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줌마처럼 아이를 대하세요"

[나만의 자녀 교육법⑤] 솔빛엄마 이남수씨의 '홈스쿨링' 이야기

등록 2007.06.10 10:11수정 2007.06.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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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 해마다 오르는 대학 등록금, 특목고 입학 열기와 대학 입시안의 잦은 개편 등 교육 문제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하시죠? 따라가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데, 이렇게 따라가기엔 금전이나 시간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문제는 사교육이나 각종 특수목적교육에 비용을 들인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녀에 어울리는 교육방법을 찾아 나선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과 함께 '자녀교육이란 무엇일까'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편집자주>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한다고 하면 공교육에 적응을 하지 못한 낙오자나 별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대안교육은 적응·부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교육방식을 택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지요."

자녀교육에 관심 있는 엄마라면 '솔빛엄마 이남수' 혹은 '솔빛엄마'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1년 자녀를 위한 영어교육지침서 <엄마, 영어방송이 들려요>를 펴낸 이남수(44)씨는 외국어교육의 기회가 흔치 않은 울산지역에 살면서 해외연수나 유학, 사교육 한번 없이 딸아이인 솔빛이를 영어에 능통한 아이로 키워냈다. 엄마들이 주로 들어가는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2001년 이전 이미 입소문이 자자했다.

특별한 무엇이 있겠지... 무엇이?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남수씨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남수씨김혜원
지난 5월 25일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솔빛엄마 이남수씨를 만났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급팽창하는 상황에서 뾰족한 대안이 없을까 고민하며 검색을 하던 끝에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그녀는 자녀의 영어교육에서만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게 아니었다. 사교육은 물론 공교육조차 받지 않고 오직 홈스쿨링으로 딸아이(솔빛이 88년생)를 키워 대학에 입학시킬 정도로 대안교육 분야에서도 알려진 엄마였다.

얼마나 대단한 엄마이기에 그 어렵다는 대안교육에 성공했을까. 얼마나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였으면 학교를 나와 혼자 공부해 대학에 진학했을까. 굉장히 똑똑하고 많이 배운 엄마거나 굉장히 유별나고 특이한 아이겠지….


이남수씨를 만나기 전 많은 상상을 했다. 남다른 선택을 한 모녀이기에 분명 남다른 그 무엇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첫 마디부터 여지없이 무너졌다.

"솔빛이가 특별한 아이는 아니었어요. 그리 활달한 성격도 아니었구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소집단생활은 별문제가 없지만 대집단 교육은 좀 힘들어 했어요.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성적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아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받는 비인격적인 대우, 솔빛이는 그게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교실에서 한 학생이 공부를 못하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무시당하고 야단을 맞고 그러는 것을 보고 항의를 했던 모양이에요. 그런 문제로 자주 교무실로 불려가고…. 그러다보니 점점 학교가 싫어지게 된 거죠.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했죠."

비록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내 아이도 한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가출을 한 경험이 있다.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큰 아들이 고2때 일이다.

음악에 뜻을 두고 있던 아이는 입시에 맞춘 공부를 해야 하는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엄마와는 단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자퇴서를 내고 사라져버렸다. 학교로 길로 아이를 찾아다니면서 막막한 심정에 많이도 울었다. 나는 그렇게 놀랐는데 솔빛 엄마 이남수씨는 오히려 담담했다고 말한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해주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다면 그에 맞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거든요. 아이와 함께 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요.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둔 때문인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어요."

사교육에 수백만원을 쏟아부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을 벗어나려 하는 아이를 강제로라도 붙잡아 자랑스러운 고교졸업장을 안겨준 것을 지극한 모성이라 자부해왔던 나로서는 그녀의 결정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결정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한다.

한 때 참교육학부모회 울산지부에서 활동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공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일찍 눈뜰 수 있었으며 그러다보니 공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인 대안교육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교육만큼만 대안교육에 투자해 보세요"

어떤 교육이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과의 신뢰라고 말하는 이남수씨
어떤 교육이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과의 신뢰라고 말하는 이남수씨김혜원
내 아이가 자퇴서를 내고 방황하던 당시, 나 역시 대안교육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나에게 대안교육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공교육을 떠나서도 제대로 된 교육이 될 수 있을까? 혹시 엄마가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건 아닐까? 아무리 학교가 학원화되었다지만 학교에서 배워야 할 사회성 교육은 또 어떻게 하나? 친구 하나 없는 아이가 되면 어쩌나? 사회부적응아가 되는 건 아닐까?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둔 엄마라면 한두 번쯤 생각해 보았을 대안교육이지만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는 것은 이런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남수씨는 이런 부모들의 두려움을 불신과 무지에서 오는 잘못된 두려움이라고 했다.

"사교육에 투자하는 시간과 정성, 그리고 돈을 생각해보세요. 사교육에 열심인 엄마들이 정보에 투자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많아요. 저는 사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만큼만 대안교육을 위해 투자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대안교육이 두려운 것은 그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부터 대안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렇지 살펴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안교육을 하고 있고 그 과정을 통해 행복하고 성공적인 교육의 결실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아이를, 그것도 이제 중학생인 아이를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일이 챙겨주고 참견해도 모자란 아이를 집에서 홀로 공부하게 한다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엄마가 모든 것을 챙겨주는 버릇을 들인 아이라면 홈스쿨링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엄마가 아이의 24시간을 관리하고 챙겨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솔직히 저나 남편도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아이의 학습에는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었구요. 아이 스스로 하루를 설계하고 진행하도록 지켜보아주는 것이 전부였어요. 그런 결과 홈스쿨링 1년 만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 할 수 있었구요. 이후에는 여유를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생활도 해가면서 대학을 준비할 수 있었지요.

사실 불안하기도 하지요.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시행착오라면 어쩌나 두렵기도 하구요. 하지만 아이에 대한 신뢰로 이겨냈습니다. 부모님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어린시절부터 신뢰감을 저축해서 사춘기 때 찾아 쓰라는 말이지요. 어린시절부터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도 하면서 신뢰를 구축해 놓는다면 아이를 믿지 못하는 일이 없고 도중에 아이가 지친다거나 나태해 지는 때가 오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줄 수 있게 되거든요."

전업주부가 아이교육에 올인 하는 까닭은

공부도 공부지만 솔빛 엄마는 자신의 일에 바빠 아이를 일일이 챙겨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홈스쿨링을 결정하기 전 영어 교육서인 <엄마, 영어방송이 들려요>를 냈고 책 때문에 문화센터 등에서 강연청탁이 적지 않았기 때문. 강의를 다니느라 오히려 집안 살림을 솔빛이에게 맡겨야 했을 정도란다.

영어교육서를 냈다면 영어를 잘하는 줄 알지만 실제로 이남수씨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아이가 영어공부에 관심을 보이자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을 뿐 함께 공부를 하지 않은 때문이란다.

"엄마가 아이교육에 올인 하는 것은 아이와 엄마에게 모두 불행한 일이죠. 엄마도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야 해요. 사교육에 올인 하는 엄마들을 보면 전업주부인 경우가 많거든요. 아이를 자신과 동일시해서 아이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착각하고 그러다보면 사교육이든 치마 바람이든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그런 위험한 엄마가 되는 거죠.

엄마들이 조금만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 좋겠어요. 아이만 해바라기하지 말고 밖에 나가 좋은 강의도 듣고 취미생활도 하고 봉사활동도 한다면 성적이, 좋은 대학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구요. 아이와의 집착관계에서도 조금씩 벗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성공적인 홈스쿨링을 끝내고 지금은 서울의 한 예술대학에서 영상예술을 전공하고 있는 솔빛이는 누가 보아도 홈스쿨링에 잘 적응한 성공한 사례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성공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도 스스로 계획을 지키지 못해 나태해지거나 중도에 목적의식을 잃어버리고 부모와 관계가 악화되어 오히려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 몇몇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이남수씨는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 중간에 잘못 되는 경우는 부모가 너무 조급하게 아이에게 결과를 요구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솔빛이도 '백수'였던 때가 있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놀기만 하는 거죠. 하루 종일 방에서 뒹굴거리고 텔레비전·인터넷 할 일 없이 돌아다니기 등등. 보고 있자면 불안하기도 하고 속에서 욱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려 주었어요. 관심과 무관심을 적당히. 마치 연애를 하는 애인들처럼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밀고 당겨주는 지혜가 필요하답니다.

홈스쿨링 과정을 통해 저나 솔빛이가 모두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지나간 일이라 좋은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때때로 매일 두렵기도 했고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어요. 공교육이나 대안학교를 다녔다면 그런 어려움이 없었을까요? 어려움은 어디든 있게 마련이거든요. 홈스쿨링이라 특별히 더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구요. 어려움은 있지만 적어도 아이에게 행복한 교육방식이라면 그걸로 됐다라고 생각했답니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저축하라!

이남수씨가 쓴 <솔빛이네 엄마표 영어연수>.
이남수씨가 쓴 <솔빛이네 엄마표 영어연수>.길벗이지톡
솔빛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아이의 고통과 아픔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사교육에만 돈을 쏟아 붓고 또 다른 교육의 형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나의 과거가 후회스럽다.

조기 영어교육이나 학원교육, 학습지와 성적표에 매달리는 대신 아이와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좀 더 많은 이해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지금처럼 서로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모자관계는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힘들어했던 사춘기 시절도 지혜롭게 넘기게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남수씨는 신뢰감을 회복하기에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지나치게 자녀의 일상에 개입하면서 자녀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신뢰감 회복을 위해 제일 먼저 '일단 멈춤' 전략을 써보라고 조언한다. 관심은 가지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아이에게 가는 관심을 '일단 멈춤' 하는 것입니다. 그냥 옆집 아줌마처럼 아이를 보는 것이지요. 옆집 아줌마가 남의 집 아이에게 혼내거나 간섭하나요? 그냥 '너 멋지다, 잘될 거야, 피곤하겠구나' 좋은 말만 해주잖아요. 엄마도 옆집 아줌마처럼 그렇게 내 아이를 멀찌감치 바라보는 연습과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얼마간 놓아두면 아이가 변화하는 모습이 보일 거예요. 그럴 때 충분히 칭찬해주고….

조금 늦으면 어때요? 조급함이 아이를 망치거든요. 우리 엄마들은 지나치게 조급한 게 문제인데 아이를 위해 그 정도 인내는 필수랍니다. 사교육을 위해 힘든 부업도 마다않는 엄마들인데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지켜보아주는 일은 그에 비하면 쉬운 일이 아닌가요?"


이남수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신뢰감'이라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공교육이 되었건 대안교육이 되었건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강한 신뢰감만 있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든 지혜롭게 해쳐나갈 방법을 마련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자녀와의 관계에서 깊은 신뢰감을 저축해라"는 그녀의 말이 가슴 깊이 남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대안학교 #홈스쿨링 #사교육 #이남수 #솔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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