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사람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함께 만드는 뉴스] 6월의 '당신'을 찾습니다

등록 2007.05.31 12:33수정 2007.06.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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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년이라네요. 뜨거웠던 '6월'말입니다. 대체 언제 어떻게 나이를 먹었는지, 정말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역시 세월의 힘은 역시 무섭습니다. 백골단에 쫓겨 들어간 명동 어느 다방에서 우연히 합석했던 '동지'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최루탄에 콜록대던 우리에게 '우유 하나, 빵 한 봉지'를 건네던 아주머니의 두툼한 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몇 장의 사진을 꺼내 들었습니다. 6월의 현장을 누비고 다녔던 고명진 기자(현 뉴시스 사진영상국장)가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과탄 파편이 박힌 발의 통증을 잊은 채, 고명진 기자가 셔터를 눌러대야 했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그 날 그 거리에 섰던 우리들의 '오늘'과 만나고 싶습니다. 누구나 머리 속에 가지고 있음직한 강렬한 '기억' 한 조각도 꺼내 보고 싶습니다. 오늘의 당신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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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

당신은 기억할 겁니다. 1987년 6월 17일에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최루탄 추방 궐기 대회'를. 당신은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보입니다. "이한열을 살려내라"라고 외쳤다는 당신의 얼굴이 무척 고통스러워 보입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요. 최루탄에 쓰러진 학우에 대한 슬픔 때문이었나요? 혹은 경찰과의 충돌에서 비롯된 고통이었나요. '시대의 아픔'에 통곡했던 당신,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요.

방독면을 쓰고 있었던 당신들께도 묻고 싶군요. 혹시 이 청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때 당신들은 방패 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그 때 그 거리에 있던 우리들...역사의 현장에 있어야 했던 사람들일 뿐입니다. 1987년 6월 17일을 당신들은 어떻게 증언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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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

그래서 '감히' 이 사진도 소개합니다. 1986년 4월 30일, 중앙대 후문 쪽이었습니다. 당신들은 민민투 결성식을 마친 시위대의 거리 진출을 막고 있었습니다. 화염병에 맞아 뒹굴고 있는 당신,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그럴 겁니다. 아마 당신은 '흉터'를 내보이고 싶지 않겠지요. 당신의 그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을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요. 그래도 당신의 '화인'과 마주하고 싶습니다. 그 때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2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역사의 그늘 속에 가려진 당신만의 '흉터'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동료들의 얼굴도 마찬가지입니다. 방독면 뒤에 가려진 당신들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쓰러진 동료에게 달려가는 당신의 얼굴은 다급했겠지요. 일그러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노에 찬 욕설이 튀어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 날의 분노를 당신들은 지금 어떻게 곱씹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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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

조금 더 오래된 사진 한 장도 꺼내볼까요. 1984년 4월 24일에 촬영한 사진이랍니다. 고명진 국장은 이 사진 제목을 '전경과 시험'이라고 붙이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험 거부를 결정한 서울대 학생들, 학교측의 공권력 개입 요청으로 6,420명의 경찰병력이 투입됐다. 이 중 일부 병력만 철수한 가운데, 서울대는 시험을 실시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진 속에 있는 당신에게 '불편한' 기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어제의 생각도 그렇지만,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 더욱 궁금합니다. 어제도 중요하지만, 오늘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한열의 장례식 날, 개미 한 마리 없는 도서관에 혼자 있었다"는 영화감독 임상수는 "빛나는 시대를 만들어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 고백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운동권을 비판했습니다. 이것이 잘못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6월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6월'을 위해서도 당신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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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

그래도 당신이 도서관에 있었을 때, 거리에 나섰던 '너희'를 잊지는 말아야겠지요.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할 '너희'가, '우리'가, '당신'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1987년 6월 18일, 부산 동구 좌천동 고가도로 바로 앞 육교 아래에서 한 명의 노동자가 최루탄 직격탄에 쓰러지고 맙니다. '최루탄 추방의 날'이 선포된 바로 그 날이었죠. 동아대를 졸업하고 신발공장에 근무하던 노동자였습니다.

그리고 병원으로 옮겨진 젊은 노동자는, 스물 일곱이란 나이에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태춘 씨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진 속 당신의 통곡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장지로 가는 길을 열어 달라는 당신의 호소에 경찰도 어쩔 줄 몰라 했다죠.

헬멧을 쓰고 있는 당신의 표정이 그렇습니다. 곤혹스러워 보입니다. 바로 옆 동료 역시 눈을 아래로 내려 깔고 있군요. 그 날의 통곡을 당신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지금 당신들은 그 날 그 거리에 섰던 자리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나요. 오늘의 당신들 역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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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

당신들이 여자라서가 아닙니다. 당신들 뒤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어떤 여학생의 모습이 바로 그 날 거리에 섰던 '우리'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선봉에 선 당신들을 보며 늘 궁금했답니다. 대체 '무엇이 저들을 그렇게….' 물론 한편으로는 당신들의 '용기'에 감탄도 했었지요.

1986년 5월 31일의 사진입니다. 창립 1백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교문 밖으로 나선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은 이화여대 학생들로 보입니다. 하나같이 운동화를 신고 있는 당신들의 발, 당신들의 도약이 무척이나 힘차 보입니다. 그랬군요, 다시 사진을 보니, 뒤에 서 있는 학생들도 대부분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학생들이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은 무척 찾아보기 어렵지요. 그 때 우리에게 '멋'은 사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짱돌'을 움켜쥔 당신의 양손에서, 이제 막 왼 손에서 '꽃병'을 옮겨 쥔 당신의 오른 손에서 그 때 우리의 '절박함'을 엿보는 듯 합니다. 당신들은 그 때의 '절박함'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졌습니까. 정말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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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

고명진 국장은 당신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세상을 바꿀 사람들이다". 그래서 당신들의 얼굴 하나 하나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합니다.

1987년 6월 18일이었습니다. 명동성당이었죠. '호헌분쇄'라고 쓴 머리띠를 매고 있는 당신, '독재타도'라는 마스크로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당신, 면장갑을 꼈는데도 굳게 움켜쥔 주먹이 너무나 선명한 당신.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보기에는 다소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물안경으로 중무장한 당신. 최루탄의 '지독함'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때의 '물안경'을 웃음으로 넘길 수만은 없겠지요.

6월의 햇볕 아래에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을 당신들의 얼굴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당신들에게 그 날은 어떤 날이었습니까. 어떤 생각으로 명동성당 앞에 앉아있었나요. 왜 우리는 웃을 수 있었을까요. 이제 사진 밖에 서 있는 당신들은 '오늘의 6월'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당신은 웃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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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

끝으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당신'도 소개합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당신, 윗도리를 어디론가 벗어버려 드러난 상체가 단단해 보이는군요. 하늘을 향한 팔이 꼿꼿합니다. 도로 위를 내닫는 다리가 무척이나 힘차 보입니다. 커다란 태극기가 펄럭이는 앞에서, '최루탄을 쏘지 말라'고 외쳤던 당신이 누군지 아직 우리는 모른답니다. 그저 20년 동안 당신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아! 나의 조국'이라고.

2007년 6월, <오마이뉴스>가 당신을 찾습니다. 위 사진들과 관련한 어떤 이야기든 환영합니다. 직접 글을 써주신다면, 더욱 생생하게 '그 날'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보도 좋습니다. 또 독자 의견 한 줄이면 어떻겠습니까. 당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이상 함께 만드는 뉴스였습니다.

고명진 국장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6월항쟁 #민주 #이한열 #최루탄 #고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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