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항시 단촐한 짐이었다김종휘
집. 이 단어를 써놓고 한참 바라보다가 발음하는 순간 말놀이만 하고 말았다. 집. 물집. 살집. 몸집. 계집. 칼집. 시집. 도무지 집에 집중할 수 없거나 집에 집착할 줄 모르는 타고난 병이라도 있는 것처럼 집! 하고 혼잣말을 하고 난 뒤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집은 그저 눕는 잠자리고 눈비를 가리는 지붕이며 바람을 막는 벽이었다.
몸담았던 그 모든 집에서 나는 즐겁거나 괴로웠고 기쁘거나 슬펐다. 그곳에 추억과 상처가 있었고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하나 정착하고 뿌리를 내린다는 의미의 집이 나에겐 있지 않았다. 집이란 나만의 방을 만들고, 혹자는 집을 자신만의 우주라고도 했으나 그런 것은 더욱 아니고, 비밀을 쌓아두거나 내밀한 꿈을 꾸는 곳이 아니었다.
칼릴 지브란이 '그대의 집은 꿈꾸지 않는가?' 물었을 때, 그 집은 문을 닫고 지켜야 하는 폐쇄된 안락이 아니라 영적 깨달음을 얻는 열린 순례의 세계를 뜻했다. 나는 그런 의미의 집을 추구했던 것도 아니었다. 집은 그저 서로 다른 장소고 크기고 부피고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에 얽힌 풍문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집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임시 거처였다. 중간에 잠깐 내려서 쉬고 있는 정거장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천막집 유르트(yurt)나 몽골 사람의 이동집 게르(ger)처럼 떠도는 삶을 운명으로 체화한 것도 아니었다. 가능하면 안전하고 편리한 집에 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옮기고 또 옮겼을 뿐이었다.
집은, 내가 기억하는 모든 집은, 여기 있다가 저기 있고 지금은 이곳에 있으나 곧 딴 데로 가게 될, 그럼에도 늘 똑같은 짐을 부리는 조금씩 다른 세트장이었다. 살았던 집들에서 나는 장식물이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쓸모없거나 한번 쓰면 불필요해지는 것, 쉬이 망가지거나 손을 많이 타는 것은 있지 않았다. 집은 항시 단출한 짐이었다.
이번엔 어디로 가?
두 살씩 터울 지는 두 누나와 형은 집에서 태어났다. 그 후 어머니는 십년 가까이 임신을 하지 않다가 마흔 넘겨 아이를 뱄다. 남세스러웠던지 걱정 때문인지 더운 여름날 병원에 가서 막내를 낳았다. 병원은 나의 출생 기록을 보관하고 있겠으나, 사망 기록도 보관하게 될지 모르나, 그곳은 집이 아니다. 나는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집 하면 사람들은 가족부터 떠올리는데, 나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기억나는 유년기부터 어머니와 사별한 마지막 날들까지 집에는 늘 가족 아닌 식구들이 살았다. 나에게 집이란 가족보다는 그들과 같이 먹고 놀고 자는 합숙소 같은 곳이었다. 집은 그들과 함께 손수레에 짐을 싣고 이사를 다녔던 이 집 저 집 그 집 기타 등등이었다.
나는 현재까지 내 생애의 절반을 어머니의 하숙집에서 살았다. 그 하숙집은 9번 이사했다. 커튼으로 나눈 지하 쪽방, 판자로 지은 가건물, 개량 한옥, 일본식 집, 일반 양옥 등으로 2년에 한 번꼴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말년에 작은 집을 사서 8년을 살았다. 그 집 말고는 다 전세였다. 병에 걸리자 어머니는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겼고 그곳에서 숨졌다.
자주 이사했어도 어머니는 섬기던 교회 때문에 같은 동네를 맴돌았다. 전세금 올린다는 통보를 받으면 어머니는 바로 집 보러 다녔다. 무조건 큰 집만 골라 전세를 구한 어머니는 이사 전날까지 새로 얻은 집에 가서 큰 방을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나누는 칸막이 공사를 했다. 어머니는 못질은 시키지 않았지만 도배는 거들게 했다.
많을 땐 동시에 스무 명이 넘는 하숙생이 살았다. 때문에 이사 전후해 도배 일감은 많았고 겨울에는 방방마다 때맞춰 갈아야 할 연탄도 많았다. 새로 도배한 방들, 막 연탄 갈아준 방들, 그 방들 중에 내 방은 따로 없었지만 어느 방이든 들어가 하숙생들 사이에 껴서 자면 그만이었다. 나는 집에서도 방방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
그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거나 '나의 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큰 하숙집이었다. 주인이 따로 있는 남의 집이라 한 시절 살다가 떠나야 할 집이었다. 이번엔 어디로 가? 하고 물어보면 그뿐인 집이었다. 눌러 살 일 없었기 때문인지 살림 세간은 하숙생들이 저마다 양손에 한 짐씩 들고 옮기면 끝날만큼 간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