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거나 비오는 날엔 ‘수제비’ 드세요?

돌산 갓김치와 어울린 '오미자 수제비'

등록 2007.06.01 15:33수정 2007.06.0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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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렁이 각시가 내어 놓은 오미자 수제비.

우렁이 각시가 내어 놓은 오미자 수제비. ⓒ 임현철

“뭘 먹지?”


간혹 아내는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식사 때면 반복되는 아내의 고민에 가볍게 한 마디 던집니다.

“김치에다 밥 먹으면 되지 뭘 그리 고민해? 언제 신랑이 반찬 투정하던가, 대충 먹어. 찬거리 없으면 갓김치에 밥 싸먹자고.”
“남자들은 몰라요. 여자의 마음을….”

그러기야 하겠지요. 맛있는, 영양가 있는 음식 먹이려는 여자의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남편은 고사하고, 키가 안 큰다며 걱정인 아이들 잘 먹이려면 고민이 안 될 수야 없겠지요. 거실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는데 아내가 “식사하세요”라고 합니다.

a 배추김치, 열무김치와 어울린 오미자 수제비.

배추김치, 열무김치와 어울린 오미자 수제비. ⓒ 임현철

“야! 이게 뭐야?”
“수제비요. 맛은 별로 없을 거예요.”
“언제 수제비를 만들었어? 한지도 모르게 뚝딱 해치웠네.”

이럴 때, 아내는 우렁각시입니다. 사실, 손이 빠른 아내 솜씨에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아내는 어릴 적, 집에서 키우던 개ㆍ돼지ㆍ소 등을 잡는 모습을 본 이후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런 아내가 고깃국을 끓여내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품평을 기다립니다.

“간이 맞나 보세요. 좀 짜나요? 싱겁나요?”
“어이, 자네는 참 신통방통해. 어찌 음식 간도 안 보는데 이리 간이 맞아? 맛있네, 맛있어. 잘 먹을라네….”


이쯤이면 아내의 얼굴은 환히 펴집니다. 행복한 얼굴입니다. 맛있게 먹는 것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나 봅니다.

a 파김치와 어울린 오미자 수제비.

파김치와 어울린 오미자 수제비. ⓒ 임현철

지난 일요일 점심 때, 아내가 끓인 수제비를 앞에 두고 내용물을 봅니다. 조개와 빨간색과 흰색 건더기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참지 못한 아내 말을 먼저 꺼냅니다.

“오미자 반죽과 그냥 반죽 두 가지를 섞었어요. 드셔보세요.”
“야, 그렇게도 하는 거야. 색깔 내는 건 생각도 못했네. 어디 한 번 먹어보자.”

먼저 국물을 맛봅니다. 장모님이 보내준 조개를 넣어 시원합니다. 해장국으로 수제비를 먹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오미자를 넣고 끓였더니, 좀 쌉싸름하네요.”
“아니, 좋은데. 쫄깃쫄깃, 담백하고 쌉싸름하고 그러네.”

a 장모님이 맛 변하지 마라고 삶아 먹기 좋게 나눠 보내주신 조개. 정성으로 시원함이 배가 됩니다.

장모님이 맛 변하지 마라고 삶아 먹기 좋게 나눠 보내주신 조개. 정성으로 시원함이 배가 됩니다. ⓒ 임현철


a 아이들은 열무김치가 어울리나 봅니다.

아이들은 열무김치가 어울리나 봅니다. ⓒ 임현철

아이들은 얼굴을 찡그립니다. 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 중 시큼한 맛이 제일 강한 느낌입니다. 어머니가 담아주신 돌산 갓김치를 젓가락으로 들어 수제비 위에 올려 입안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열무김치, 파김치, 배추김치와 어울려 먹어봅니다.

게 중에 적당히 익어 감칠 맛 나는 갓김치가 제일 어울립니다. 톡 쏘는 갓의 맛이 오미자의 시큼함을 적당히 없애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열무김치와 곁들어 먹습니다.

“애들아, 갓김치랑 같이 먹어봐. 맛이 다르네. 이거 상큼해. 자네도 먹어봐.”
“어, 정말 다르네요.”
“수제비는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에 먹으면 좋은데….”

아이들도 김이 모락모락 퍼지는 뜨거운 수제비를 후후 불어 입에 넣느라 정신없습니다. 갓김치를 올려 먹으니 국물이 발그레집니다. 오미자 수제비와 국물 색깔이 같아집니다. 국물까지 다 마시고 “어, 시원하다. 아주 맛있게 잘 먹었네”라고 인사를 합니다. 아내, 잘 먹어줘서 고맙다나요.

녹차ㆍ감자ㆍ낙지 수제비는 들어봤어도 처음인 오미자 수제비도 돌산 갓김치와 어울려 감칠맛 납니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 제격인 수제비, 이런 날엔 더 맛있겠죠?

a 오미자 수제비는 돌산 갓김치의 톡 쏘는 향과 제일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오미자 수제비는 돌산 갓김치의 톡 쏘는 향과 제일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와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BS U포터와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제비 #오미자 #돌산 갓김치 #우렁각시 #감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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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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