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나머지 반쪽에 숨은 삶의 원점

소노 아야코의 <세상의 그늘에서 행복을 보다>

등록 2007.06.04 18:30수정 2007.06.0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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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호텔 르완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TV에서 이 장면을 보고는 '오 저런, 저렇게 잔인할 수가…'라고 말한 뒤 다시 저녁식사를 할지도 모릅니다."

소노 아야코가 쓴 <세상의 그늘에서 행복을 보다>는 <호텔 르완다>와 비슷한 문제 의식을 안고 출발한다. 그래서 이 책의 첫머리엔 재정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였던 크로포트킨의 말이 새겨져 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진흙 같은 빵 한 조각 때문에 투쟁할 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에는 원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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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하는 책 <세상의 그늘에서 행복을 보다> ⓒ 리수

소노 아야코는 아쿠타가와상의 후보에 올랐던 작가이자, 수십년간 전세계를 돌아다닌 NGO 활동가이다. <세상의 그늘에서 행복을 보다>는 그가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오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정리한 책이다.

사람들은 앞을 보고 나아간다. 누구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정신없이 내달리면 삶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행복은 무지개처럼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어차피 마음먹기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발버둥치며, 세상 사람들과 경쟁하는 사이 눈 앞의 성공은 이미 성공이 아닌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는 무지개는 언제나 반쪽이다.

소노 아야코는 '원점'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목적지만큼이나, 혹은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가 떠나온 출발지라고. 그것은 단순히 욕망에 의해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비유는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이십년 전 소노 아야코는 시나이 반도 사막에서 인상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한밤중에 깨어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 100보 정도를 걸었다가 그만 침낭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녀는 동물적인 공포를 느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아무런 목표물도 없는 황야나 사막에서는 두 개의 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는 출발 지점에 두기 위해, 또 하나는 지금 있는 곳의 발밑을 비추기 위해.

모든 것에는 원점이 있게 마련이다. 식물에 뿌리와 줄기가 있고 그 생리에 따라 활동하기 때문에 잎사귀 끝에 아름다운 꽃이 핀다. 출발 지점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인간은 더 깊어진다. 그런데 소노 아야코의 이 생각은 개인뿐 아니라 문명에까지 뻗어나간다.

"동물에게는 현재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을 과정 속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이전에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가. 이러한 것들은 그리 오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들은 현재 생활 속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나라들을 지구상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당연한 것들은 과연 당연한가

요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 살며, 먹을 것은 언제든지 편의점에서 팔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도쿄대학 이과계의 한 교수가 실험을 하는 제자에게 "만일 실험 도중에 정전이 되면 어떡하지?"라고 묻자 "교수님, 고리타분한 생각 마세요. 요즘 세상에 정전 같은 게 있을 리 없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아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다.

전기가 끊기고 문명 이전의 상태와도 같은 암흑을 직접 체험해야만 문명의 고마움을 깨닫게 될 만큼 인간은 무지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평소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듯이.

소노 아야코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오지의 한계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히 생각하는 문명의 혜택들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마치 다층적인 시간 구조를 가진 영화나 소설을 보듯이, 우리가 같은 시간대에 다른 공간에선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는 것이다.

주사기가 모자라 1회용 주사를 끓인 뒤 다시 재활용하거나, 달도 없는 캄캄한 어둠 속을 걸어 집에 돌아가야 할 아이들의 눈을 위해 아주 조그마한 조명 하나만 켜놓은 어두운 교실. 우리의 상상력을 벗어나는 오지인들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오지인들에게는 아이가 아픈 것이 감기 때문인지 결핵 때문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결국 치료를 못 받고 죽게 될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소노 아야코는 빈곤, 기아, 질병을 이겨낸 오지인들의 인생철학을 통해 우리에게 행복의 원점과 인생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찾는 행복은 머나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순간, 혹은 지나온 과거 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그늘에서 행복을 보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리수, 2006


#세상의 그늘에서 행복을 보다 #소노 아야코 #오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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