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도살장으로 데려간 누렁이는 이렇게 바닷가를 뛰놀던 개였는지 몰랐다.김종휘
누렁이는 그날 처음 만났다. 어머니가 아시는 분을 통해 가져온 개였다. 어느 시골에서 데려온 것 같았다. 누렁이를 데리고 신당동 집에서 왕십리 개시장까지 걸어가는 길은 30분 남짓이었다. 나는 그때 그 동행을 잊을 수 없었다. 왕십리 시장에 진입해서 도살장 골목으로 꺾어 들자 마중 나온 사람이 보였다. 그때부터 누렁이는 덜덜덜 마구 떨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힘껏 뒷걸음질치면서,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드는 누렁이를, 나는 그에게 넘겼다. 목까지 줄을 바짝 틀어쥐고 끌고 가자 누렁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그때 누렁이의 뒷다리에 팽팽하게 일어선 힘줄이 보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도살장 입구 너머로 시멘트 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발톱 소리가 들렸다.
봄이었었나, 오후였었나, 평일이었나, 시장 골목길은 한산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멍하게 있는데 그가 다시 나타났다. 건네주는 한 꾸러미의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묵직했다.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탔다. 세 정거장 지나면 집이고 길은 뻥 뚫렸는데도 몹시 길었다. 그때 좌석에 앉아서 느꼈던 그 무게감과 촉감, 무릎에 올려놓은 비닐봉지는 무척 따듯했다.
처음으로 직접 개를 기른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혼자 살던 무렵이었다. 순백의 털빛이 고운 잡종으로 생후 2개월쯤 된 강아지였다. 망치라고 불렀다. 거실에 놓고 기른 망치는 이른 아침마다 작은 앞발 두 개로 방문과 문턱을 복복 긁었다. 그 소리를 한참 동안 듣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방문을 열면 망치는 냉큼 내 품에 안겼다.
품에 안는 일은 하루 두 번이면 끝이었다. 아침에 한 번 밤늦게 귀가할 때 한 번. 망치는 종일 집에 혼자 있었다. 그렇게 8개월을 지냈다. 망치와 같이 살았다고 할 수 없었다. 하루는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국회의원 선거 유세를 보러 갔었다. 그때가 망치를 데리고 외출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망치는 밖에 나오자 엄청 흥분했다.
안기 힘들만큼 난리를 쳐서 내려놓자 망치는 곧장 뛰기 시작했다. 나도 뛰었다. 몇 바퀴를 뱅뱅 돌았는지 모르겠다. 작고 연약한 망치가 발발거리며 쉬지 않고 뛰고 또 뛴다는 것이 놀라웠다. 유세로 시끄럽던 운동장이 잠잠해진 뒤에도 나는 망치를 쫓아 뛰고 있었다.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망치가 멈춰 섰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품에 안고 돌아오는데 망치는 그새 잠들어 있었다. 색색 숨을 내쉬며 단잠에 빠져 있었다. 집에 와서 잠자는 망치를 내려놓자 정신이 산만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곯아떨어진 망치를 바라볼 때마다 싱숭생숭했다. 자정이 가까웠을 무렵 나는 전화를 했다. 서울 외곽에 사는 선배였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초인종이 울렸다.
선배는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와서 잠자는 망치를 보았다. 좋아했다. 일사천리였다. 망치를 태운 차가 골목을 빠져나간 뒤에도 나는 그냥 집 앞에 서 있었다. 망치는 선배가 사는 집 마당에서 뛰어놀 것이고 언제나 가족과 같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집엔 애견 한 마리가 있다니 망치는 심심할 노릇도 없을 터였다.
그로부터 두 해쯤 지나 선배 가족과 등산을 갔었다. 마침 선배가 망치를 데리고 왔다. 한 손에 들어올렸던 가볍고 하얀 망치가 아니었다. 덩치는 서너 배 정도 컸고 털은 무성한 회색빛이었다. 나를 본 망치는 꼬리를 흔들기는커녕 다가오지도 않았다. 심드렁하게 바라만 보았다. 나는 개를 키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자는 대로 할 거지?
아내는 울고 있었다. 밤늦게 귀가해서 방문을 열자 고개를 돌린 아내 두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내는 언제든 출가할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나 혼자 불안하게 믿고 있는 구석이 있었다. 소리 없이 울던 아내는 점점 소리 내서 울었다. 죽었어…, 뭐가? 방심했더니…, 뭐가? 그 개….
아내는 유기견 커뮤니티의 회원이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를 입양하자고 제안했었다. 나는 반대했다. 아내는 수시로 사이트에 올라온 개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구조자와 임시보호자의 손을 떠난 개는 수용시설에 가 있었다. 그곳에선 기한을 정해두고 있다가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킨다고 했다. 내 반대는 여전했다.
아내의 날수 계산에 따르면 그날은 개가 안락사된 지 딱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날마다 게시판에 들려 입양을 권하는 글을 올리던 아내는 며칠간 그 생각을 놓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한편으론 안심했고 한편으론 여전히 불안했다. 그런 개들이 많을 텐데 딱 그날 안락사 시킨다는 보장은 없잖아? 내일 가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