣고 있다 ⓒ 장승현

바닥에 보일러를 깔 차례란다. 보일러 엑셀 파이프야 아빠도 깔 수 있지만 바닥 미장은 아무래도 전문가가 해야 할 것 같아 미장하는 아저씨를 불렀다.


a 천정공사 마무리를 하고 있다

천정공사 마무리를 하고 있다 ⓒ 장승현

이런 작은 일은 참 난감한 게 이런 것이란다. 거리도 멀고 일도 애매한 점이 있단다. 얼마 되지 않는 걸 놓고 멀리 있는 현장까지 전문가를 부르는 것도 힘들지만 이것저것 사람들을 분야별로 다 부르다 보면 경쟁력이 떨어진단다.

아빠가 자주 이용하는 조치원에 있는 용역회사에 전화를 했다. 이곳은 젊은 아줌마가 운영하는 용역인데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이용하는 곳이란다. 우선 설비와 미장을 함께 할 수 있는 기술자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줌마가 알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단다.

참, 성욱아 이번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근성(노가다 근성)이니까 우선 사람들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요즘은 어려운 뒷일을 할 사람을 찾을 때는 용역에서 부르는 게 제일 편하단다. 그것도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을 부르는 게 일하는 처지에서는 아주 편하단다. 단순하고 힘을 쓰는 일들은 말이 조금 통하지 않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좋단다.

보통 한국인들은 힘든 일이나 까다로운 일들은 하지 않으려고 하고 이것 저것 말들이 많고 일을 시키기가 힘이 든다는 게 이쪽 일하는 사람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란다. 왜 한국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아빠가 일하는 이쪽에서는 정설로 알려진 이야기란다.

외국에 나가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부지런하고 힘든 일이나 까다로운 일들을 마다 않고 하는 걸로 유명한데 이상하지 않니?


보통 기술자들은 일명 '노가다 근성'이라는 게 있단다. 또 누가 일본어라고 뭐라 하겠지만 노가다 근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어감이 엄청 다르단다. 이 노가다 근성이라는 것을 기술자의 자존심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일본말로 '곤조'라 해서 아주 나쁜 습관을 노가다 근성이라는 말로 합리화해서 쓰는 사람도 있단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기술자들 중에는 정말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단다. 얼마 전에 말한 김 목수라는 사람도 그렇고 성욱이 네가 잘 아는 아빠랑 같이 일하러 다니는 전기하는 분, 그리고 미장하는 분 등 기술자들 중에 정말 자기 일은 누가 봐도 자신감 있게 내세우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우선 설비와 미장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데 그리 쉽지 않더구나. 조치원에서 용역에 나온 아저씨를 한 분 불렀는데 상주까지 한 시간 반 동안이나 달려가 일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단다.

그런데 오늘 용역으로 온 아저씨는 자기 일에 대한 자존심보다 '노가다 근성'이 있는 분인 것 같더라. 아침나절부터 보통 용역에서 나오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아, 이거 오늘 일 다 못하겠는 걸요. 내일까지는 해야겠는 걸요."

우선 자기의 일량을 자기가 일방적으로 정해 놓는단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자기 자랑이지. 자기가 이런 일은 원래 안 하고 다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냥 나왔다고 한마디하는 게 그 다음 순서란다.

이 아저씨도 처음에는 설비며 미장이며 자기가 선수라고 하더니 시작하자마자 들통이 나기 시작했단다. 아빠가 이쪽 건축 일에 전문가인 줄 모르고 뻥을 친 셈인데 먼저 바닥 엑셀 까는 것부터 시켰더니 아저씨가 멈칫멈칫 거리더라. 뻔한 거 아니겠니?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엑셀 까는 작업을 시작했다.

"어, 이거 엑셀 깐 지 하도 오래 되어서…."

a 바닥에 온돌 엑셀 깔 준비를 하고 있다

바닥에 온돌 엑셀 깔 준비를 하고 있다 ⓒ 장승현

아무리 일하는 분야가 달라도 일을 많이 해본 사람에게 이런 일은 기본인데 아저씨가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래 아빠가 엑셀 까는 걸 약간 설명하고 그대로 하라고 일을 시키니까 이 아저씨 아직 기가 죽지 않고 한마디 하더구나.

"예전에는 이렇게 안 깔았는데… 지금은 자재들도 많이 변해놔서….'

그 다음에 하수도 배관을 시켰다. 배관 일을 시키다 영 안 될 것 같아 아빠가 연장을 빼앗아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건축 일을 하다 보면 웬만한 일은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설비 문제도 기술자들한테 일을 시키고 감리를 하려면 본인이 최고기술자만큼 일머리를 알고 있어야 한단다.

a 아빠가 추가된 화장실 배관을 했다

아빠가 추가된 화장실 배관을 했다 ⓒ 장승현

지난 겨울 아빠가 병원에서 나와 한동안 하고 다녔던 일이 이곳저곳 하자 보수하러 다닌 일이란다. 집 짓는 게 참 이상한 것이더라.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책임자가 한눈 팔거나 신경을 못 쓰면 꼭 한 군데씩 펑크가 나거나 하자가 발생하는 게 건축 분야인 것 같구나.

성욱아, 목조주택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설비란다. 아빠가 지금껏 집 지으면서 계속 시달려왔던 게 설비 쪽이란다. 지붕방수 문제는 아빠가 꼭 챙기니까 이젠 완벽하게 마무리 되는데 이 설비 문제는 신경 쓰지 않으면 가끔씩 꼭 터지는 분야란다.

그 이유는 설비를 외부 기술자한테 맡기고 신경을 안 쓰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그쪽에서 알아서 잘 신경을 써줘야 하는데 자기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성건성 일을 한단다.

설비 이야기가 나왔으니 설비 문제를 세부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겠구나. 바닥 온돌이야 요즘 엑셀로 까는 게 일반적이란다. 그런데 냉수와 온수 배관은 재료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먼저 엑셀, PB 등이 많이 쓰는 재료란다.

a 주방쪽 하수도 배관

주방쪽 하수도 배관 ⓒ 장승현

그동안 가장 이상적인 건 용접이란다. 이 설비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곳이 연결 쇼켓 부분이란다. 엑셀 같은 건 온수에서 오랫동안 쓰다 보면 연결 부분이 녹아 물이 새는 수가 많단다.

특히 심야보일러 같은 경우는 90도 정도 뜨거운 물이 흐르니까 쉽게 손상되어 이 부분에서 하자가 많이 생긴단다. 그래서 일반 건축에서는 노란 파이프로 용접을 많이 하는데 이것도 용접 기술이 좋지 않으면 용접하면서 연결 부분이 약해지거나 구멍이 막히는 수도 있단다.

설비가 힘든 게 바닥을 마감해 놓고 나중에 하자가 생기면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나중에 뜯다 보면 마감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설비는 웬만하면 뜯지 않는 게 좋은 거란다. 그래서 웬만하면 연결하는 부분은 화장실 쪽에 연결해 나중에 뜯더라도 화장실 바닥에서 뜯어 손을 보는 게 수월하단다.

a 농막이지만 비싼 시스템 창호를 썼다. 밖에 실개천이 바라다 보인다.

농막이지만 비싼 시스템 창호를 썼다. 밖에 실개천이 바라다 보인다. ⓒ 장승현

성욱아, 문제가 생긴 건 점심 때부터였다. 점심은 여기서 3킬로미터 떨어진 화북 면소재지에 있는 식당으로 가야 한단다. 미리 아빠가 먹을 만한 음식점을 알아놓았기에 오늘도 점심을 거기서 먹기로 했다. 다행인 건 이 지역에는 그래도 음식이 먹을 만하더라. 여기 화북 식당은 음식 맛이 아주 좋더구나. 반찬도 깔끔하고 김치 하나로도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더구나.

그런데 점심 때 미장하는 아저씨가 대뜸 소주를 한 병 시키더라. 일하는 사람들이야 점심 때 반주 한 잔 하는 거야 다반사라 그러려니 했지. 사실 우리 주변의 목수들은 술을 아무리 좋아해도 낮에 일할 때 술을 먹는 사람들은 거의 없단다.

10여 년 전에 순창에서 한 목수가 낮에 술을 먹었는데 끝내 그 사람은 술 마시고 둥근톱에 손톱을 잘리는 바람에 아빠가 꽤나 돈이 많이 나간 적이 있단다. 그래서 그때 유행한 말이 술 마시고 다치면 술 때문에 다친 거니까 일할 때는 절대 술 마시지 말자고들 했었지.

그런데 오늘 미장하는 아저씨가 술 마시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 근성이라고 하지. 노가다 근성이라고도 하고. 거의 소주 한 병을 혼자 다 마시더라. 그래 마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있냐? 괜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술 마시는 자유를 누가 말리겠냐?

이 술 때문에 오늘은 그야말로 뭐 돼 버렸단다. 현장에 도착해서 비틀비틀거리더니 일머리도 잡지 못하고 이리 뒤뚱, 저리 뒤뚱하더니 끝내는 입구에서 발라당 자빠져 엉덩방아를 찧고는 아프다고 난리를 치더구나. 그때부터는 아빠가 완전히 개잡부 되었단다. 뒤에서 술 취한 사람 뒷일 해주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너는 모를 거다.

성질 같아서는 일당 집어던지고 욕 한번 해주고 지금 버스 타고 조치원까지 가라고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마음이 약해서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술 취한 사람 뒷일을 해주었단다.

정말 걸어서 한 시간 나가서 두어 시간 시내버스 기다리다가 서너 번 차를 바꿔 타고 조치원까지 가도록 확 내쫒고 싶었지만 그래도 조치원 사람인데 하며 끝내 참고 말았단다.

날은 어둑어둑해지는데 바닥 미장이 제대로 나올 리가 있겠느냐. 다음날 가보니 도저히 장판을 깔 수가 없더구나. 그래 하는 수 없이 비싼 강화마루 깔아주기로 했단다. 원래 장판도 주인이 알아서 깔기로 했는데 미장 잘못 하는 바람에 아빠가 보상해주는 차원에서 강화마루를 깔아 바닥을 잡기로 했단다. 참, 나 원! 욕지거리가 저절로 나오더구나.

a 강화마루를 깔기 전에 방습지를 깔았다

강화마루를 깔기 전에 방습지를 깔았다 ⓒ 장승현

얼마나 바닥이 삐뚤삐뚤하던지 도저히 장판을 깔 수가 없더구나. 웬만하면 글라인더로 밀고 장판을 깔아볼까도 했지만 아빠가 봐도 '이건 영 아니올시다'였단다.

a 하나 하나 끼어 맞추는 강화마루

하나 하나 끼어 맞추는 강화마루 ⓒ 장승현

그래 강화마루를 사다 아빠가 직접 깔았단다. 강화마루를 까는데 함께 일하던 아저씨가 묻더구나, 강화마루도 잘 까시느냐고. 물론 아빠가 강화마루를 깔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a 아빠가 처음 시공해보는 강화마루

아빠가 처음 시공해보는 강화마루 ⓒ 장승현

"아니 운전면허 있는 사람이 안 가본 길이라고 못 가요? 길을 모르면 물어서 가고 방법을 모르면 연구해서 가면 되지요."

그러자 같이 일하던 아저씨가 맞다고 하더라. 일이란 것이 다 그렇듯이 새로운 건 공부하고 연구하고 개척해 가야 한단다. 그렇지만 이번 미장일처럼 숙달이 필요하고 전공이 다른 분야는 기술자를 잘 만나야 한단다.

a 공식처럼 강화마루를 다 깔았다

공식처럼 강화마루를 다 깔았다 ⓒ 장승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종뉴스(www.sje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종뉴스(www.sje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장 #노가다 근성 #배관 #엑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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