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노조 가입하면 차별 안한다고?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노동부의 황당한 비정규직 차별기준

등록 2007.06.04 19:00수정 2007.06.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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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평화롭기는 하겠지만, 재미는 없을 것 같다(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답답하고 재미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상식이 뒤집어지는 사회는? 글쎄, 어떨까?

'정규직 노조에 가입하면 비정규직도 똑같은 대우'

7월부터 시행되는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와 관련한 오늘(6월 4일) <중앙일보> 기사 제목 중 하나다.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똑같이 대우받을 수 있다니…, 제목이 너무 '섹시'하다. 물론 조건은 붙었다. 정규직 노조에 가입해야 한다.

이제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조'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에게 '문호'만 열면, 비정규직 차별은 이제 '안녕'이다. 정규직 노조 만세!다.

a 7월부터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가 시행되지만 비정규직의 앞날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사진은 지난 2005년 6월 청주하이닉스-매그나칩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청와대앞 기습시위.

7월부터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가 시행되지만 비정규직의 앞날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사진은 지난 2005년 6월 청주하이닉스-매그나칩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청와대앞 기습시위.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겨레>가 제목 잘못 뽑았다

사실 오늘 <한겨레> 기사를 보면서 무척이나 헷갈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7월 실시를 앞두고 노동부가 발간한 '차별시정제도 안내서'를 다룬 동일한 소재의 기사 제목 때문이었다.

'비정규직 학자금·경조사비도 차별 못한다/노동부 '차별시정 안내서 발간'…다음 달부터 적용/단체협약 명시 안 된 격려금·특별성과급 등은 제외'


기사 제목만 읽어서는 학자금이나 경조사비는 비정규직에도 차별 없이 지급해야 하지만 격려금이나 특별성과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 정도로 이해되는 제목이었다. 그러나 기사 내용은 제목과 달랐다.

"노동부의 안내서를 보면 차별처우 금지 영역인 '임금과 그밖의 근로조건'에 대해선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조건인 임금과 근로시간, 연차 유급휴가, 산전·산후 휴가, 재해보상 등과 함께 상여금과 교통비, 가족수당, 자녀 학자금, 경조사비 등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근로 계약 등에 따른 근로조건 항목이 포함됐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기사 내용 바로 다음에는 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러나 단체협약에서 비정규직들이 적용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면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중앙일보> 제목이 정확하다. <한겨레>가 제목을 잘못 뽑았다.

무슨 말인가? 회사와 정규직 노조가 맺은 단체협약은 정규직들에게만 적용되지, 비정규직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 단체협약에 "비정규직에게도 차별 없이 적용하겠다"고 '명시'하고 있거나, 비정규직이 단체협약의 적용 대상이 되는 '노조원'으로 노조에 가입해 있다면 '적용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하나마나 한 말을 무슨 '안내'랍시고 하고 있는 노동부나, 그것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기자'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인지 당최 종잡을 수가 없다.

정규직이 싸워서 얻은 걸 거저 먹는다?

노동부 비정규대책팀 담당자에게 물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하자는 것이 차별시정제의 입법 취지일 텐데, 어떻게 이런 해석이 가능할까요?"

"그게 결국은 노동위원회에서 결정을 할 일이지만,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건지요?"

"'임금, 그밖의 근로조건'은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의한 '근로조건'이니, 단체협약에 비정규직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돼 있으면 적용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비정규입법도 하고, 차별시정제도도 도입한 것이잖아요. 노사 간에 체결한 단체협약은 근로기준법상 근로기준보다 우선(더 좋은 조건일 경우)해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갖는 것인 만큼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근로기준법상 임금과 근로조건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면 당연히 단체협약에 따른 정규직 근로조건과 차이를 두는 것도 '차별'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죠. 단체협약에 적용하지 않도록 돼 있다면…."

"아니, 비정규직이어서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또 지금 단체협약 적용대상도 아니어서 정규직과 '차이'가 있고 '차별'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걸 시정하자는 것이 비정규직입법이고, 차별 시정제도 아닌가요? 만약 노동부 해석대로라면 결국 차별의 주체인 회사와 차별의 기준이 되는 정규직 노조가 그 차별의 기준 적용 여부를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지 않나요? 차별하는 사람한테 차별하는지 안 하는지를 정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a 비정규직 철폐와 외주고용 철회를 주장하며 시위하고 있는 KTX 승무원들.

비정규직 철폐와 외주고용 철회를 주장하며 시위하고 있는 KTX 승무원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마침내 '진실한 답변'이 나왔다. 하지만 결코 나와서는 안 될 답변이….

"아니, 멤버십이란 게 있잖아요. 정규직들은 협상을 하고, 또 싸워서 얻은 것인데, 비정규직에게 그냥 적용할 수 있나요. 그렇게 되면 혼란이…."

한마디로 공짜로 거저먹겠다고 해서는 곤란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지요. 멤버십을 주지 않으니까, 아니, 처음부터 멤버십을 주지 않겠다면서 차별하고 있는 것이 '비정규' 아니예요. 누가 멤버십 갖고 싶지 않아서 '비정규' 합니까? 어떻게 노동부에서 이런 해석을 내놓을 수 있나요."

"최종 해석은 노동위원회에서 하겠지만, 우리 생각에는 차별 대상에서 예외로 할 수 있는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멀기만 한 비정규직 차별 해소의 길

어쨌든 그래도 길은 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들에게 문을 활짝 열면 된다. 아니면, 기존의 단체협약에 "이 단체 협약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적용토록 한다"는 문구를 하나 더 넣으면 된다.

그런데 오늘 <한겨레> 기사(정규직 노조 20%, 비정규직 가입 '차단막'-황보연 기자)를 보면 조금은 비관적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3~9월 900개 기업의 정규직 노조를 대상으로 조사한 노사관계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단체협약에서 비정규직을 노조 가입대상으로 명시한 곳은 '7.1%'뿐이었다. 다섯 곳 가운데 한 곳(20.4%)은 아예 비정규직이 가입할 수 없도록 대못을 박아 놓았다. 지난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든 154곳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정규직 노조가 있는 곳들이었다.
#백병규 #미디어워치 #비정규직 #차별 #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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