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고 나니, 보기 좋구나"

35년 직장 명퇴하고 하향해서 만든 우리집 대나무 울타리

등록 2007.06.04 14:17수정 2007.06.0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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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마당 쇄석 사이를 뚫고 나온 잡초에 맺힌 이슬방울 ⓒ 김홍식

집에 앉아서 마당을 내려다 보면 내 시야에는 질펀하게 깔린 쇄석이 들어온다. 그 쇄석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잡초에는 아침이면 이슬 방울이 영롱하게 맺힌다. 그래서 나는 사진기를 가만히 가져다 대고 행여나 이슬이 구를세라 조심조심 접사를 한다.

그 건너에는 '용암정' 정자가 버티고 있고 옆에는 까만 쪽문이 자리잡고 있다. 사촌 아우집으로 통하는 쪽문이다. 처음에 우리집에는 담이 없었다. 사촌 아우가 하는 말, "참 이상하다. 어째서 담이 없을까?" 아우에게 하는 내 대답. "요새는 담 없는 집이 꽤 많다네. 답답한 마음이 확 트이지 않은가?"

내 아내도 담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 달가워 하지 않았다. 누구나 함부로 드나드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시골이라는 곳이 누구나 무시로 출입하는 곳이 아닌가? 그래서 160여 미터가 넘는 집 둘레를 폭 70㎝ 높이 50㎝로 돌담을 쌓고 그 사이에는 밭흙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서는 11월에 순천에 사는 죽마고우에게 부탁을 해서 선암사 야생차 씨앗을 구해다가 참 부지런히도 심었다. 그랬더니 90% 이상이 싹이 터서 지금 3년째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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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지 세 해째 되는 돌담 야생차 ⓒ 김홍식

그런데 첫 해에 그 유명한 호남서해안 폭설로 서북풍에 시달리다 어린 야생차 나무가 그만 꽤 많이 얼어죽고 말았다. 산에 파종했던 묘목을 옮겨 심기는 했지만 이식한 묘목은 살아남는 것이 반도 채 안 되고 세력도 약해서 기대했던 생울타리가 되려면 부지하세월이다. 적어도 1미터 이상 자라 무성해져서 울타리 역할을 하려면 아직도 서너 해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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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8m 대나무 울타리. 옆 시루화분에는 접시꽃이 살짝 보인다. ⓒ 김홍식

그래서 어제는 마음먹고 대나무 울타리를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1시부터 시작한 작업이 7시에야 끝이 났는데도 겨우 8미터 정도 완성했을 뿐이다. 그래 놓고 보니 내가 만들고도 보기 좋아 흐뭇했다. 아흔을 넘기신 우리 아버지 말씀,

"애쓰고 나니, 보기 좋구나."

사실은 앞집에 사는 사촌 아우도 도와주고, 가로대로 쓸 긴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는 작업은 내가 두 번이나 실패를 하고서는 할 수 없이 아흔을 넘기신 아버지 손을 빌렸다. 긴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는 작업이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윗부분부터 쪼개기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을 나는 아래 밑둥부터 시작했으니 가다가 한 쪽이 얇아져서 못쓰게 되고 만 것이다.

'역시 일에는 경험이라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구나.'

얇아지는 쪽의 대를 두껍게 살을 붙이려면 아래쪽으로 해서 누르면서 쪼개 가면 아래쪽 부분이 더 두껍게 살이 붙는다고 슬쩍 귀띔해 주신다. 그렇게 비지땀을 흘려가며 무려 5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운치도 찬란한(?) 대나무 울타리를 만들었다.

안쪽에 자라고 있는 야생차와 바깥에는 얕으막한 돌담이 어우러져 묘한 멋을 풍긴다. 그러고 나니 또 욕심이 생겨 이제는 나머지 150여 미터도 마저 만들어야겠으니 이제 나는 고생문이 훤히 열린 셈이다.

대나무를 또 베고, 자르고, 각목을 자르고 대패를 하고, 드릴로 구멍을 뚫고 못을 박고 그러다 완전히 농투성이가 되어 새까맣게 그을은 얼굴을 색시에게 내밀면, 내 색시는 뭐라고 할까?

"……."

재료는 또 얼마나 들까? 8미터 대나무울타리에 들어간 재료(90㎝ 크기 대나무 - 199개, 4m 길이 대나무 - 4쪽, 낙엽송 각목 4m 길이 - 2개, 90㎝ 각목 3개, 묶음 프라트틱 34개, 구리전선줄 400㎝, 쇠말뚝 2개, 나사못 2개, 못 9개, 시멘트 못 3개)가 그러니 160미터를 다하려면 90㎝ 대나무만 해도 줄잡아 무려 4000개. 그러나 어쩔 것인가? 재미있고, 만들고 나면 흐뭇한 것을.

싸목싸목 만들어 봐야지. 대나무 울타리로 온 집이 다 둘러싸이면 얼마나 장관이고 내 마음은 뿌듯할까? 이런 시골생활의 즐거움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잖는가!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모자라지. 암 모자라고 말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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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대나무 울타리. 울타리 밑에는 야생차가 자라고 있다. ⓒ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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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에서 본 대나무 울타리. 황토집과 감나무와 돌담과 길이 어우러져 있다. ⓒ 김홍식

#야생차 #대나무 #울타리 #황토집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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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와 시와 문학과 야생화 사진에 관심이 많아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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