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록색 숲에서 비취색 바다를 보다

두 계절이 공존하는 한라산

등록 2007.06.04 12:05수정 2007.06.0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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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선 누구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느끼게 된다.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지금이 그런 때이다. 더구나 요즘엔 봄과 가을이 갈수록 짧아지는 경향이 있어서 봄~여름, 가을~겨울 사이는 바쁜 일로 계절만나기를 미뤄놨다가는 봄이나 가을과는 생이별하기 십상이다.

일상에 갇혀 계절만나기를 놓친 사람들을 위해 봄과 여름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요즘의 제주도이다. 제주도는 언제 가도 이국적인 풍광으로 여행객의 호기심을 잔뜩 채워주지만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함께 있는 것으로도 환절기 여행의 주제가 되기에 족하다.


제주도에 두 계절이 동시에 있음은 한라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 제주도 산 아랫녘엔 녹음이 우거진 초여름이, 한라산 중산간 이상 지대엔 신록이 시작되고 철쭉이 한창인 봄이 진을 치고 있다.

한라산 위에 만들어진 분홍색 구름

최성민
지난 주말 영실~어리목 구간으로 한라산을 넘어봤다. 영실 초입은 아직 나뭇가지들이 앙상한 겨울나목 상태에서 막 벗어나고 있었다. 땅바닥엔 육지에선 한창인 들꽃들을 볼 수는 없었고 군집을 이룬 산죽들이 가느다란 새 순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주 여인네들은 산죽의 이 어린 새순을 뽑아 산죽차를 만드는데, 부드럽고 구수한 향과 맛이 4월에 난 녹차의 그것과 흡사하다.

영실쪽으로 산허리를 올라갈수록 이상하게도 나뭇가지에 움이 트는 모습이 보였는데 경사가 완만한 그 아래쪽보다는 비탈사면이라 햇볕이 더 드는 양지인 탓이었다. 멀리 영실 기암봉우리 사면들을 뒤덮은 빛바랜 연록색깔의 산죽밭을 배경으로 막 새잎을 내민 가지들이 신록으로 연출해내는 신선한 봄빛이란 이 순간 한라산의 오름길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자연의 생동감이리라….

최성민
등산객들이 곳곳에서 뭉개구름처럼 떼지어 피어있는 철쭉꽃 군락을 보고 함성을 지른 곳은 영실 8부능선쯤부터이다. 이곳 철쭉나무들은 찬 기온과 바람 때문인지 키는 50cm 정도만 크고 옆으로만 퍼지면서 나이를 먹어 분재와 비슷한 고목상태로 살고 있다. 그 나무들에 지금 순분홍 철쭉이 만개해 있다. 이 분홍색 구름을 앞에 두고 멀리 제주바다를 배경으로 넣어 사진을 찍으면 청초하고 화려한 봄색깔이 탄생할 것이다.


영실을 넘어 정상인 백록담까지는 평평한 대지 위에 나무다리가 깔려있어서 편히 걸어가면서 고산지역 생태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고산지역 생태라는 것은 다른 나무나 풀은 거의 없고 산죽이 땅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나무다리는 어리목쪽으로 넘어가는 고개까지 약 2km나 뻗어 있다(그 너머로도 수 km에 걸쳐 나무다리가 놓여있다). 나무다리 중간 지점엔 등산객들의 마른 목을 축여줄만한 맞춤한 샘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노루샘'이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노루들도 이 샘물을 마시는 모양이다. 사람과 야생동물의 공용 생명줄인 셈이다. 이쯤에서는 먹이 얻어먹기에 길들여진 까마귀떼가 사람들을 따라 나서기 시작한다.


육지에선 볼 수 없는 광활한 들과 지평선

최성민
한라산 정상은 지금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가장자리의 풍화작용으로 백록담이 메워지는 현상이 등산객들의 잦은 출입으로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은 백록담 아랫녘 영실~어리목 중간 산장휴게소에 짐을 풀고 백록담 봉우리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다.

이어 다시 어리목쪽으로 화산바윗길을 넘어오는데, 이번에는 올라갈 때와는 반대로 초봄에서 익어가는 여름을 만나는 산행길이다. 어리목쪽으로 중간쯤 내려오면 녹음이 한창인 숲길을 지나게 되는데, 숲길이라고 하기 보다는 녹음터널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말일 것 같다. 이곳에서는 최상급으로 신선한 공기가 한기를 몰고 오는 것이 무척 반갑게 느껴져 여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어리목에 내려와서 숲을 뚫고 난 포장도로를 걸어 내려오는 맛이란, 등산과는 또 다른 행복한 산보의 진수를 만나는 것이다. 눈으로 만나기에도 즐겁기만 한 그 '산소밭' 길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은 또 어떨까?

최성민
최성민
제주도는 지금 특별자치도로 지정돼 관광객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또 최근에는 서기포쪽에 새로운 해군지기를 받아들일 결정을 주민 여론조사를 통해 확정해서 발전의 또 다른 계기를 맞고 있다.

제주도는 울릉도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화산섬이다. 세계적으로 화산섬 가운데 유명한 관광지가 많다. 하와이가 그렇고 사이판을 비롯한 남태평양의 관광섬들이 그렇다. 인도양의 리조트 명소인 몰디브는 모든 섬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화산폭발로 솟아난 섬 봉우리 가장자리에 산호가루가 퇴적되어 이뤄진 섬이다.

화산섬이 관광자원이 되는 것은 특이한 자연과 자연생태 때문이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흑갈색 화산석과 화산토로 되어 있어서 우선 이색적인 풍광을 제공한다. 화산이 대규모로 폭발해 이뤄진 제주도는 섬 전체가 사방으로 뻗어 내린 한라산의 비탈면이다. 따라서 군데에 있는 여러 개의 작은 오름(기생화산)들을 제외하고는 완만한 평지로 되어있어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광활한 들과 지평선을 만날 수 있다.

우도, 마라도, 가파도, 비양도, 형제섬, 섭섬...

비자림, 귤밭, 백년초(선인장), 난도의 문주란 군락 등 제주 특유의 식물 생태와 우도, 마라도, 가파도, 비양도, 형제섬, 섭섬 등 아름다운 모습으로 늘어서 있는 섬들도 화산섬 제주도의 관광자원이다.

요즘 제주도 가는 항공편은 초만원이다. 광주는 물론 전국 어느 도시에서도 평일 제주행 항공편을 구하기가 어렵다. 관광과 수학여행, 골프객들로 붐비는데다가 항공사들이 제주도와 같은 거리 구간인 중국 등 수입이 두 배 이상인 국제선으로 비행기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제주행 국내선편이 예전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래전에 예약을 하거나 목포, 완도, 고흥(녹동) 등지에서 떠나는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목포에서는 4시간, 완도와 고흥에서는 각각 3시간 정도 걸린다. 여수에서는 제주행 배편이 없어졌다.

덧붙이는 글 | 전남일보에 비슷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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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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