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해, '커밍아웃'한 너의 목소리가"

퀴어 퍼레이드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

등록 2007.06.06 20:28수정 2007.06.0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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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광장에 펼쳐진 현수막에 참가자들이 낙서를 하고 있다
베를린 광장에 펼쳐진 현수막에 참가자들이 낙서를 하고 있다양창모

"선배, 저 양성(애자)인거 알아요?"

아직도 생생해. 몇 달 전 내게 '커밍아웃'한 너의 목소리가. 짧은 정적이 흐른 후, 나는 연기를 해야 했어. 그러냐고, 대강 알고 있었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받았지만 사실 난 허둥대고 있었는걸. 서로를 알게 된 지 5년, 하지만 네가 '성(性)적 소수자'일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

놀라웠고, 당황스러웠고, 무엇보다 갑자기 네가 멀게 느껴졌단다. 너는 무엇인가 더 얘기하고 싶어 했지만 난 화제를 곧바로 다른 데로 돌렸어. 어떻게 들어줘야 할지,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던 거야.

마음 속 이야기를 같이 나눌 사람이 없어 보이는 너는 얼마 전부터 "퀴어 퍼레이드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 올해로 8회를 맞는 '퀴어 문화축제'의 상징적 행사인 퍼레이드에 참가해, 너와 같은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며 도심을 행진하고 싶어 했어.

그런데 말이야, 나도 그들을 만나고 싶었단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그들이 '퀴어(queer : '이상한, 비정상적인'이란 의미이지만 현재는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용어로 사용)'라는 이름을 소리 높게 외치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매우 드문 이 기회를 잡기 원했어. 영화에서만, 소설에서만 말고, 직접 만난 그네들의 육성을 듣는다면, 네 '커밍아웃'에 당황했던 내 맘도 갈피를 잡고 다시금 너와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퍼레이드가 열린 지난 2일(토), 안타깝게도 너는 참가하지 못했지. 대신 열기 가득했던 을지로 베를린 광장에 내가 있었단다. 이제부터 네가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그들에게, 또 나에게 이 퍼레이드는 어떤 의미였을까.

#1. 현성(가명, 31), 게이, 게이 커뮤니티 '이반시티' 회원, 직장인


퍼레이드에 참가한 홍석천씨
퍼레이드에 참가한 홍석천씨양창모
2002년 이태원에서 축제가 열렸을 때 참가한 후, 오랜만에 다시 찾았네요. 회사일 때문에 시간이 계속 맞지 않았거든요. 보통 게이바 같은 술집에서야 모이는 친구들을, 이렇게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 기뻐요.

언제부터 게이였냐고요? 풋, 태어날 때부터 게이였는걸요. 초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던 이들이 모두 남자들이었어요. 물론 많이 혼란스러웠죠. 동성을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잘못 태어났다'고 비관도 종종 했습니다.


군 제대 후인 2000년부터 저의 성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기 시작했어요. 복학한 학교의 이반 동아리에 들어가 첫 모임을 가졌을 때의 그 편안함이란.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고민이 아니었구나…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지배하던 두려움이 사라졌죠.

몇몇 언론이 우리들을 '화장실에서 섹스를 즐기는 퇴폐적인 이들'이란 식으로 보도하는데, 사실 그런 식의 보도 자체가 퇴폐적이고 선정적입니다. '동성애'하면 왜 꼭 섹스가 연상되어야 하죠?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섹스를 전제하고 만나지 않아요. 전 그저 남자가 좋고, 남자와 사귀고 싶을 뿐. 무엇보다 이런 제 자신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걸요.

그러나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감은 존재합니다. 저 같은 직장인이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죠. 동료나 직장 상사가 '애인은 있느냐'고 물을 때, 부모님께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말씀하실 때… 항상 숨기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쓸쓸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인데, 한 개인의 구체적인 행복을 막는 사회적인 벽이 너무 크네요. 우리들은 너무 많은 관심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만을 바랄 뿐.

#2. 박은우(애칭, 26), 레즈비언, 한국 레즈비언 상담소 활동, 대학생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대형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대형 레인보우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양창모
전 '아웃팅(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는 일)' 경험이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성친구와 교제를 했었는데 그 사실이 알려진 거죠. 당시 또래 학생들은 '화장실에서 둘이 껴안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리며 우리를 조롱했습니다.

곧 부모님도 아시게 됐는데, 기독교 신자이신 부모님께선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고쳐져야 할 병'으로 인식하셨나 봐요. '병을 고치기 위해' 대학교 2학년 때 강제로 1년 동안 해외선교를 보내셨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레즈비언입니다. 이것은 '고쳐야 할' 질병의 종류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인 '아웃팅' 경험으로 인해 자연스레 레즈비언의 인권에 관심을 가졌고 2005년부터 한국 레즈비언 상담소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제가 맡고 있는 일 중엔 상담업무도 있는데, 딸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한 어머니의 전화가 기억에 남아요.

'내 딸이 레즈비언인데, 이성애자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호소하신 그 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흡사 제 어머니를 상담하는 기분이어서… 조금 슬펐네요. 물론 그 분의 심정도 이해 못하진 않지만, 딸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이성애자로 살아간다면, 행복할까요?

'레즈비언이면 조용히 숨어 지내지, 왜 거리에 나와서 불쾌하게 하냐'며 역정 내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을, 레즈비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인 우리들이 묵묵히 감내하면서 살아야 하냐고요.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녀가 받을 모욕과 멸시, 차가운 시선들을.

#3. 윤정진(가명, 26), 트랜스젠더, 성전환자 인권연대 '지렁이' 회원, 대학생

한 트랜스젠더가 들고 있던 팻말
한 트랜스젠더가 들고 있던 팻말양창모
중학교 때 동성친구를 좋아했었는데, 당시는 '내가 뭔가 다르다'고만 생각했죠. 그러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자연스럽게 남자속옷을 입었고요. 생리를 할 때도 제가 겪는 느낌은 일반적인 여성들과 달라요. '내 몸이 아니다'라는 인식에서 오는 고통이 있거든요.

2003년 자원봉사자로 퀴어 문화축제에 참가한 당시만 해도 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많은 이들과 알게 되면서 제가 남성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이 축제는 '누군가가 죽지 않는 한' 꼭 참가하는, 제게 무척 소중한 행사일 수밖에요.

아직 학교도 다니고 있고 집에서 독립하지 않은 상태라 성전환수술은 미루고 있는 상태에요.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는 싫으니, 독립한 후 외국에 나가 수술을 받고 그 후로도 외국에서 생활할 작정입니다. 저와 같은 트랜스젠더들은 한국에서 정상적 생활을 꾸리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요.

F to M(여자에서 남자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은 회사에서 부당해고 되기 일쑤고 M to F(남자에서 여자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는 유흥업소밖에 받아주지 않습니다. 빈곤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들을 받아주지 않는 사회가 결국 우리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셈이지요.

짐작하시겠지만 트랜스젠더들은 상당히 다양한 유형이 존재합니다. F to M이라서 꼭 여성을 좋아한다는 법도 없죠, 저 자신도 양성애자니까요. 기본적으로 성전환 수술과 상관없이, 다른 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두 트랜스젠더로 묶이고요. 하리수씨의 경우만 보고 모든 트랜스젠더들이 다 그녀 같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단체 이름이 '지렁이'거든요? 사람들은 우리들을 보고 지렁이를 발견한 듯 징그럽게 쳐다보죠. 그러나 사실 지렁이가 있기에 토양은 정화되며 식물은 성장할 수 있는걸요. 그러니 우리 성소수자들을 부디 인정해 주기 바라요. 구경만 하지 말고, 같이 거리로 뛰어나와 놀자고요. 어우러져서, 함께요.

"프리 게이 허그"... 퀴어 문화축제 10일까지 열려

한 게이가 '프리 게이 허그'를 하고 있다
한 게이가 '프리 게이 허그'를 하고 있다양창모
오후 4시, 그들은 행진을 시작했어. 대형 레인보우 깃발을 따라 청계 삼일교부터 청계 광장까지 왕복하여 걷는 수많은 '퀴어'들은 즐거워보였단다. 색색의 풍선들로 장식된 트럭 위에는 현란하게 치장한 게이와 레즈비언, 트렌스젠더와 양성애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췄지. 내게 유독 인상적이었던 이는, '프리 게이 허그'라는 팻말을 들고 걷고 있는 한 게이였어.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던 한 커플이 그에게 다가왔어. 남자가 먼저, 그리고 그 후에 여자가 그 게이와 웃으며 포옹을 했지.

행진을 마친 그들은 뿌듯해보였어. 수많은 자신들과 어울렸기에, 또한 "축하한다, 보기 좋다"며 그들을 응원한 많은 시민들을 만났기에. 그러니 그들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가 된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겠어. 그 자리에서 비로소 나도, 너와 소통할 방법을 찾았는걸.

퍼레이드에 참가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너, 퀴어 문화축제는 10일(일)까지 열린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제도 열리고, 종로와 홍대 앞에서 여러 전시회와 공연도 있대. 그 자리에서, 너랑 같이 놀아보고 싶어. 어느 영화제목처럼, 'happy together' 할 수 있기 바라니까. 이것은 너를 위한, 또 나를 위한, 그래서 결국 우리를 위한 자리이니까.

덧붙이는 글 | '아웃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취재에 응해주신 퍼레이드 참가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미디어 다음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아웃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취재에 응해주신 퍼레이드 참가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미디어 다음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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