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방인에게 재롱을 떠는 7살 해일리(Hayley)와 애완견 키샤(Keisha). 키샤의 분비물 냄새가 참 고약하다.문종성
제프리는 티타늄을 제작하는 회사에 다닌다고 한다. 제프리의 회사에서 만들어진 티타늄은 보트나 자전거, 그 밖에 공장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장비를 만드는데 쓰인다고. 그의 아내 캘리(Kelly)는 간호사로 근무중이었다.
제프리 가족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후 그의 집안이 리모델링으로 아수라장이었기 때문에 집 마당에다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다. 이렇게 자전거 펑크가 가져다 준 인연으로 또 하룻밤을 넘기게 된다. 아 그런데 샤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개의 분비물 냄새에 한 동안 자는 모양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뒤척인다.
다음 날에 보스턴으로 가는 길목에서 참 재미있는 괴짜를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나에게 속사포처럼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늘어놓는 인물. 그의 이름조차 파악할 시간을 주지 않을 정도로 그의 언변은 빠르고 거침이 없으며 결코 시간차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뭐? 자전거로 뉴욕에서 출발했다구? 당신 미쳤어? 다시 한 번 말해봐. 자전거로 세계일주 한다는게 사실이야? 이 더운 날에? 무슨 생각으로 하는 거야? 당신 미친 게 확실하지? 농담 아냐? 믿을 수가 없어. 난 당신의 말에 대해 신뢰할 수가 없단 말이야. 지금 보스턴으로 간다고? 오~ 보스턴이라면 차로도 한 시간이 넘는 거리인데.
당신 정체가 뭐야? 밥은 먹고 다녀? 숙소는? 참 이상한 사람이군. 그 힘든 걸 왜 해? 이봐. 한국에서 왔다고 그랬나? 그 먼 곳에서 자전거 타러 여기까지.후후~ 당신 남한이야, 북한이야? 정말 놀랍군. 세상에 별난 사람 다 보지만 당신도 참 특별하단 말야. 정말 신기해. 이해불가지만 암튼 멋진 친구야. 힘내라구.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말야. 보스턴이라. 그리고 LA까지... 오, 난 모르겠어. 암튼 행운을 빌어."
혼자서 한참을 떠들어 내던 그 사람은 갑자기 주머니를 뒤지더니 10달러짜리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가지고 밥이라도 한 끼 사먹어야지. 한 5km쯤 가면 맥도날드가 있을 거야. 거기에서 속 좀 채우고 가란 말야. 어쨌거나 잘 먹고 다녀야 할 거 아냐."
그걸로 끝이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다 던져놓고 마지막엔 10달러짜리를 내 손에 쥐어주며 홀연히 사라졌다.
"고마워."
그와 나눈 짧은 인사에 어쩐지 코끝 찡한 여운이 밀려온다. 영화 <버티컬 리미트>에서, 위기 상황에서 잔뜩 자신들의 의견만 피력하지만 결국 앞장서서 희생의 멋진 모습을 보여준 그들처럼 그의 행동도 뭔가 다듬어지지 않은 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웃으며 헤어지는 그의 얼굴이 5분 간 활기찬 잔소리를 들었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알싸한 감동을 선사해 준다.
미지를 향해 출발하는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모험에 익숙해야 한다. - 앙드레 지드
"하룻밤만 자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