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사람만 허락하는 바위, 한번 가볼까?

경남 합천군 모산재, 영암사지, 바람흔적 미술관을 다녀와서

등록 2007.05.27 14:48수정 2007.05.2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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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남 합천군 모산재 '순결바위'에 서서.

경남 합천군 모산재 '순결바위'에 서서. ⓒ 김연옥

지난 24일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가르치는 조수미씨와 단둘이서 모산재(767m,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산행을 나섰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린다는 산행 전날의 일기 예보로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이 그만 빠져 버렸다.

우리는 오전 8시 40분께 서마산I.C 입구에서 만나 모산재가 있는 가회면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겨운 보리밭이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과 어우러져 평화롭고 한가한 느낌이 들었다. 그 넉넉하고 정감이 어린 풍경에서 오월이 유달리 눈부시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회중학교로 들어가는 샛길을 못 찾아서 갔던 길을 두세번 오간 것 말고는 별 탈 없이 모산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침을 먹지 않고 서둘러 집에서 나와 배가 고팠다.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보리비빔밥을 사먹고 11시 20분께 산행을 시작했다.

원초적 신비, 모산재의 웅장한 바위를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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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옥

모산재는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바위산이다.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어 신령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산 이름에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을 지닌 '재'를 붙인 것도 색다르다.

주로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거쳐 가다 이따금 수목이 우거진 초록빛 숲길로 들어서면 마치 마법의 세계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것 또한 모산재 산행에서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이다.

간간이 먹구름이 하늘에 흩어져 있을 뿐 되려 부드러운 햇살이 찰랑이며 부서져 내렸다. 시원한 바람에 온몸을 내맡긴 채 아스라이 보이는 합천호에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씻었다. 갈증이 나면 신선한 방울토마토와 금귤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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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옥

과연 바위에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기(氣)가 흐르고 있을까. 기를 받는다고 큼직한 바위 위에 엎드려 온몸을 길게 뻗어 있던 명랑한 조수미씨. 자연은 풀기 어려운 신비로 가득 차 있어 한마디로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없으리라. 왠지 원초적인 신비함이 느껴져 나는 바위산을 좋아한다. 꽤나 신경 쓰이던 일기예보에도 그날 모산재에 꼭 가고 싶었던 이유도 내 가슴을 늘 콩닥콩닥하게 하는 바위의 매력 때문이었다.

a 우리가 올라온 기다란 철계단을 바라보았다. 철계단을 오른 후 40분 남짓 더 걸어가면 모산재 정상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올라온 기다란 철계단을 바라보았다. 철계단을 오른 후 40분 남짓 더 걸어가면 모산재 정상에 이르게 된다. ⓒ 김연옥

모산재 정상에 이른 시간이 12시 50분께. 엄청 불어 대는 바람으로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릴 정도로 상쾌했다. 잠시 앉아서 쉬다가 영암사지로 내려가는 숲길로 들어섰다. 하산길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순결바위'였다. 순결바위 표지판에는 '평소 사생활이 순결하지 못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으며, 만약 들어간다 해도 바위가 오므라들어 나올 수 없다는 전설이 있다'고 쓰여져 있다.


a 모산재 정상에서.

모산재 정상에서. ⓒ 김연옥

황당 개그, 허무 개그를 연상하게 하는 내용이지만, 꽤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한 바위가 어느날 갑자기 둘로 쩍 쪼개진 형상이다. 눈대중으로 갈라진 아귀를 맞춰 보니 영락없는 하나의 바위가 그려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a 순결하지 못한 사람은 바위가 오므라들어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순결바위'.

순결하지 못한 사람은 바위가 오므라들어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순결바위'. ⓒ 김연옥

그날이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라 영암사지(사적 제131호, 靈岩寺址) 부근에 있는 절집에서 맛있는 절밥을 얻어 먹었다. 예전부터 절밥이 정갈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한번쯤 먹어 봤으면 했는데 드디어 소원 성취를 한 셈이다. 과일도 먹고 가라는 후한 인심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먹고 가까이에 있는 영암사지로 천천히 걸어갔다.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에 홀딱 반하고 바람개비에 마음을 싣다

영암사라는 절이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 480호)과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은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다. 나는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과 견줄 수 있는 걸작으로 평가 받는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해 버렸다.

a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 김연옥

밑받침돌을 뒷발로 딛고 있고 앞발을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고 서 있는 두 마리 사자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데다 연꽃 모양을 새긴 밑받침돌과 가슴을 맞대고 서 있는 사자 두 마리가 하나의 돌로 조각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그리고 등불을 밝히는 팔각 화사석(火舍石)의 4면에는 화창(火窓)이 있고 한 면 건너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어 있었다.

쌍사자석등을 보려면 돌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하나의 돌에서 발을 디디는 부분을 파 내어 만든 것 같았다. 옆에서 보면 작은 아치 모양의 예쁜 돌계단이라 매우 인상적이었다. 1933년경 일본 사람들이 그 쌍사자석등을 훔쳐 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해 두었다가 1959년 본디 그 자리로 옮겨 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a 바람 흔적 따라 빙빙 도는 바람개비가 인상적인 '바람흔적 미술관'.

바람 흔적 따라 빙빙 도는 바람개비가 인상적인 '바람흔적 미술관'. ⓒ 김연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바람흔적 미술관(합천군 가회면 중촌리)으로 가는 길에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바람 흔적 따라 빙빙 돌아가는 바람개비들이 우리의 마음을 몹시 설레게 했던 색다른 미술관이었다.

철로 만든 명태 등 여러 조각품들도 전시되어 있는 뜰을 우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거닐었다. 문득 가난한 시인과 결혼해 연극 소극장을 어렵게 꾸려 가던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미술관 건물 이층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손수 차를 끓여 마시고 나서 차 값을 알아서 함지박에 넣었다고 들었는데, 지난해 7월부터 미술관 운영 문제로 주인 아저씨가 직접 차를 끓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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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옥

살아가면서 가끔 무엇에 미친 듯 순수한 열정을 쏟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주인 아저씨에게 '미친차'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차를 함께 마시면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친해지자'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이층 창가에 놓여 있던 하얀 감자꽃을 뒤로 하고 우리는 마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감자에도 그렇게 어여쁜 꽃이 핀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연이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다운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차창 밖에 알알이 맺혀 있는 작은 빗방울들이 경쾌한 리듬을 타며 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a 어여쁜 하얀 감자꽃. 자연은 참 아름답다.

어여쁜 하얀 감자꽃. 자연은 참 아름답다. ⓒ 김연옥

#합천군모산재 #합천군영암사지 #합천군바람흔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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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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