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훈수'보다 정치권의 '적대적 분열'이 문제다

[최재천 의원] DJ를 위한 변명

등록 2007.05.30 22:17수정 2007.05.3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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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역시 한나라당은 'DJ(김대중)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DJ의 일관된 발언은 이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헌정사적 전통에 비춰볼 때 국민은 양당제를 원한다. 정치권은 그 요구에 따라야 한다. 따라서 통합을 위한 정치인들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교과서적 수준의 정치적 코멘트에 불과하다. '소통합'이니 '대통합'이니 하는 정치공학적 기획과는 거리가 멀다. '지역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정치개입'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으로서는 정치적 과민반응을 보여야 할 이유가 있다.

한나라당이 정치적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유

첫째, 한나라당은 당연히 범여권의 분열을 간절히 희구한다.


그런데 조정자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노무현 대통령은 자의반 타의반 '친노직계'라는 계보조직의 수장이 되고 말았다. '기간당원제가 정치개혁의 전부'라던 정치개혁 근본주의에서 "대세를 따를 수도 있다"는 극단적 실용주의로 표변하는 동안 범여권 통합과정에 있어서의 노 대통령의 역할은 사실상 실종상태다. 현 상태 이상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동영, 김근태 등 범여권의 리더 그룹들에게는 현재의 분열상을 극복할 만한 리더십과 희생정신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통합'을 얘기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런 분열상을 즐기고 있다. 따라서 범여권 통합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DJ의 역할에 대해 신경질적인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5․16쿠데타 이후 만년 여당의 길을 걸어왔던 한나라당에게 최초로 패배의 고통을 안긴 DJ에 대해 갖는 고통과 분노의 열패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한나라당의 과민반응은 DJ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내부 결속력을 강화시키고, 범여권 후보의 리더십을 더욱 왜소화하기 위한 '조작된 공포'에 불과하다.

둘째, 5·16쿠데타 이후부터 한나라당이 일관되게 자신들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해 온 '망국적 지역주의'와 '레드 콤플렉스'를 끄집어내기에는 DJ만한 소재가 없다. 그래서 한나라당 고위 간부들은 "DJ의 발언은 지역주의"라고 했다가, "DJ는 사실상 북한의 대변인역"이라며 독설을 퍼붓는다.

역시 한나라당은 지역균형보다는 지역패권을 사랑한다. 남북화해협력보다는 남북냉전을 통한 기득권 유지를 더 사랑한다. 시장경제보다는 관치경제나 개발독재를 더 사랑한다. 반독재민주화보다는 일사불란한 군부독재를 더 선호한다. 이런 대척점에 DJ의 정치적 노선이 존재한다. 그래서 범여권의 지도자들은 이런 정책들에 대한 DJ의 '인가'를 희망하는 측면이 있다.

a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28일 오전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를 비판하고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28일 오전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를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이 찾는 전두환·YS의 '훈수'는 왜 보도되지 않는 것일까?

역으로 한나라당은 DJ의 정치적 노선에 대한 몰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DJ를 희생양 삼으려 한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지역주의'와 '레드 콤플렉스'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책과 이념을 정당화하려 한다. 아직도 한나라당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내친김에 두어 가지만 더 얘기하자. 한나라당의 대권후보들을 포함한 유력 정치인들 대부분이 5공 대통령인 전두환씨를 찾았고 문민정부 대통령인 YS(김영삼)를 찾았다. 필경 이들도 정치적 '훈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을까? 역으로 왜 언론이나 국민들은 YS의 '훈수'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심도 나타내 보이지 않는 걸까?

민주당 일각의 행태 또한 DJ의 진의를 왜곡하는 대표적 사례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DJ를 '협의의 민주당원'으로 간주한다. 이는 DJ를 '호남 대통령'으로 고립시키고, 그리하여 호남을 지역주의의 덫에 가두려는 한나라당의 전략에 편승하는 일이다.

통합에 대한 DJ의 언급을 두고 "자칫하면 민주당 당론과 다르게 비칠 수 있다"는 박상천 대표의 발언이 그 표현이다. "전직 대통령이 통합의 방법까지 제시하고 예시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는 조순형 의원의 발언 또한 한나라당의 주장과 전혀 다르지 않다. 박 대표와 조 의원의 DJ에 대한 인식은 동전의 양면이다.

스스로 리더십을 세우지 못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햇빛 소나타'가 아니라 스스로 발광하지 못하는 '월광 소나타'를 불러댄다. DJ의 훈수를 비판하기 전에 DJ의 훈수가 필요 없는 정치판을 설계할 능력이나 리더십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DJ와의 사적인 대화를 마치 자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로 포장하는 언론 브리핑 방식 또한 좀더 세련되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DJ의 '훈수'대로 범여권의 희생정신과 리더십의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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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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