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아서 나는 진정 행복했는가?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22] 알록제비꽃

등록 2007.05.25 13:46수정 2007.05.2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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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제비꽃(2006년산) ⓒ 김민수

봄의 전령사 중 하나인 제비꽃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냥 '제비꽃'이면 되었지 이름을 따로 불러줄 것은 뭐람?"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름없는 꽃'이라고 부르는 것이 꽃에 대한 실례가 되듯이, 제비꽃이긴 하지만 엄연히 다른데 그냥 '제비꽃'이라고 부르는 것도 실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몇 가지 제비꽃을 만났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만나지 못한 제비꽃이 지천임에도 이젠 만났던 제비꽃의 목록을 다 기억해내기도 쉽지 않다.

올해 처음으로 만난 금강제비꽃을 비롯하여 오늘 소개하는 알록제비꽃, 제비꽃 중 유일하게 향기가 있다는 남산제비꽃, 이파리가 단풍잎을 닮은 단풍제비꽃, 순백의 색을 간직한 흰제비꽃, 이파리가 돌돌 말려 고깔을 닮은 고깔제비꽃, 제주에 살아도 서울제비꽃, 올망졸망 기다란 꽃줄기에 작은 꽃을 피우는 졸방제비꽃, 고산지역에서나 만날 수 있는 노랑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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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나는 그 중에서 유일하게 향기가 난다는 '남산제비꽃'과 이파리에 알록달록 무늬가 있는 '알록제비꽃'을 좋아한다.

올 봄에는 아내와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제비꽃으로 꽃반지도 만들어주고, 토끼풀로 팔찌도 만들어 주었다. 금방 시들어버리는 꽃반지와 꽃팔찌지만 추억과 향기는 아주 오래 마음에 남는 작은 선물이다.

제비꽃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할 때 나는 올해 '알록제비꽃'을 제대로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알록제비꽃은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4월 말 경에 피어나니 5월 초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들과 조우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쁜 일상으로 인해 다른 곳에 한눈을 팔다 달력을 보니 5월 중순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미 알록제비꽃은 내년을 기약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시간에 홀려버린 기분이다. 이미 신록의 이파리들로 꽉 찬 숲에는 그들이 마음껏 아침 햇살과 조우할 공간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올봄도 만나고 싶은 꽃들의 목록을 만들어놓고는 또 다시 내년을 기약하는 꽃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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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렇게 바쁘게 살아서 나는 진정 행복했는가?

직접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지난해 찍어두었던 알록제비꽃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물었다. 행불행이라는 것이 무 자르듯 딱히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지나칠 정도로 바쁘게 살아감으로 내 삶의 걸음걸이에 혼선이 생겼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달라지니 보이는 것도 달라졌다. 천천히 걸어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고, 허리를 굽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그냥저냥 바쁜 일상에 매몰되다 보니 화사하고 큰 것들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다. 화사하고 큰 것이 주는 감동이란 풀 섶에 숨어 있는 작은 것들이 주는 감동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것들은 내가 사랑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바쁜 삶은 그 작은 것들과 소통하는 시간들을 허락하지 않으니 결국 바쁜 일상 속에서 보는 것과 듣는 것이 내 삶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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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어제(24일)는 부산에 사는 사촌동생 가족이 서울에 왔다. 2년만의 조우, 그러니까 제주도에 살 때 만난 이후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그는 만나자 대뜸 "형, 얼굴은 많이 하애졌는데 밝지는 않네. 서울 생활이 팍팍한가 보지?" 한다. 정말 그런가 싶어 거울을 보니 평소 때의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 쉬는 날이라 면도를 안 해서 그런가 봐" 했지만 꽤 마음이 쓰인다.

그때는 그냥 나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더란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안고 사는 것 같은 얼굴이란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그가 나보다 나를 더 정확하게 본 것이다. 사실,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말도 더 많이 했고 '희망'이라는 말도 더 많이 했나 보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행복하지도 않는 어중간한 삶 속에서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최면을 걸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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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똑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어떤 이는 너무 짧아서 아쉬워하고, 어떤 이는 너무 길어서 아파하고 살아간다. 시간은 때론 공평한 것 같으면서도 불공평하다. 그것이 어쩌면 시간의 묘미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삶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은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안다. 시간을 붙잡아 둘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바쁘게 산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시간이 남아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 천천히 느릿느릿의 삶이 아닌 게으름, 나태함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많으니 이것 역시도 시간의 묘미다. 그래서 시간은 공평하기도 하고 불공평하기도 하다.

올해 '알록제비꽃'을 만나지 못하고 봄을 보냈다. 그리고 올해는 꼭 만나겠다고 목록에 적어 놓은 것들도 꽃이 지고 나서야 아쉬워하며 또 내년을 기약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만나고 싶은 것 다 만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 바쁜 가운데서라도 '그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라도 품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알록제비꽃 #우리꽃 #달팽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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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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