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광장에 펼쳐진 현수막에 참가자들이 낙서를 하고 있다양창모
"선배, 저 양성(애자)인거 알아요?"
아직도 생생해. 몇 달 전 내게 '커밍아웃'한 너의 목소리가. 짧은 정적이 흐른 후, 나는 연기를 해야 했어. 그러냐고, 대강 알고 있었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받았지만 사실 난 허둥대고 있었는걸. 서로를 알게 된 지 5년, 하지만 네가 '성(性)적 소수자'일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
놀라웠고, 당황스러웠고, 무엇보다 갑자기 네가 멀게 느껴졌단다. 너는 무엇인가 더 얘기하고 싶어 했지만 난 화제를 곧바로 다른 데로 돌렸어. 어떻게 들어줘야 할지,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던 거야.
마음 속 이야기를 같이 나눌 사람이 없어 보이는 너는 얼마 전부터 "퀴어 퍼레이드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 올해로 8회를 맞는 '퀴어 문화축제'의 상징적 행사인 퍼레이드에 참가해, 너와 같은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며 도심을 행진하고 싶어 했어.
그런데 말이야, 나도 그들을 만나고 싶었단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그들이 '퀴어(queer : '이상한, 비정상적인'이란 의미이지만 현재는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용어로 사용)'라는 이름을 소리 높게 외치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매우 드문 이 기회를 잡기 원했어. 영화에서만, 소설에서만 말고, 직접 만난 그네들의 육성을 듣는다면, 네 '커밍아웃'에 당황했던 내 맘도 갈피를 잡고 다시금 너와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퍼레이드가 열린 지난 2일(토), 안타깝게도 너는 참가하지 못했지. 대신 열기 가득했던 을지로 베를린 광장에 내가 있었단다. 이제부터 네가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그들에게, 또 나에게 이 퍼레이드는 어떤 의미였을까.
#1. 현성(가명, 31), 게이, 게이 커뮤니티 '이반시티' 회원,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