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의 저력, <마왕>과 <고맙습니다>

민언련 '4월 추천방송'...EBS <스페이스 공감> 등 선정

등록 2007.06.01 14:40수정 2007.06.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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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6월 1일 EBS <스페이스 공감>의 '3주년 특별기획 언플러그드'와 최근 종방한 MBC <고맙습니다>, KBS <마왕>을 각각 '4월의 추천방송'으로 선정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매달 지상파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추천방송과 유감방송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4월의 유감방송'은 선정하지 않았다.

플러그를 뽑아도 지속되는 '공감'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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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스페이스' 3주년을 기념한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의 '언플러그드' 공연 무대 ⓒ EBS 제공

올해 4월로 3주년을 맞아 '언플러그드'라는 색다른 기획을 선보인 EBS <스페이스 공감>은 음악 공연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을 본질적으로 잘 살린 프로그램이다. 뮤지션들의 실제 공연보다는 립싱크에 맞춘 시각적 쇼가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명칭을 달고 방영되는 현실에서 <스페이스 공감>은 음악적 몰입과 전달력을 갖춘 독보적인 음악 공연 프로그램이었다.

그동안 <스페이스 공감>의 완성도와 문화적 순기능을 높이 평가해 온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이번 3주년 기념 '언플러그드 기획'을 계기로 해 <스페이스 공감>을 '2007년 4월의 추천 방송'으로 선정했다.

음악 공연 프로그램으로서 <스페이스 공감>이 지닌 가치는 공연장과 무대의 모습에서부터 드러난다. <스페이스 공감>은 2004년 4월 EBS가 사옥에 'SPACE'라는 공연 전용 공간을 개관하면서 시작되었다. 151석이라는 아담한 공간에 관객석과 거의 비슷한 높이로 마련된 무대는 뮤지션과 관객이 그야말로 편안한 '공감'을 나누기에 적절한 형태이다.

그 무엇보다 뮤지션들의 요구를 가장 최우선에 두고 이루어진다는 라이브 무대의 세팅, 뮤지션과 관객 사이의 분리가 아닌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소규모 반원형의 공연장 구조는 뮤지션과 관객 모두에게 음악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지상파 방송사의 큰 무대라기보다 깔끔하게 차려진 언더그라운드의 라이브 클럽을 연상시키는 공연장 내부의 모습은 <스페이스 공감>이 상업적인 주류 음악의 유행을 따르기보다 음악성 자체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노력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스페이스 공감>이 여타의 다른 음악 프로그램들과 다르게 음악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은 공연 중간마다 간간이 삽입된 뮤지션들과의 인터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뮤지션과의 대화에서 시각적인 쇼와 신변잡기식 질문, 쉽게 재미를 확보하기 위한 유머 등 음악과 무관한 요소들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다른 음악 프로그램들과 달리 <공감>의 인터뷰는 뮤지션들에게 자신의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공연과는 또 다른 면에서 시청자와 음악적 '공감'을 이루는 방식이다.

<스페이스 공감>은 클래식, 록, 국악, 재즈, 월드 뮤직 등 다양한 음악 장르의 뮤지션들이 출연한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뮤지션들의 연령, 국적, 대중적 인지도 등도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인다. 이렇게 특정한 조건이나 취향에 몰리지 않고 다양한 뮤지션들의 공연을 유치, 방영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문화적 다양성을 체험하게 해 준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특히 공연 감상 문화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스페이스 공감>의 이러한 역할은 큰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이스 공감>의 이러한 문화적 순기능은 단지 TV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스페이스 공감>은 뮤지션들에게 폭넓은 포용의 무대를 제공하는 대중문화의 인프라 역할을 통해 사회 문화에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스페이스 공감>은 단지 시청자들에게 좋은 방송 프로그램일 뿐 아니라 음악 문화의 일부가 되어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뮤지션들에게도 좋은 프로그램인 것이다.

특히 이번에 3주년을 맞아 기획된 '공감-언플러그드'는 자우림(4/7), 크라잉넛(4/8), 신해철(4/14), 박선주(4/21), 소히, 멜로우이어(4/22), 조규찬(4/28), 프로젝트 '3·3·4'(4/29) 등 다양한 뮤지션들이 출연했다. '언플러그드 공연'이라는 포맷은 미국의 MTV가 90년대 선보였던 것으로 그 아이디어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낯익은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에게 공통적으로 전기 플러그를 뺀 어쿠스틱 사운드를 연주하도록 한 흥미로운 기획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스페이스 공감>의 프로그램 가치는 높이 살만하다.

특히 평소에 어쿠스틱 사운드를 별로 연주하지 않았던 뮤지션들까지 언플러그드라는 공연 형태에 섭외할 수 있었던 것은, 뮤지션들에게 있어 이미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이 일정 정도 이상의 신뢰와 호감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공감-언플러그드' 기획에 출연한 뮤지션들이 인터뷰에서 보인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는 <스페이스 공감>이 지난 3년간 쌓아 온 소중한 역사의 결과물인 것이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앞으로도 <스페이스 공감>이 단기적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정통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발전적으로 지속되길 바란다. 아울러 <스페이스 공감>이 음악 문화에 대한 지속적이고 세심한 통찰 속에서 좀 더 다양하고 개성적인 색깔의 뮤지션들이 시청자와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가 되길 기대해본다.

새로운 추리극의 면모를 보여준 드라마 KBS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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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마왕> 포스터 ⓒ KBS 제공

KBS <마왕>은 탄탄한 구성과 치열한 주제의식이 돋보였다. 우선, 매회 극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수준 높은 구성력을 보였다. 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는 오승하(주지훈)가 12년 전 형을 죽게 한 강오수(엄태웅)와 당시 사건을 은폐하는데 동참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다.

승하는 직접 살인에 가담하지 않으면서 범인도, 살해방법도 서로 다른 4건의 살인사건을 벌이고, 이를 막으려는 오수의 고군분투가 흥미롭게 그려졌다. 이 살인사건들은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조금씩 과거 강오수가 저지른 살인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며 점점 극적 갈등을 고조시켰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초반부터 범인이 오승하라는 것을 알지만, 이런 치밀한 구성 때문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마왕>은 치열한 주제의식으로 자칫 흥미로운 '스릴러 드라마'에 그칠 뻔한 드라마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제작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고 황폐하게 만드는지 그로 인해 피해자 가해자 모두가 치러야 하는 희생의 대가가 얼마나 아픈 것인가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자 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드라마에서 말하는 '마왕'은 살인사건을 배후조정 하는 '오승하'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기득권을 가진 '어른'이며, 그들이 만들어낸 이기적이며 모순된 사회이다. 기득권층으로 상징되는 오수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건을 돈과 힘으로 은폐한다. 극중 살해당한 변호사와 기자는 사건의 진실을 알면서도 기득권과 야합해 진실을 은폐하는데 일조한다. <마왕>은 이기적이며 비도덕적인 기득권자의 행태와 부조리한 사회 구조로 인한 피해를 명백히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비도덕적인 내면과 사회 부조리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주었다.

여기에 더해 <마왕>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했다. 오수는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자신이 피하고 싶었던 과거 살인사건에 맞닥뜨리며 괴로워한다. 승하는 복수를 위해 모든 범죄를 계획하지만 결국 또 다른 희생자를 양산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석진은 오수의 형수와 불륜에 빠져 결국은 친구 순기를 위험에 몰아넣으며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오수의 형은 자신의 체면 때문에 아내의 불륜을 무마하려고 순기를 죽이고 그 죄를 석진에게 덮어씌운다. 이처럼 자신이 만들어놓은 덫에 갇혀 끝내 파멸의 길을 선택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했다.

또 이 드라마는 파멸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은 사람에게 있다고 이야기한다. 석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자가 되고, 오수의 아버지는 아들과 자신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용서를 빌고 살인혐의로 잡혀간 큰아들을 기다리다가 죽는다. 오수는 복수를 위해 총을 갖고 나갔지만 승하를 쏘지 못한다. 결국 인간을 절망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용서와 화해이고,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노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밖에 작품 해석과 이해력이 뒷받침된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도 드라마 스토리의 설득력을 높여주었으며, 드라마 속 인간 군상과 시청자들이 가깝게 느껴지게 했다. 또한 극적 완성도를 높여주는 섬세한 조명과 감각적 화면 분할 등 독특하고 섬세한 카메라 기법도 돋보였으며, 촘촘한 스토리를 긴박감 넘치게 전개한 감독의 연출력은 '장르 드라마'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고 평가된다.

'차이'와 '차별'을 구분시켜준 고마운 MBC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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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고맙습니다> 포스터. ⓒ MBC 제공

MBC <고맙습니다>에는 병원의 실수로 에이즈에 걸린 아이 봄(서신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미스터 리(신구), 이 둘과 함께 사는 미혼모 영신(공효진)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나온다. 드라마는 자칫 민감하게 그려질 수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선정적이지 않고 따뜻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영신네 가족'은 '푸른도'라는 가상의 섬에서 마을사람들의 편견에 부딪치고 고통받는다. 그러나 '영신네 가족'은 마을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늘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봄이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입으면 전염시키지 않는 요술코트'를 절대로 벗지 않으려 하고, 미스터 리는 죽기 전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의 초코파이를 전했다.

힘들지만 따뜻함을 잃지 않는 '영신네 가족'의 순수한 마음은 편견과 이기심으로 굳어진 주변사람의 마음마저도 따뜻한 사랑으로 변화시킨다. 봄이의 아버지이면서 봄이를 외면했던 석현이 되돌아오는 것은 물론, 이기적인 엘리트 의사 기서도 영신을 사랑하고, '영신네 가족'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영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석현모는 결국 티 없는 봄이에 대한 애정을 깨닫고 "전 재산을 쓰더라도 봄이의 병을 고쳐주겠다"며 눈물을 흘린다. 영신을 마음 아프게 했던 마을 사람들은 미스터리의 죽음 이후 '푸른도'를 떠나려는 영신의 이사를 막으며 함께 살자고 손을 내민다.

이처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 따뜻함으로 사람들 간의 편견이 깨지는 것, 그것이 바로 <고맙습니다>가 그리고자 하는 기적이었다. 그러나 <고맙습니다>는 막연하게 최루성 환상에 그치지 않았다. 드라마는 먼저 '영신네 가족'이 현실에서 받는 사회적 차별을 아프게 그려서 시청자로 하여금 차별이 타인의 삶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공감하게 했다. 또 '영신네 가족'과 주변인들이 이해와 사랑으로 편견을 깨는 과정 속에서 "다른 것은 차이일 뿐이지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거듭 전달했다.

특히 <고맙습니다>는 에이즈에 대한 인식 개선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직업을 잃고 가족과 마을에서 외면당해 '사회적 매장'을 당하는 차별은 매우 심각하다. 드라마 속에서 '푸른도' 주민도 에이즈에 걸린 어린아이를 괴물 보듯 대하고, 수혈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영신에게 헌혈도 해주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일반인들이 무지와 편견으로 에이즈 감염자들을 얼마나 차별하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매정한 것인지 드러내주었다. 한편 드라마는 이들이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에이즈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전염될 수 있는 전염병이 아니고, 불치병도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대사로 강조했다.

MBC <고맙습니다>는 '어른들을 위한 아름다운 한편의 동화'이면서, 어떤 인권 교재보다 효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성숙한 인권의식을 심어준 '고마운 드라마'였다.

국내 창작 드라마 대본의 우수성 돋보인 두 드라마

몇 년 전부터 외국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수입하여 제작한 드라마가 많아졌고, 이들 드라마는 대체로 탄탄한 스토리와 완성도 높은 연출로 시청자의 호평을 받았다. 일례로 우리 단체에서 2006년 '올해의 좋은 방송' 드라마 부문으로 선정한 SBS <연애시대>도 일본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것이었으며, MBC <하얀거탑>도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민언련 방송모니터분과는 이들 드라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국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에 의존하는 경향이 지나쳐 자칫 국내 창작 의욕을 꺾지 않을까 우려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KBS <마왕>과 MBC <고맙습니다>는 국내 작가의 순수 창작 대본으로 그 어떤 외국 원작에 못지않은 탄탄한 구성과 메시지를 갖췄다는 점에서 우리 드라마의 저력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 반면 스타 캐스팅과 유명 연출자로 주목받았던 SBS <마녀유희>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방송3사가 이번 '수·목 드라마'를 냉정히 평가해서 앞으로 드라마 제작과 편성에 참고하길 바라며,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높여준 KBS <마왕>과 MBC <고맙습니다>에 박수를 보낸다.
#민언련 #마왕 #스페이스 공감 #고맙습니다 #추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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