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허리굽힌 역사, 다시 살펴보니

[주장]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등록 2007.06.08 11:00수정 2007.06.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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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태원에서 기병한 당나라 고조 이연(566~635년)은 동돌궐의 시필가한(609~619년 재위)에게 신하를 자청했다. 중원이 이민족에게 칭신한 것이다.

중국 정사 중 하나인 <구당서> 권194 돌궐열전에 의하면, 이연은 대장군부 사마 유문정을 시필가한에게 보내 통교의 의사를 표시하였다. 동돌궐에게 신하를 자청함으로써 동돌궐을 후원자로 만들려는 계산이었다. 이에 따라 돌궐은 1000필의 말과 2000여 명의 기병을 이연에게 하사했다. 이연의 중원 정복을 후원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연뿐만 아니라 왕세충·유무주·양사도 등의 주요 정치세력도 시필가한에게 칭신하고 있었다. 중원의 주요 정치세력들이 서북쪽의 동돌궐에게 한결같이 신하를 자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중원에게 대단한 치욕이 되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당나라 고조는 치욕스러웠을까

물론 중원이 이민족에게 칭신을 한 사실이 중국인들에게 별로 기분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관계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쇼킹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중국을 포함하여 전통시대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신하가 되는 일이 특별히 이상하거나 혹은 그렇게 치욕적인 일이 아니었다.

당시 중원의 정치세력들이 동돌궐을 상국으로 대한 이유는 최강 수나라가 지도력을 상실함에 따라 그 순간에는 동돌궐이 가장 무서운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동아시아 사대관계의 키포인트가 있다.


이연·왕세충·유무주·양사도 등이 시필가한을 군주로 모신 것은 이연 등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 시점에서는 동돌궐이 가장 무서운 나라였기 때문에 신하를 자청한 것이다.

만약 동돌궐에 대한 칭신이 중원의 존재의의와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면, 이연과 이세민(당 태종)이 중원 인민들의 지지 속에 중국을 통일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과거 동아시아의 정치세력들은 자신보다 더 강한 정치세력을 군주 혹은 아버지나 숙부 또는 형님으로 모시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1815년 비인 회의 이후에 성립한 현대 국제질서에서는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국제무대에서는 똑같이 평등한 주체로 취급되고 있지만, 전통시대의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간의 국력 차이가 그대로 형식적 관계로 표현되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국력이 조금 강하면 둘 사이에는 형님-아우 관계가 성립했고, 국력 차이가 조금 더 나면 숙부-조카 관계가 성립했으며, 그보다 더 차이가 생기면 아버지-아들 관계 혹은 군주-신하 관계가 성립했다.

두 주체 간의 평등이란 관념을 전혀 몰랐던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국력의 차이가 그대로 국제관계에 반영되었던 것이다. 만약 두 나라 중 어느 한쪽도 상대방에게 굽히지 않는 경우에는 전쟁이 발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사대관계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독특한 문화였던 것이다.

서열적 인간관계는 동아시아 사회질서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인간관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안면을 트게 되면 서로 간의 서열을 세운다. 언니-동생, 형님-아우, 삼촌-조카, 부모-자식 등의 서열구조가 사람들 사이에서 금방 성립한다. 언니-동생이나 형님-아우를 하기가 좀 뭣한 사이에서는 선배-후배 관계가 성립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의제적 가족관계' 만들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 가족관계와 무관한 선배-후배 관계가 많이 성립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그보다는 이러한 현상을 '서열적 인간관계' 만들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으로 설명하는 편이 훨씬 더 타당할 것이다.

물론 최근 인터넷 문화로 인해 서열적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전통시대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서열적 인간관계가 중요한 특색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서열적 인간관계의 관념이 오랫동안 지배해 온 이유는 '예'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사회질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예는 인간관계에 차별과 서열을 만드는 핵심 기제였다.

과거 동아시아에서 이 같은 예의 구조는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법률이나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평등의 관념을 알지 못하던 전통시대 동아시아 사람들은 두 주체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든지 차별화·서열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질서가 이루어지는 줄로 알고 있었다.

과거 동아시아 나라들이 상호간에 군주-신하 혹은 아버지-아들 또는 형님-아우 등의 관계를 맺은 이유는 바로 그 같은 예적 질서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의 신하·아들·아우가 되어 그 나라의 책봉을 받는다고 해도, 이것은 그렇게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겠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국가의 존재의의 자체를 허물어뜨릴 만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서열구조가 아니면 국제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원의 지배자가 되려는 야망을 품었던 당 고조 이연과 그의 추종자들이 서북쪽의 동돌궐에게 칭신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돌궐족에 대한 칭신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자신들보다 강한 돌궐족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면 돌궐을 군주로 모시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돌궐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칭신은 대단히 치욕적인 일도 아니었고 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사대관계 확대해석하지 말자

그런데 현대 한국인들은 과거 한민족 왕조가 중국에 대해 사대한 사실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심지어 "우리는 본래 남에게 의지해 왔으니, 오늘날 우리가 강한 나라에 의존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까지 낳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사대관계를 확대해석하고 자신들을 비하하는 현상이 다분히 일제침략 이후에 생긴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그런 의식을 심어 준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한국인들의 의식구조를 식민지배에 맞도록 개조하기 위해서였다. 이 점은 종래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 논리를 통해서 충분히 소개되었으므로 더 이상 부언하지 않는다.

둘째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문화에 '덜' 친숙했던 일본인들로서는 사대관계를 확대해석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당연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과거에 일본은 한민족 왕조의 방해 때문에 중국과 관계를 맺기가 힘들었다. 일본이 오랫동안 후진 지역으로 남아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또 일본인들이 정상적인 무역을 하지 않고 해적무역(왜구무역)에 의존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동아시아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변방에 머물렀던 일본으로서는 동아시아 주류사회의 예적 질서에 그만큼 무딜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나라들끼리 군주-신하 혹은 아버지-아들의 관계를 맺는 것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일본제국주의가 한·중 간의 사대관계를 확대해석한 것은 한편으로는 의도적인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말로 잘 몰라서 그렇게 한 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현대 한국인들이 과거의 사대관계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다분히 일제침략 이후의 현상이다. 조상들은 별로 대단치 않게 생각하던 일을 후손들이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강한 나라에 의존했다고?

그런데 우리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수구세력 중 일부가 과거의 사대관계를 내세워 한국의 대미 의존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에 대한 한국의 의존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강한 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돌궐 시필가한과 당 고조 이연의 관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대관계라는 것은 동아시아의 특유한 외교 형식에 불과했다. 이는 평등을 잘 몰랐던 전통시대가 낳은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 한민족은 중국에 사대했으므로 오늘날의 한국이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은 역사를 왜곡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한국은 굳이 허리를 굽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한국이 미국 경제에 의존하는 만큼 미국도 한국 경제에 의존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똑같이 필요로 하는데, 한국만 미국에 허리를 굽힐 이유가 있을까. 허리를 굽히려면 미국도 굽혀야 할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한국의 은덕(이라크 파병)까지 입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이제는 미국 앞에서 허리를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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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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