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받은 황금귀걸이

부부의 날에 받은 특별한 선물

등록 2007.05.30 16:35수정 2007.05.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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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사온 황금 귀걸이 ⓒ 정현순

29일 새 귀걸이를 하고 친구 모임에 나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10분도 되지 않아 귀가 쑥쑥 쑤시면서 아파오기 시작해서 할 수 없이 빼고 말았다. 거울을 꺼내어 귀를 보니 귀가 시뻘겋게 성해있었고 찐득 찐득 진물이 나려고 하는지 손에 무언가가 만져진다. ‘그러면 그렇지 보기에 너무나 두껍다 했어’ 하곤 귀에서 뺀 귀걸이를 가방에 넣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 귀걸이는 지난 21일 부부의 날에 남편에게 선물로 받은 황금 귀걸이였다. 21일 저녁 집에 돌아온 남편은 멋쩍은 듯이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를 내놓더니 “자, 이거 받아”한다. 난 생각지도 않던 일이라 “이게 뭔데?” 하곤 풀어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풀어보니 보석 상자였다. 참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 하더니.

“웬일이야? 이런 걸 다 사오고. 무슨 날이야?”
“아니, 무슨 날이라서가 아니라 집에 오다 차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니깐 오늘이‘부부의 날’이라고 하대. 또 지난번 우리 결혼기념일도 그냥 지나가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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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두꺼운 귀걸이 ⓒ 정현순

난 황금색 귀걸이를 꺼냈다. 그러나 얼른 보기에도 그 귀걸이는 너무나 두꺼워 보였다.

“이거 너무 두꺼워 보이는데 어떻게 이걸 산거야?”
“내가 생각해보니깐 우리 결혼한 지도 33~34년인가 됐는데도 아직 이렇다 할 선물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금방에 들어갔지. 내가 고르지 못하고 있으니깐 주인이 이걸 권하더라고. 내가 뭘 아나? 잘 안 맞으면 바꿔오든지. 금방 주인한테 얘기해 놨어.”
“바꾸기는 내 귀 구멍을 넓혀보지 뭐.”

내가 귀걸이를 차기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20년이 되도록 관심 한번 두지 않던 남편이 귀걸이를 다 사오다니. 남편이 늙긴 늙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귀걸이를 집에 있거나 외출할 때도 잘 찼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외출할 때만 차게 되었다. 혹시라도 힘들게 뚫은 귀 구멍이 막힐까봐 아주 가끔씩 귀걸이를 할 정도다. 처음 귀를 뚫고 나서 그 부위가 곪을까봐 항생제도 먹고 소독도 열심히 하면서 관리를 했으니 막히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편이 “어디, 한번 걸어봐”한다. 남편이 사온 황금 귀걸이를 하고 거울을 보니 번쩍번쩍하는 것이 세련된 맛이라고는 느낄 수 없었지만 정겨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것 같았다. 사실 귀걸이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황금귀걸이를 잘 하지 않는다. 예쁘고 세련된 이미테이션을 많이 하는 편이다. 평소 비싼 귀금속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황금귀걸이가 사뭇 어색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오래 전부터 옷이나 구두를 직접 사도 잘 맞지 않아 교환하거나 못 입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후로 남편은 자기 물건은 물론 가족 물건도 사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현찰로 해결했다. 그런 남편이 이 정도 선물을 사왔다는 것은 대단한 발전이다.

한 친구가 내 귀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웬일이니?그 귀걸이 몇 시간만 하고 있다가는 귀가 곪아 터져 병원비가 더 들겠다. 이 귀걸이 다른 것으로 바꿔라. 촌스럽기도 하고 너무 두꺼워.”

속으로는 다짐을 했지만 친구들이 그러는 소리에 나도 잠시 마음이 흔들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대로 놔두고 싶다.

오랜 시간 귀에 걸고 있지는 못하지만 귀걸이를 고르면서 고민했을 늙은 남편의 성의가 그대로 내게 전달이 되는듯 했다. 어떤 것을 사다주어야 마음에 들까? 어떤 귀걸이가 예쁠까? 하며 골랐을 남편의 표정이 그려진다.

'이 귀걸이를 잘 가지고 있다가 며느리 들어오면 며느리한테 줄까?'

혼자 별생각을 다해본다. 아무튼 그 귀걸이 오늘도 잠시 귀에 걸어보았다. 남편에게 받은 황금귀걸이 때문에 내게는 이 5월이 아주 특별하다.
#귀걸이 #부부의 날 #남편 #선물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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