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는 교육 위기에 책임 없을까?

교육이 상품이라는데 학부모는 왜 구경꾼인가?

등록 2007.06.08 20:05수정 2007.06.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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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선생님이 감수성이 예민한 여중생의 뺨을 때릴 수 있습니까?"

사건이 있은 지 이틀이 지났는데 선생님으로부터 뺨을 맞은 아이의 어머니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목소리다.

"수업시간에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친구에게 던진 건 잘못했지만 뺨을 때리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체벌을 했다는 교사에게 직접 말하기 곤란해 그 선생님과 친하다는 같은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그 선생님 절대 그런 분이 아닌데요!"

첫 마디 반응이 체벌을 한 선생님 변명부터 하고 나섰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제3자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얘기해 학부모와 담임 그리고 체벌을 한 선생님이 만나 좋은 방향으로 타협(?)을 볼 수 있었다.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 체벌을 금한다'는 초·중등교육법 때문일까? 학교는 아직도 체벌이 교육의 방편으로 남아 있고 '체벌인가 폭력인가?"라는 논란에 휩싸일 때가 많다. 선생님의 처지에서 보면 뺨을 때린 일은 지나쳤지만 '수업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체벌도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할 것이고 학부모들의 처지에서는 평생 손 한 번 대지 않고 키웠는데 교사의 손찌검으로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체벌이나 학교폭력 같은 문제는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지만 우리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고 있는가?', '현재의 학교교육이나 제도는 우리 아이가 성장하는데 과연 이상적인 정책인가?'와 같은 한 차원 높은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아니 '학교가 어련히 알아서 해 주겠는가?' 아니면 '교장선생님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겠느냐?'며 관대하기까지 하다.


대부분 학부모들은 아직도 '학교를 불신하면 사랑하는 자식을 어떻게 학교에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하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과연 그럴까? 학부모들의 이런 믿음이 학교위기를 불러 온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학부모에게 불신을 심어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교육부는 이미 오래전에 '교육은 상품'이요, '학부모와 학생은 수요자요, 학교와 교사는 공급자'라는 상업논리로 교육을 하고 있다. 7차교육과정이라는 정책이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게 이를 증명하고 있다. 2세 국민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관청의 이름조차 '교육부'가 아니라 '교육인적자원부'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은 내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을 통해 훌륭한 인재로 키워달라고 맡긴 학교교육이 양질의 교육을 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 본 일이 있는가? 상품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신용 있는 회사제품이라도 수요자는 함부로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원료가 무엇이며 안전성은 있는지, 서비스는 언제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구입한다. 상품구입에는 철저하게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자식은 학교가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전문가가 되려는 학부모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교사의 능력을 폄하하자는 말이 아니다. 사실 터놓고 얘기하지만 교사는 교육현장에서 자신의 철학과 소신대로 아이들을 교육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소위 '교육과정'이라는 게 있어 교사들의 재량권이란 거의 '0'에 가깝다. 학창시절에 읽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적인 책도 소개해 주고 살아가는 지혜며 사람답게 사는 길을 인생의 선배로서 안내해 주고 싶다. 좋은 음악도 들으면서 정서적으로 넉넉한 가슴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주고 싶다.

그러나 그게 안 된다. 왜냐하면 교육인적자원부가 만들어 놓은 정책이나 제도 때문이다. '서울대학을 가려면 무슨 과목에 몇 점이 더 필요한데 속이 타는 수험생에게 그런 얘기를 해 줄 용기 있는 교사도 없고 그걸 듣고 앉아 있을 범생이도 없다. 이게 다 입시정책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원평가제를 실시하기 위해 교원과 학부모에게 홍보자료를 506개 초중고교 시범학교 학부모에게 배포해 말썽이 되고 있다. 교육부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전교조는 아직도 교원평가제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이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홍보자료를 배포할 수 있느냐며 수령 거부 등 전면 거부 운동을 펴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교원평가뿐만 아니다. 얼마 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교육부와 함께 만든 경제 교과서가 친자본적인 내용이라며 시민교육단체들이 반발한 일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배우는 교과서는 국정인지 검인정인지, 또 국정교과서로 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면 어떤 인간으로 자라는지, 교원평가를 받으면 입시문제며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는지 따지는 학부모들은 별로 없다.

교원평가를 해서 우리 교육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걸 반대하는 교사는 교육자도 아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창의적이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키울 수도 있는데 왜 지식기반사회에서 영어 단어 몇 개로 서열을 매기는 암기교육을 고집하고 있는가? 대학에 입학만 하면, 졸업이 보장되고 그 학교의 졸업장의 위력(?)을 평생동안 우려먹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내 자식이 사회적 지위나 돈의 가치로 인간을 평가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지식한 범생이가 되어도 출세만 하고 돈만 벌면 되는가? 부모를 몰라보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도 괜찮은가? 세상 공기가 다 더러워져도 우리 집 방안 공기만 깨끗하면 살만한가?

내 소득의 20% 이상을 세금으로 내놓고 그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시장에서 반찬값 몇 푼 깎으려고 다투는 어머니는 알뜰하고 현명한 주부일까? 내 아이가 교사에게 체벌을 당한 일은 분개하면서 교육정책이며 입시제도는 나의 능력 밖이라고 방관하는 학부모는 건강한 수요자인가?

공부가 재미있으면 왜 학교에서 잠을 잘까? 입시위주 교육만 아니면 학교에 가고 싶도록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먹이겠다며 도망가는 아이를 체벌을 해서라도 억지로 먹이겠다는 교사나 내 아이에게 영양가가 있는 음식인지 가리지 않고 남보다 좀 더 많이 먹이겠다면 기를 쓰는 부모는 과연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학교가 편식하지 않고 영양가 있는 식단을 제공하는지, 방부제나 항생제로 범벅이 된 급식을 하지 않는지, 감시 감독할 책임이 있다. 작은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 오늘도 교육부는 학부모들의 이러한 무관심과 순수성을 믿고 입시제도며 교원평가며 안하무인격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내 자식이 배우는 학교에서 어떤 정책이 좋은지 그게 옳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 있는 학부모가 없다면 학부모 교육, 사회교육을 통해 사회구성원의 수준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옳다.

이제 교육부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는 상품으로 아이들의 서열화시키는 것도 모자라 부모와 지역까지 서열화시키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을 상품이라고 하는데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이 어떤 상품을 구매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자식을 넉넉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www.chamstory.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와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http://www.chamstory.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육위기 #학부모 #초중등교육법 #교원평가 #교육인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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