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기, 쉽지 않은 여정을 시작하며

[광촌 단상1] 초보 농사꾼의 객쩍은 생각

등록 2007.05.31 10:06수정 2007.05.3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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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들은 "뜨락"을 장식할 소품이면서 현재는 비 맞으면 안되는 물건을 담아두는 창고 구실을 한다. 분무기, 일할 때 신는 장화, 작은 농기구들이 그 안에 있다. ⓒ 홍광석

맨 먼저 야콘을 심고 상치, 다음에는 쑥갓, 열무 등 야채를 심었다. 아내가 심은 고추밭에 나는 지줏대를 꽂았다. 그리고 오이, 참외, 수박, 가지 묘목을 심으니 제법 꼴을 갖춘 텃밭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두 번이나 고추와 상추 잎을 따고 상추열무를 솎았다. 농약을 치지 않은 탓에 구멍이 숭숭한 열무, 상추, 연한 뽕잎, 밭 가장자리에서 뜯은 자연산 미나리가 요즘 우리 식탁의 중심 메뉴다.

채소를 씻으며 아내는 부드럽고 향이 좋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내가 키웠다는 보람이 상승효과를 부추긴 탓일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전에 먹은 채소와 맛과 느낌이 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텃밭을 가꾸는 일은 화분을 다루는 일과 확실히 달랐다. 우선 노동의 강도면에서도 꽃삽과 괭이의 크기만큼 차이가 났고, 투자하는 시간의 양도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투리 시간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아내와 나의 주말은 대부분 우리의 텃밭을 지키는 시간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김매기는 단순하지만 더디고 힘이 많이 들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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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고추밭에도 넘친다. ⓒ 홍광석

점점 녹음이 짙어간다. 녹음이 짙어질수록 주변은 온통 풀들의 잔치다. 풀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고 왕성하게 줄기를 뻗치는 모습이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 거친 줄기를 뻗어 심어놓은 작물을 감는 풀과 잔디밭에 고개를 내민 풀은 초대하지 않는 손님이다.

풀을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경험자들의 말을 상기하지만 돋아나는 모든 풀과 공생할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농장에 가는 날이면 아내는 호미를, 나는 괭이부터 잡는다. 심어놓은 작물에는 농약을 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시작한 일이다. 때문에 아내와 내가 사서 시작한 고행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그 많은 일을 다 하느냐?"

우리를 안타깝게 봤던 것인지 이웃 노인이 다가와 제초제를 권한다. 사람을 구해 김을 매겠다고 했더니 철없는 사람을 본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 분에게 품삯이 들더라도 땅을 살리겠다고 한들 칭찬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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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에 쫓기고 벌레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열무밭 풍경 ⓒ 홍광석

김을 맨다. 발밑에 밟히는 풀은 그냥 둔다. 먹을거리도 아니고 그늘도 만들어주지도 않는 풀, 채소와 나무를 괴롭히는 풀만 쫓아다닌다. 우리 가족의 건강한 식탁을 만들겠다는 염원과 함께 땅을 살리겠다는 뜻도 담아 거친 풀을 치운다.

등에 땀이 배면 자두나무 그늘을 찾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평화로운 법이다. 그늘에 앉아 한 잔의 물로 갈증을 푸는 시간은 잡념이 없다. 마음은 바빠도 서둘러 힘들게 일하지 않기로 했기에 짐짓 여유를 부리며 솔숲의 새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본다.

생각하면 사람은 씨앗을 심고 가꾸는 지혜는 있어도 그 자신이 직접 상추 씨앗 하나 싹틔울 능력이 없다. 땅을 관장하는 신의 은혜가 없다면, 그리고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갖가지 작물이 없다면 사람은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자연으로 회귀한다 함은 땅의 신에게 귀의하는 일이다.

그런데 땅에서 낳고 한 줌의 재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땅을 모질게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존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생존의 터전인 땅을 훼손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길을 내고 골프장을 만든다며 예사롭게 산을 허물고, 아무것이나 함부로 태워 후미진 곳에 묻고, 풀과 벌레를 잡는다고 개념 없이 농약을 쓰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사는 터전이 병들어간다.

세상은 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내가 사는 땅만 살린다고 나 혼자 건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그 길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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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자라지 못하는 야콘이 가엽게 보인다. 풀은 없애면서 덜 자란 야콘을 걱정하는 마음은 대상에 따라 애증을 달리하는 내 이기심의 발로인줄 모르겠다. ⓒ 홍광석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이 찰나의 인연이었듯이 내 소유라고 믿는 땅과 식물 역시 스쳐지나가는 인연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반성도 해본다. 문득 일부러 심은 나무와 작물을 위한 김매기가 다른 풀을 죽인다는 생각에 미치자 김매는 일이 과연 선이며 정의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렇지만 초보 농사꾼이 무슨 객쩍은 생각이냐며 벌떡 일어나 밭으로 간다. 몇 개의 야콘은 아픈 것인지 성장을 멈춘 채 하늘만 바라보고, 아직 연한 열무 잎에는 유독 많은 벌레들이 넘본다. 어디엔들 생존경쟁이 없으랴만 초여름의 밭도 작은 전쟁터다.

우선 열무 밭에 목초액을 뿌려야겠다고 분무기를 챙기는데 아내는 벌써 호미를 쥐고 잔디밭을 뒤집고 있다. 이제 여름은 시작이다. 모든 풀과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는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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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짓기까지 당분간 자두나무 그늘은 우리의 쉼터가 될 것이다. 테이블과 의자는 우리의 시골살이를 부추긴 김교장이 맨 먼저 들고온 선물이다. ⓒ 홍광석

덧붙이는 글 | 앞으로 내가 터를 잡은 광촌의 일상을 생각나는 대로 올릴 작정이다.

덧붙이는 글 앞으로 내가 터를 잡은 광촌의 일상을 생각나는 대로 올릴 작정이다.
#초보농사꾼 #김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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