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새마을 운동' 선언한 재경부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꼭지 조간신문 리뷰

등록 2007.06.08 21:38수정 2007.06.0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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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부가 마련한 '경제교육지원법안'이 교육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경제교육은 우리가 맡는다."

재정경제부가 이제는 '교육'까지 맡겠다고 나섰다. 오늘(6월 8일) <한겨레>는 재경부가 경제교육을 위해 '특별법'을 입법 예고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얼마 전 전경련과 교육부가 공동으로 만든 '경제교과서' 파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재경부가 본격적으로 칼을 빼든 셈이다.

재경부가 마련한 '경제교육지원법안'은 경제교육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 지원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재경부에 경제교육심의위원회를 두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심의위원회에서 결국 경제교육에 관한 종합계획도 짜고, 각종 지원 방안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위원장은 물론 재정경제부 장관이 맡는다. 결론은 재경부가 경제교육을 주관하겠다는 것이다.

"경제교육의 활성화를 통해 국민을 합리적 경제주체로 육성해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21세기 버전 '새마을운동'이라고 할 만하다.

재경부는 그 필요성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급변하고 있는 경제 환경의 변화다. 금융경제 등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의 경제 환경이 급속히 전개됨에 따라 이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의외로 '금맹(금융경제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거시적으로는 경제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해서나,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민들에 대한 '세계화경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기존 교육 체제에 대한 불신이다. 재경부가 그것을 내놓고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경제교육의 필요성과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경제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 방안은 미비"하다는 문제의식이나, 교육부를 제치고 재경부가 나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 자체가 바로 그 같은 불신을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교육계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들은 부처 간 협의가 더 필요한데 재경부가 밀어붙이고 있다는 불만을 간접적으로 토로한다. "앞으로 논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딱 부러지게 "안 돼"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논란이 됐던 '경제교과서' 역시 '균형(?) 잡힌 경제교육'이 중요하다는 재경부의 드라이브에 시나브로 밀린 결과였다. 이제는 아예 교육부의 본령인 '교육정책'까지 넘보고 있지만, 교육부는 "입법예고를 했으니 우리 부의 의견을 정리해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역사교육은 문화부, 과학교육은 과기처?"

교육현장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신성호 전교조 참교육실 사무국장은 "그렇다면 역사 문화교육은 문화부에서, 과학 교육은 과학기술처에서 해야겠다"고 반문했다. 전경련-교육부 합작 경제교과서와 같은 맥락에서 경제교육을 하겠다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경제교육 자체가 부실한 것은 사실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것을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도 재경부의 특별법 방식이 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학교 교육의 경우 생들의 전체 수업시간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고 할 때 경제 수업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 분절돼 있어 단계별로 중복되고 있는 초중등교과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작업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교육, 평생 교육 차원에서도 경제교육의 프로그램을 짜는 데 있어서 '재경부의 시각'이 우선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돈 버는 일' 말고도 중요한 '경제 문제'가 많다는 주장이다.

경제교육, 좋은 일이다. 경제 지식이야말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식이 아니던가. 한마디로 '돈 버는 방법' '잘 사는 방법'을 정부가 적극 '교육'시켜 주겠다는 데 싫다고 할 까닭이 없다. 교육부가 하든, 재경부가 맡든 국민들로서야 알 바가 아니다. 돈 버는 법, 돈 절약하는 법, 잘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데 그것이 재경부면 어떻고, 교육부면 또 어떠랴.

사실 바로 그래서 곧이곧대로 믿기가 쉽지 않다. 경제교육을 제대로만 받으면 잘 살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잘 못사는 사람들은 경제교육을 잘못 받아서일까? 보다 많은 국민들이 금융경제를 더 잘 이해하고, 주식과 채권, 선물에 더 투자하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경제생활은 더 윤택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더 튼튼해지는 것일까? 양극화의 짙은 그늘은 조금은 더 옅어질 수 있을까?

오늘 이 소식을 전한 <한겨레> 기사의 시작과 끝은 이렇다.

"정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경제 환경에 대비해 국민 경제교육을 강화하고, 특히 지방과 소외계층의 경제교육 여건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정부는 또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을 강화해 지역경제교육센터가 실질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도록 할 방침이다."

일단 <한겨레>가 전한대로라면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백병규 #미디어워치 #경제교육 #재경부 #금융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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