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논의 '원천봉쇄'시켜온 언론들

'편가르기?'... '포퓰리즘?'...'언론탄압?'...

등록 2007.06.06 16:09수정 2007.06.0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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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언론과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가장 일관되게 유지해 온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최근 발표된 기자실 통폐합 결정은 이러한 긴장관계를 제도화, 일상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동안 주류 언론은 노무현 정부에 대하여 '편 가르기'를 일삼고 '포퓰리즘'에 호소하며 '언론탄압'을 자행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이런 담론은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편 가르기'를 한다는 주장은 우선 편 가르기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견해가 갈리는 경우, 상대방의 견해가 부정확하거나 부당하다는 지적을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러한 비판과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상충하는 가치들 간에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할까? 상대방에 대한 비난은 그 비난의 근거가 합당한지에 따라서 바람직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편 가르기'에 골몰한다는 언론의 주장은 변별과 비판 행위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제시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어느 쪽 주장이 합당한 근거가 있는지 여부를 아예 따져보지 않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를 주장하며 이에 반대하는 진영에 대한 비난을 정부가 제기하면, 언론은 이것을 두고 보수와 진보의 편 가르기를 한다고 묘사한다. 어느 쪽 입장이 합당한지에 대한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합당한 근거와 정확한 정보에 입각한 판단능력을 기르도록 권장하는 대신, 비판 행위 자체를 '편 가르기'로 규정함으로써 변별과 판단 그 자체를 포기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정부가 '편 가르기'한다는 언론의 주장은...

인간의 사고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변별행위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사안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편 가르기'라는 용어로 묘사하는 언론의 행태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제기했을 때, 그 주장이 부정확하다거나, 합당한 근거가 없다면, 그 점을 지적하면 그 주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방법조차 없을 때에는 상대방이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함으로써 논의 자체를 일단 봉쇄하려 시도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정부가 '편 가르기'를 한다는 언론의 주장은 정부의 입장이나 행위에 대한 비판이나 묘사라기보다는, 정부 입장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제기할 능력이 없다는 고백에 불과하다.

'포퓰리즘'이라는 용어가 주류언론에 등장한지는 꽤 되었다. 정부나 그 정부의 정책이 높은 지지율을 누리는 경우, 지지의견의 양(quantity)과 질(quality)을 나누고, 지지의견의 질을 문제 삼을 때 이용되는 개념이 포퓰리즘인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지지율 자체가 매우 낮은 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포퓰리즘'에 호소한다는 공격에서는 일단 자유로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정책의 지지율이 높을 수는 있고, 이때에는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정책인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지의견의 질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근거와 정확한 정보가 우선 제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 안정정책은 소수 자산가들의 극렬한 반대와 다수의 찬성이 예상되는 정책인데, 이러한 정책이 과연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것인지를 평가하는데 필요한 분명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는 한, 그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한편, 설득력 있는 가치들에 근거하여 낮은 대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추진하는 정책에 대하여는 "소신 있다"는 평가와 "오기정치"라는 평가가 맞설 여지가 있다. 어느 경우이든 간에 언론의 역할은 정확한 정보를 평심한 어조로 제시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이러한 주관적 판단을 내리는데 조력하는 것으로 그쳤으면 한다. 어떤 정책에 대한 지지의견의 질을 평가하는데 유용한 뚜렷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자의 주관적 결론만을 아예 기사 제목으로 뽑아내는 행태는 언론의 신뢰성 자체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정부는 언론탄압을 자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기자실 통폐합은 주요 언론사에 고용된 기자들의 이해관계가 우선적으로 걸려있는 사안임은 분명하다. 뉴스도 일종의 제품(product)이라고 파악한다면, 뉴스 소스(취재원)와 뉴스 가공자(기자)의 관계가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돈독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냉랭한 사무적인 관계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관한 문제이다. 기자실 입주가 허용되었던 주요 언론사 기자들은 뉴스 소스와의 밀접한 대면 관계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왔었다.

뉴스 가공자로서는 뉴스 소스(원자재) 획득이 비교적 용이한 측면이 있었고, 소스 공급자(취재원) 역시도 뉴스 가공자와의 친밀한 "인간관계"에 기대어 뉴스가공 과정에 어느 정도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있었다. 좋게 보면 주요 언론사 기자들과의 협력관계이고, 나쁘게 보면 주요 언론사 기자들만이 누리던 유착관계라고 평할 여지도 없지 않다.

이 관계가 변화한다고 해서 과연 언론의 자유 그 자체가 제약될지, 더욱 활발하고 적나라한 보도가 더 다양한 언론사들에 의하여 이루어질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주요 언론사들이 연일 '언론탄압'이라는 주장을 일제히 1면에 거침없이 실을 수 있는 나라의 정부는 언론탄압을 자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언론이 거듭 제기하였던 '편 가르기', '포퓰리즘', '언론탄압'에 관한 주장은 그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합리적 근거가 있는지를 아예 묻지 않고 비판과 변별 그 자체를 폄하하는 것이거나, 기자 스스로가 이미 가지고 있는 주관적 감정과 개인적 결론만을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거나, 극렬하게 주장하면 할수록 더욱더 자기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주장으로 보인다. 언론의 위기에 대한 원인을 멀리서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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