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라는 아이를 이리로 데리고 오라.”
왕의 말에 대신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젊은이가 치기어린 행동으로 함부로 구는 일인 즉 폐하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저희가 알아 조치하겠나이다.”
“이는 공주의 아비로서 하는 일이오. 더구나 고도는 좌평 고슬여의 아들이 아니오! 어찌 이를 두고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 하는 게요! 어서 고도를 이리로 데려 오시오.”
왕의 앞으로 불려간 고도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폐하께 직접 아뢰옵고 싶었는데 이렇게 자리가 마련되어 다행이라 여깁니다.”
고도의 당돌한 말에 왕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옆쪽에 있던 고슬여는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과도 같았다.
“내가 왜 너를 이리로 불렀는지 알기나 하는가?”
“공주께 한 무례한 행동을 나무라기 위함이 아닙니까? 전 어떤 벌을 받아도 상관없지만 공주님을 신라로 보내지는 마소서.”
“아니다. 너 역시 신라로 보내기 위함이다.”
“예?”
고도는 뜻밖의 말에 그 당당함이 싹 사라지고 당혹함을 금치 못했다.
“네가 이리도 집요하게 공주를 못 잊어하는데 여기두면 신라로 쫓아가 무슨 일을 할까 염려되기에 이러는 게다! 공주와의 혼인은 양국의 약속이니 이제와 물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잘 알지 않느냐. 네가 신라로 가 공주의 안위를 돌본다면 내 마음도 편할 것 같구나. 그리해 주겠느냐?”
큰 꾸지람을 듣고 치도곤이라도 치를 줄 알았던 고도는 이 뜻밖의 제의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고슬여가 재빨리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제 못난 아들에게 그러한 소임을 맡겨 주신 것에 감읍할 나름이옵니다.”
그만 하면 되었을 터일지도 모르지만 왕은 우물쭈물하고 있는 고도에게 굳이 재차 확인하였다.
“가겠느냐 아니 가겠느냐?”
왕고 고도의 사이에 짧지만 무겁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고슬여는 공주에 대한 연정으로 무모한 행동을 해온 아들의 입에서 아니 가겠다는 말이 나올까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어느 안전이라 명을 어기겠나이까. 가겠습니다. 그곳이 신라가 아닌 벼랑길 가시밭길일지라도 가겠나이다.”
어찌 들으면 비꼬는 것만 같은 고도의 말투였지만 왕은 애써 그것까지는 탓하지 않고 가볍게 받아 넘겼다.
“장하구나. 내 공주의 안위는 그대에게 맡길 터이니 틀림이 없도록 하라.”
왕은 그 말만을 남긴 채 신하들을 남겨둔 채 편전에서 나가버렸다. 이는 평소 왕이 잘 하지 않는 행동인지라 신하들, 특히 여섯 명의 좌평들은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내신좌평! 굳이 폐하의 심기를 이리 어지럽힐 것 까지는 없었지 않소! 이래서야 어디 당분간 폐하에게 말이나 붙이겠소?”
여섯 좌평들의 의중이 모아지면 국왕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명분이 서고 대화가 가능할 때의 일이었다. 왕과 좌평이 서로 감정이 상해서 등을 진다면 아무 것도 진행되지 않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이었다.
“아들의 일은 알아서 단속했어야 하는 것 아니오?”
둘 부자(父子)가 노골적으로 성토당하니 고슬여로서는 자존심이 상해도 보통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고슬여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 너머로 화를 삭이고만 있었는데 아들은 아버지 같이 이를 마음속으로 삭히고만 있지 않았다.
“그만들 하시오! 지금 정말로 속이 타고 열불이 나는 건 나지 여기서 힘겨루기만 하는 그대들이 아니지 않소!”
“뭐… 뭐라! 허!”
“저런 저런!”
좌평들이 혀를 차고 있었지만 고도는 전혀 이에 상관하지 않았다.
“내 맹세컨대 페하의 뜻에 따라 공주의 신상에 누가 될 일은 막을 것이며 내가 하지도 않을 것이외다. 하지만 이 일을 결코 잊지는 않을 것이외다. 이 자리에서 모두의 얼굴을 똑똑히 보아두겠소!”
고도는 좌평들을 노려보았다. 좌평들도 고도를 화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의 예의 없고 치기어린 행동을 노골적으로 탓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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