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가 세워진 지 얼마 안 되는 무덕 7년(624년) 8월의 일이었다. 동돌궐의 군주인 힐리가한이 또 다시 당나라를 공격해 왔다. 이때가 벌써 다섯 번째였으니, 동돌궐은 당나라가 세워진 이후 거의 해마다 한 번씩은 당나라를 공격한 셈이다. 그것도 매번 많은 양의 예물을 당나라로부터 받아가면서도 번번이 그렇게 했던 것이다.
동돌궐이 화친을 말하면서도 거의 해마다 한 번씩 공격해 오자, 당나라 조정으로서도 짜증이 날 만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당 고조 이연의 아들인 이세민(훗날의 태종)이 직접 군사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장마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장마로 인해 전방까지 군량미를 운반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군사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할 수 없이 이세민은 일단 빈주라는 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이때 힐리가한이 1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전격적으로 빈주에 등장했다. 빈주성 서쪽에 포진한 돌궐 군대는 당나라 군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를 차지했다. 당나라 군사들은 일대 위기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세민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 권194 돌궐열전을 통해 이세민의 지혜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세민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담하게도 겨우 10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돌궐 진영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힐리가한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맹약을 저버리고 우리 영토 깊숙이까지 쳐들어왔느냐?"면서 "너희와 결판을 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또 "가한이 직접 나오면 나는 가한과 단 둘이 대결할 것이고, 너희 군대가 모두 나오면 나는 고작 100명만 갖고 대결하겠다"면서 허풍스러운 말까지 늘어놓았다.
이세민의 말에 힐리가한은 순간적으로 헷갈렸다. 이세민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 정도 배짱을 부리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 대군을 숨겨 놓았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했을 것이다.
사실, 단둘이 싸운다고 해도 승산을 장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할 수 없었던 힐리가한은 그저 웃기만 하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힐리가한이 머뭇거리면서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세민은 두 번째로 힐리가한을 위협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가지 않고 시종을 보내 비슷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힐리가한에게서 미세한 태도의 변화가 나타났다. <구당서>에 따르면 첫 번째 경고 때에는 힐리가한이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笑而不答)고 했지만, 두 번째 경고 때에는 힐리가한이 "또 대답하지 않았다"(也不回答)고 했다. 두 번째에는 웃음이 사라진 것이다.
힐리가한이 좀 더 긴장하고 있던 바로 그때에, 이세민이 말을 타고 돌궐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이세민이 돌궐 진영과 당나라 진영 사이에 있는 웅덩이 물을 막 넘으려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힐리가한의 사자(使者)가 이세민을 가로막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왕(진왕 이세민)께서는 물을 건너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악의가 없습니다. 왕과 맹약을 체결하고 군대를 돌리려 합니다."
당나라에 쳐들어온 돌궐 군대는 뜻밖에 직면한 이세민의 담대함 앞에서 상황 판단력을 잃고 일단 철수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세민의 대담함이 골칫거리 돌궐을 물리쳤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세민은 일단 돌궐을 물리칠 수 있었다. 물론 그 후에도 돌궐이 당나라를 계속 괴롭히긴 했지만, 624년의 이 영웅담은 이세민의 대담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단지 100명의 기병만 거느리고 돌궐 진영 앞에 가서 "1만 명을 데리고 나오라"며 허언을 할 정도로 그는 대담한 인물이었다. 고구려와는 악연이 있는 인물이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걸출한 영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정부는 이세민만큼은 못할지라도 이세민의 몇 분의 일만큼의 대담함도 없는 듯하다. 8일 한국정부는 한국측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포함된 울릉분지·이사부해산·한국해저간극·해오름해산 지명을 국제수로기구(IHO)에 등재하는 일을 또 연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해저지명 등재신청이 우리 고유의 권리이므로 기존에 명명해 둔 14개 지명 전체에 대한 등재신청을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한국 정부가 과연 최소한의 의지라도 갖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감출 수 없다. 툭 하면 현실을 운운하지만, 내 것을 지키는 것이 현실이지 내 것을 보류하는 게 과연 현실일까?
일본측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해 지명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고 자국의 수역에 대해 지명을 부여하는 일인데, 그런 당연한 일에 무슨 현실 운운이 필요할까? 그래서 정부의 해명은 그야말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8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IHO 관례상 이번에 등록신청을 했다가 일본 측 위원의 반대로 등재에 실패할 경우 다음 기회에 등재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에 실패가 눈에 보이는 선택을 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정부 소식통의 해명이다.
만약 정말로 일본측 위원의 반대만으로 한국의 등재신청이 좌절될 정도라면, 2006년 4월에 일본측이 해상보안청 조사선박 2척을 보내 한국의 등재신청을 막으려 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일본측 위원의 반대만으로는 한국의 시도를 좌절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일본이 그 같은 모험수를 던진 게 아닐까.
이세민은 단 100명만 갖고도 1만 명의 돌궐 군대를 물리친 데 반해 한국 정부는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해 독자적 지명을 부여하는 일마저 꺼리고 있으니 한국 정부를 과연 믿음직한 국민의 공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본측 위원의 반대가 두려워서 처음부터 시도해 보지도 않는다면, 아마 영원토록 한국은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해 독자적 지명을 부여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자기 몫을 확보하려면 끊임없이 쟁점과 논란을 만들어야 하는데, 라이벌의 반발이 무서워서 처음부터 도전을 회피한다면 거칠고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한국의 권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이 계속해서 대담한 외교전을 전개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공격 드라이브에 부담을 느껴 일본이 도리어 협상을 제의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저지명 문제에서 좀 더 대담해진다면, 한국 정부는 강력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최선의 노력과 성의를 보인다면,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결코 정부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의 눈치를 본다면, 국민도 정부에게 그만큼 책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외국의 눈치를 보면서 처음부터 해보지도 않고 힘없이 물러선다면 국민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정부에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세민의 대담함을 배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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