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시우씨.사진작가 이시우 석방대책위
사진작가 이시우의 '구속'은 놀랍기 그지없다. 이시우의 단식이 열흘 이상을 넘겨서야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인터넷으로만 국내 소식을 접하고 있던 내가 꼼꼼히 챙겨보지 못한 탓도 있을 터이다. 이제 30일을 넘긴 그의 단식 앞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국가보안법이 역량 있는 작가의 명줄을 당기고 있구나 싶어서 더욱 그렇다.
그와 나의 인연은 방송에서 시작됐다. <기독교방송>의 '시사자키'를 진행하고 있을 때 그는 고정출연자였다. 사진을 찍는다고 숱하게 돌아다니며 얻은 '사실'을 말로 전하는 것이 그의 시간이었다.
사진 속에 담긴 장면 하나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모습일지 몰라도 작가인 그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사연과 이야기를 가진 현실이었던 셈이다.
그의 이야기는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가 적지 않아서 생방송 중에도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알게 된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답은 언제나 이미 사실로 발표되거나 확인된 사항이라는 것이었다. 그 사연과 이야기의 진실이 어디에서 발표되고 확인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우리는 무심히 그 같은 발표와 확인을 지나쳤는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포착한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 역사와 사실을 일일이 확인한 것이다. 자신이 생산한 작품에 대한 해설이기도 한 셈이다.
근 1년여 동안 그와 방송을 진행하면서 그가 갖고 있는 상상력이 나는 궁금해졌다. 눈앞에 보이는 장면의 배경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배우고 싶었다. 그에게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상근자들에게 '상상력'을 주제로 이야기해 줄 기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현상만으로 사회 내부에 형성되어 있는 구조적 문제와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한 작가가 보여준 상상력은 한 사람의 운동가가 건조하게 보는 현상 뒤의 절절한 사람들 모습을 연상케해줬다. 또 그 현상을 규율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단서를 주었다. 상상력이란 운동가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일깨워준 것이다.
한 번의 이야기로 한 사람의 작가가 자기 삶을 걸고 해 온 여정 전체를 쉽게 알 수 없겠지만 우리는 그가 가지고 있는 평화에 대한 진정성을 절절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를 기억하는 내게 그의 구속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이 주는 교훈
미국에서 지내는 탓에 미국 이야기를 하나 해보련다. '웨스트 윙'이라는 미국 드라마에 보면 백악관에 초대받은 마술사들이 성조기를 가지고 마술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조기를 불에 태워 없애는 마술을 시연해 보인 것이다. 그것도 백악관에서 말이다.
당연히 문제를 삼은 정치적 반대파들이 백악관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백악관의 참모들은 그 마술사에게 사과를 요청할 뿐 아니라 성조기가 실제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것이 성조기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백악관의 참모가 마술사에게 오히려 면박을 당한다. 그 마술사는 마술의 비밀을 알려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성조기를 없애는 것조차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고 그것은 미국의 수정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사과할 생각도 없고 마술의 비밀을 알려 줄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그 마술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민통선을 찍은 것이 어찌 죄가 되는가? 그가 그 장면을 찍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 이 사진이 군사기밀 유출죄에 해당한단다.
이런 게 죄라면 그 이야기를 1년 동안 방송에서 전국에 알리고 진지하게 들은 진행자인 나도 '불고지죄'로 기소되어야 할 것이다. 대명천지에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단 말인가?
이시우는 석방돼야 한다. 작가가 가진 상상력과 통찰력을 법으로 재단하려는 사고가 우리를 옥죈다면 우리 사회에서 창의적 사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기검열 하도록 만드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우리 사회가 창의적 사고를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그가 자신의 생명을 단축하는 단식을 멈출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시우를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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